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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평점 :
"대부분의 종에서 수컷들은 다른 수컷의 자손을 살해하려는 성향을 보이며 그 어미와의 짝짓기를 통해 자신의 DNA를 복제하려 한다(p17)." "수컷이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는 게 자연의 섭리이듯이(p477)." 이 두 문장은 별개의 두 작품에 나오지만 주인공 여성, 혹은 주인공 여성에게 죽고 나서도 강한 영향을 끼친 어느 여성(사실상 주인공?)이 비슷한 취지로 한 말입니다.
이 책에 실린 네 작품에서 여성들은 대체로 무기력하거나, 사악한 남자한테서 무기력화한 후에 큰 위험에 처합니다. 사실상 이 세계들에서 수컷들이란 다른 수컷의 자손을 죽일 뿐 아니라 선한 암컷과 어린것들을 두루 약탈하고, 욕보이고, 기어이 죽이려 드는, 사악한 성품을 가진, 세계의 파괴자들입니다. 혈기왕성한 수컷들이 살아 있는 한 이 세상에는 참평화가 깃들 날이 없어 보이며 늙은 수컷은 그것대로 추태를 떨며 세상을 더럽힙니다.
카디프-바이-더-씨는 오래 전의 지명(地名)이며 지금은 사람들에게 그저 카디프로 불린다고 합니다(제가 알기론 메인 주에 카디프라는 곳은 없습니다). 네 편의 소설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안정된 삶을 줄곧 누려온 경우인 클레어 사이들은 원래 고아였고 클레어 도니걸이란 이름이었습니다. 사이들 부부에게 입양되어 이제 박사후 과정 중인 그녀는 입양아라는 점만 빼면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삶을 살아 왔는데 느닷 "모르는 사람"인 루셔스 피셔란 변호사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생물학적 조모가 그녀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소식입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살던 그녀에게 유산 같은 게 솔깃한 소식까지는 아니었으나 이 기회에 그녀는 자신의 근원과 뿌리를 캐 보기로 합니다. 그런 처지의 여성치고는 대단한 모험심의 발휘였으며 독자들은 마치 유령 같은 그녀의 이모할머니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벌써 으스스해집니다.
클레어는 우리 독자들 헷갈리게, 이모할머니들이 정성껏 잘 차려 준 만찬을 받고도, 이상한 약을 먹은 듯 몽롱해진다고 하는가 하면, 어느 분의 팔이 싹둑 잘려나간 듯 뭉툭하다고 했다가 다시 보니 그냥 손톱이 부러졌을 뿐이라고 하는 등 횡설수설합니다. 두 페이지 뒤 p53에서는 "기형에 가까운 모랙이 한쪽 팔로 트렁크를 옮긴다"고 했다가 잘못 본 것 같다고 다시 바로잡네요. 현재 그녀가 산다는 브린모어 역시 펜실베이니아이며, 멀다고는 하나 어차피 같은 동부 권역인데 메인주가 무슨 아편에 취한 차이나타운이라도 되는 양 이리 온 후 그녀는 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합니다.
사실 이는 서술 트릭에 불과하며 이모할머니들은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유산을 가로챌 생각으로 클레어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속셈도 아니며, 무슨 맥베스를 홀리는 마녀 같은 초자연적 존재들도 아닙니다. 그럼 혹시 그날, 클레어에게 무서운 일이 있었던 그날의 진상을, 이 할머니들이 은밀히 공유라도 하는 걸까요?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진상을 누가 혹 안다면 당시 초동수사를 맡았던 은퇴 경찰관 드루이트뿐입니다. 그녀는 마치 학술 목적으로 인터뷰를 따는 학자처럼 자료를 수집하고 그날의 진상을 캐려 듭니다.
과연 ooo은, 그 기분나쁜 외모에 걸맞게, 아름다운 o과 oo를 질투하여 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개수대 밑에 숨어 있던 ooo까지 해치려다 뜻밖의 반격을 받고 더 이상 나가지 못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외모가 unprepossessing한 남자들에게 강한 혐오감을 갖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자신을 향해 강한 의구심을 표현하는 ooo에게, ooo은 그저 무덤덤하게 뭔소리냐는 듯 대꾸할 뿐이지 않습니까? 특이하게 이 소설은 수미쌍관식 구성인데, 아마 모르는 누구에게 전화가 걸려온 그 짧은 순간 잠시 고딕 망상을 한 편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L 피셔는 변호사가 아니라 아마 텔레마케터인지도 모릅니다. 전화를 받아 봐야 알 수 있죠.
<먀오 다오>는 그래도 진상에의 짐작이 비교적 쉽습니다. 우선 미아를 괴롭히던 뎀스터를 잔인하게 죽인 범인은, 소설 후반에 패리스 로크를 처단한 먀오 다오(아니, 뭐라고?)일 것입니다. 승냥이처럼 로크의 경동맥을 끊어 한순간에 쓰러트린... 아 물론, 먀오다오는 그 전에 이미 로크에게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난다든지 해서 복수를 할 수는 없고, oo를 뜻하는 겁니다. oo가 먀오다오를 성장기 내내 같이 둔다는 건, 이제 자신의 분신처럼 내면에 이 무서운 애를 비치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겠다는 뜻이겠죠. 인상적인 건 그 엄마가 갑자기 콩깍지가 벗겨지기라도 했는지 마지막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니면 이 모든 게 다, 아빠를 갑자기 잃은 oo의 망상일지도 모릅니다.
읽으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환영처럼 1972>였습니다. 물론 이 소설에서 가장 나쁜 놈은 "아직 서른도 안 되었기에 어른스워지지 못한(p395)" ooooo입니다. 그런데 나쁜 놈보다 더 기분 나쁜 자는 그 예순 살 자신 시인입니다. 얼마 전 oo 앞에 신붓감 찾는다는 광고를 낸 어떤 사례도 생각났는데, 이 노인은 그야말로 주책바가지이며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는 신조와도 모순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너의 비전형적인 미모를 몰라볼 수도 있다는 말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입니다. 객관적으로 육십 먹은 노인이 젊어 보일 수가 없는데 앨리스가 필사적으로(?) 그를 젊게 보는 건 저 <카디프..>에서 팔이 없는 모랙에게 팔과 손이 달린 듯 본 클레어의 이상 지각과 비슷합니다. 다만 마지막에, 이미 혼백이 된 상태에서 병상을 찾은 앨리스를 노시인이 분명히 알아본 건 자못 감동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사랑(?)은 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도 비교적 분명히 진상이, 특히 후반부에 다 드러나는 편입니다. 앞에서 <카디프>의 클레어처럼, 성별은 다르지만 여기 스테판도 the surviving child입니다. 우리도 "동반 자살"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데 여기서 NK는 죽은 후 메데이아에 비유될 만큼 컬트적인 독부(毒婦)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세계로부터 자신을 닫아 버린 스테판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걸로 드러나니... 한심한 수컷들의 저주받은 속성을 끊어 버리려면 아직 오염되지 않은 스테판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가 엘리자베스를 살린 건 단지 한 여자의 목숨만 건진 게 아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