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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4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평점 :
전문번역가 이종인 선생이 옮긴,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의 유명한 고전입니다. 경제학 분야에서의 고전이, 유머러스한 필치와 날카로운 풍자, 백여년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현실 진단 등의 덕분에 여전히 대중에게 널리 읽히며 사랑받는 예도 참 드물 것 같습니다.
p42에도 나오지만 베블렌은 정작 유한계급에 대한 반감을 고취하거나 대대적인 사회 변혁을 시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습니다. 역자 이종인 선생은 주석을 통해 "그런 언명이, 저자 자신의 비판적 태도를 모두 감추어 주는 건 아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도 동의하지만, 사실 베블렌은 그 자신이 당대의 유한계급에 대해 딱히 적대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물론 상당수의 이름난 혁명가들이, 그 출신 성분상 혁명가가 될 이유가 없긴 했습니다만)이었고 실제 드러낸 행적도 그러했습니다. 언제나 시니컬하고 루크웜한 기질이었다고 하죠. 이 책도 마치 동물학자가 동물의 행태를 관철하듯, 냉정하고 중립적이며 메타적인 문체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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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invidious라는 단어에는 이 책에서처럼 "차별적인"이란 뜻도 있지만, 그 안에는 뭔가 "질투심에서 비롯한"의 뉘앙스가 깃들었습니다. 유한계급이 노동계급(혹은 그 외 취약 계층)을 차별적으로 볼 수는 있어도, 유한계급이 외부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차별적으로 파악된다는 건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p59에서 보듯 베블렌은 "노동 계급에 속하면서도 스스로를 유한계급 취미를 가진 (기만적 성향)자를 snob라 규정"하는 쪽에 속합니다. 막연한 선입견으로는 베블렌이 "충분한 교양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이를 가장하고 과시하는 졸부 출신 유한계급"을 비판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런 점만 봐도 베블렌은 확고한, 또 독립된 개인 스탠스에서 기이한 사회 현상을 분석했을 뿐 어떤 이념적 지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박범신 산문집을 리뷰했는데 그 책에서 작가는 과거 자신이 창작한 <소금>의 주인공을 예로 들며 개인에게 정신없이 지나친 소비 드라이브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탐욕적 자본주의를 비판한 적 있습니다. 황새의 소비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아파지는 뱁새의 처량한 처지는 이 책 p95에서도 지적됩니다. 사실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는 흔히 착각하듯 유한계급만의 행태가 아니며 중산층, 서민들 역시 복장이나 스타일, 차량 등으로 어느 정도 과시를 해 줘야 자신이 무시당할 만한 위치가 아님을 사회에 알릴 수 있습니다. 이걸 못 해 주면 자신의 카스트(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계급)에서 바로 축출된다고 베블렌은 서술합니다.
미감(p134)이란 이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어떤 바보는 예쁘지 않은 얼굴도 성형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신이 나서 떠들었으나 한국에서 이만큼이나 기술이 발전하자 이미 빤히 패턴이 잡힌 성형은 대번에 성괴, 강남미인도라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심지어 술집에서조차 인기가 없습니다. 반려동물의 양육에도 이 기준이 큰 영향을 끼치는데 어떤 동물의 경우 "쓸모없음"조차 하나의 큰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과시적 소비의 핵심은 "나는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을 이처럼이나 소비한다"는 메시지의 전달에 있습니다.
유한계급의 병적인 과시적 소비는 특히 19세기 미국에서 횡행했는데 JP 모건 주니어의 "요트 가격을 물어보는 자는 이미 그것을 살 자격이 없는 자"라는 말이라든지, 철도왕 코널리어스 밴더빌트가 "Public be damned.(와전이라는 설도 유력합니다)"라고 했다든지 하는 사례가 있죠. p194에 보면 특히 베블렌은 미국 주류 백인들의 야만적 사냥성향을 지적하며 북미 원주민들의 비참한 운명을 거론하는데 역자 이종인 선생은 여기서도 베블렌 특유의 비판정신이 드러난다고 분석합니다. p231에는 약탈적 야만인과 (이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평화로운 야만인의 구분도 있는데 이 역시 모두까기식 냉소입니다.
유한계급을 무작정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유한취미를 이어가기 위해 기업 경영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산업 발달에 이바지한다는 말도 p206에 나옵니다. 역자 이종인 선생은 이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다고 정리하는데 사실 이 문장은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이른바 대리인의 딜레마가 생기는데 이 문제는 아직 이론상으로나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베블렌은 심지어 책 후반부에서 종교 담론까지 논의를 이어가는데 신인동형론적 종교가 약탈적 행태를 정당화하고 계급 서열의 항구화를 조장하며 적자 생존의 양상을 자연의 섭리로까지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 결론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인간의 인식과 문명의 발전은 자신과 동류집단의 행태를 그저 당연시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 객관화하는 노력 중에 이뤄진다는 점을 다시 새길 필요는 있습니다. 베블렌의 다분히 현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이 책에서 그 정도 교훈만 얻어도 충분히 문명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