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기 전에
권용석.노지향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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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권용석 변호사님은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걸은, 의롭고 선하고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이 책은 그분의 배우자였던 노지향 대표님이 편집하셨으며, 대부분은 권 변호사님이 쓰신 시와 산문들입니다. 상당수는 권 변호사님이 타계하시기 얼마 전에 쓰신 글이라서 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노 대표님 글은 녹색의 다른 폰트로 인쇄되었고 대체로는 부군의 글에 대한 평과 소회입니다). 권 변호사님과 노 대표님은 요즘 기준으로는 정말 젊은 25-27세에 혼인했다고 나옵니다. 두 분의 의롭고 깨끗하게 살아온 행적뿐 아니라 그 불처럼 타올랐을 듯한 순일한 사랑, 아름답게 맺어진 인연 또한 부럽습니다. 

책 제목은 "꽃 지기 전에"입니다. p110에 권 변호사께서 쓰신 시 한 편이 나오는데 그 작품 제목이 또한 "꽃 지기 전에"입니다. 이 작품이 공교롭게도 권 변호사가 지인의 부음을 접하고 생전에 더 자주 만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내용인데, 다시 노 대표께서 이 작을 추릴 때 어떤 기분이셨을지 짐작해 보면 독자의 마음도 더 아파집니다. 전문을 잠시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곧 보자 했던 이의/ 부고 문자 받아들고/ 하늘을 본다
보고 싶으면/ 정말 보고 싶으면/ 지금 보자/ 꽃 지기 전에 

권 변호사님은 서울법대 졸업자이며 검사로 10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독특한 점은 퇴직 후 사단법인 행복공장을 설립하여 여러 사회사업을 펴셨다는 점입니다. 검사 일이 원래 격무였던 데다 애연가였기에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이 그의 생 가까이에서 맴돌았을 법하지만 위중한 암이 발견된 건 위였습니다. 이러니 우리들도 평소에 건강 검진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생전에 권 변호사님이 각별히 난도 높으신 삶을 사셨던 점은 일반인과 다르겠지만, 우리들도 어찌 보면 자신들 나름대로 다들 힘들어하니 말입니다. 

요즘은 MBTI가 유행이지만 예전에는 에니어그램이라는 틀이, 많은 이들에게 성격 분석 도구로 쓰였습니다(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p20을 보면 권 변호사님은 스스로를 넘버 2로 규정했는데 이 프레임도 성격 분석으로 제법 설명력이 높으니 독자들도 관련 정보를 찾아 나는 몇 번에 해당할지 한번 체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노 대표님 글 중 가장 자주 보이는 표현은 "착한 사람"인데, 권 변호사님은 업무상 피의자를 매섭게 추궁해야 할 때도 인정상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가 많았으리라고 추측되는 대목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미안해하셨으며 p25를 보면 본인이 워낙 담배를 많이 피워 사무실 여직원의 옷에 밴 냄새 때문에 어쩔줄 몰라하시는 대목도 있습니다. 

p65를 보면 해, 나뭇잎, 나팔꽃 등이 "사랑에 젖어봐"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시가 나옵니다. 이런 풍경은 우리가 주변에서 또 일상에서 자주 보는 것인데 시인의 따뜻한 마음은 그 안에서도 특별한 메세지를 포착하고 끌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 풍경에서 과연 사랑에 젖어보라는 제안을 들을 만큼 마음 속에 한 줌의 여유를 마련하고 있을까요? 

책 곳곳에는 또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구절이, 아내분을 향한 애틋한 사랑 고백 관련입니다. 예를 들면 p137이라든가, p11 같은 곳입니다. 노 대표님은 또한 부군을 두고 "착한 사람" 외에 "멋진 사람"이란 표현도 자주 쓰십니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명분과 대의만 보고 성큼성큼 걷던 남편분이 참으로 멋있게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 독자들도 그러한데 말입니다. 아버지를 닮아 똑똑한 아드님 예철이 곁에 있었고 매형분(민청학련 사건 관련인)도 재단 설립 기여에 이어, 권 변호사의 투병에 응원을 보냈습니다. 멋진 분 곁에는 이처럼 항상 멋진 분들이 또 함께하는 법이죠. 

우리 주변에도, 돈이나 명예보다는 명분 있고 의로운 일에 더 큰 정열을 바치는 멋진 변호사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큰 후원까지는 몰라도 대의에 동참하는 응원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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