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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썰의 전당 : 서양미술 편 - 예술에 관한 세상의 모든 썰
KBS <예썰의 전당> 제작팀 지음, 양정무.이차희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평점 :
김구라씨 진행으로 KBS에서 일요일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썰의 전당> 중 서양미술 편을 도판과 함께 정리한 책입니다. 책날개에도 나오지만 단순히 작품에 대한 해설만 해 주는 게 아니라 시대상, 사회상까지 함께 설명해 주므로 그림에 대해 입체적, 총체적 이해를 하게 돕습니다.
보통 "그림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무책임한 말입니다. 정말 분석과 감상, 비평의 천재가 아니고서는 그림만 분리해서 보고 그 깊은 의도를 캐치해낼 수 없습니다. 역사와 인물, 나아가 당대의 경제 구조까지 알아야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의 의도와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겠습니다.
감수자 두 분 중 양정무 교수는 실제 출연도 해서 우리 시청자들이 아는 그분입니다. 8회분 같은 건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를 다루는데 이 회차는 주제가 "미술"이 아니므로 지금 이 책에서는 커버하지 않습니다. 13회 벨라스케스 편은 이 책에서는 제6장으로 좀 앞으로 당겨서 배치되었습니다.
작품을 많이 남긴 다빈치였지만 자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았기에 더욱 신비감을 자아냅니다. p27에 나오듯 다빈치 집안은 대대로 공증인이었고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레오나르도 본인도 기록광이었고 그런 치밀한 시각과 태도가 그 남긴 작품에도 반영됩니다. "이 사람의 관심사는 대체 어디까지였는지, 한계가 없는 듯하다(p30)." 후세 사람들도 이렇게 말할 만큼 그의 천재성과 끝없는 탐구심이란 일반적인 범주를 한참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또 개인의 창의를 존중하고 천재에 대해 합당한 존중을 보낼 줄 알았던 피렌체 공화국의 열린 사회 분위기가 그의 성취를 크게 도와 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p40에 나온 두 그림,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세상의 구원자, 즉 예수 그리스도)>와 뒤러의 자화상은 그 구도의 유사성 때문에 아주 자주 회자되는 소재입니다. p41에 나오는 뒤러의 <엉겅퀴를 든...>에 대한 해설은, 그림 하나에서도 얼마나 많은 해석들의 추출이 가능한지 잘 보여 줍니다. 이 편은 방송 당시 저도 집중해서 시청했는데 뛰어난 화질로 찍힌 컨텐츠라서인지 TV 화면에서 인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이 돋보였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보지 않고서는 한 인간이 어느 정도의 일을 해 낼 수 있는지 직관적인 상상이 불가능하다(p65)." 역시 미술은 손으로 빚어내는 인간의 그 역동적인 무엇이 있어야 일개 평범한 감상자의 눈에도 "아!"하며 압도당하는 어떤 감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대작을 보고 나면, 아무리 현대미술이 컨셉과 아이디어를 중시한다 해도 과연 그런 제한된 범위의 표현이라는 게 얼마나 큰 공감을 유도하겠는지 심각한 회의가 들 수 있겠습니다.
"루벤스가 가진 능력 중 하나는 신화와 현실을 융합하는 능력이다(p103)." 우리가 앤트워프로 보통 아는 안트베르펜의 당대 사정을 알면, 루벤스의 그림 <대지와 물의 결합>이 더 잘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스헬더 강이 안트베르펜과 다시 만난 게 무려 25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1830년은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발생했고, 그 영향을 받아 벨기에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해입니다.
책 6편은 벨라스케스를 다루는데, 방송도 그렇고 훨씬 후대의 화가 피카소의 <시녀들(의 재해석)>을 분석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므로 혹시 피카소 이야기인가 착각할 수 있지만 그 원작을 그린 벨라스케스가 주제입니다. p116에 나오듯 주인공은 펠리페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이지만 제목에 걸맞게 많은 시녀들이 등장하며 이 시녀들은 이례적으로 우리들이 그 이름까지도 알 정도입니다. 역시 그림이란 단 하나만의 해석을 허용하지는 않으며, 벨라스케스의 이 걸작을 통해 우리는 메타페인팅(방송에서는 정치학자 김지윤 교수가 설명을 거듭니다)이 뭔지 개념을 세울 수 있습니다. 천재의 작품은 이처럼 전혀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개척합니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김구라씨가 합스부르크 턱을 자신도 가졌다며 드립을 치는 게 방송에 나옵니다.
렘브란트는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으며 그의 그림도 본인 스스로의 기백이랄까 신명 같은 게 배어나는 화풍입니다. 동시에 당시 번성하던 조국 네덜란드의 상업적 융성도 잘 표현됩니다. 근세나 근대에 그림을 그린 유명한 화가들의 명작을 보면, 과연 이 그림 커미션을 준 사람들은 이런 표현에 만족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의뢰인은 자신이 아름답게, 위엄 있게 드러나길 원하지만 화가는 예술가의 자존을 내세워 엉뚱한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다거나 강조의 지점을 뒤집든지 해서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더 높이려 들기 때문입니다. p149에 이것 관련 설명이 쉽고 자세하게 나옵니다.
밀레의 그림은 일견 대단히 평화롭게만 보이며 실제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해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과 방송)에서는 이미 충분히 밀레의 그림이 당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며 그림에 대한 보다 섬세한 해석이 밀레의 숨은 의도에 대해 얼마든지 재조명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설명합니다. 인상주의의 마네, 모네 등에 대해서는 최근 여러 미술 대중서에서 그 뚜렷한 의의에 대해 자세히 풀어주는 경향이었으므로 독자도 꽤 익숙하지만 이 책에서는 좀 더 새로운 "썰"들이 나와서 흥미로웠습니다. 21세기 들어 특히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멸망 직전 제국의 마지막 번영기를 화려하게 수 놓은 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에 대해서도, 어쩌면 이런 기획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가일 그를 놓고 책에서는 끈적하면서도 미학적 적실성을 발휘합니다. 책 자체가 미술 작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