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의 계절
연소민 지음 / 모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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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훈훈하기만 한 사연을 예상했었으나 생각보다는 무거운 이야기들이 깔려 있기도 해서 약간은 의외인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유정민, 아직 젊은 여성이고 전직 방송 작가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롭게 배운 게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방송작가분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였습니다(아주 짧은 언급과 가상의 사연을 통해서건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13년 전쯤 등촌동에 살 때 작가 한 분을 안 적이 있기까지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고서야 아 사실은 이분들이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 하고 새삼 느낌이 왔습니다. 주인공 유정민이 그만큼 특별한 사람이었던 까닭도 있었겠습니다.  

제목대로 이 소설은 한 공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빨려들어가듯 읽은 게, 잘 살펴 보면 이 공방에서 조희 선생님께 배우는 제자들(성별, 연령대는 다양합니다)은 사람들과 아주 관계를 편하게 맺는 성격들은 아닙니다. 주인공 정민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회원들도 뭔가 각자의 사연들이 강하건 약하건 간에 그들의 기억 한 구석을 부여잡는 듯 보입니다(아니면, 그저 나이가 어려서 서투르거나). 그러던 이들이, 가장 나중에 참여했고 가장 힘든 상황이었던 정민을 계기 삼아 마음을 서로에게 더 열어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정민이 합류하기 전에도 각자의 방법으로 소통하고는 있었으나(특히 효석과 지혜, 준과 예리) 정민을 동력 삼아 다른 파장의 소통 한 구비가 더 열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민의 합류 역시 조희씨의 강력한 권유가 있어서 이뤄졌습니다. 

공방이란 무엇인가를 만드는 장소입니다. 이 작품의 공방에서는 도자기가 그 주제인데,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도자기라고 하면 뭔가 어렵게들 여깁니다. 그러나 공방 주인 조희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하기를, 디자인이나 색채, 아름다움이 메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실용성이 우선(p27)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조희 선생님 역시 정민씨가 방송작가라고 하니까 뭔가 멋진 카피(인스타용) 같은 걸 기대했었나 봅니다(p48). 멋진 작품 하나를 만들어 건네자 조희 선생님은 너무도 좋아합니다(p55, p107). 

이곳 공방은 정민에게 원래 연고가 없던 일산에 소재했는데, 하필이면 학창시절 악연이 있었던 주란과 이곳에서 조우합니다. 더군다나 주란 옆에는 다리가 불편하게 된 아빠도 같이 있었는데, 이분이 이렇게 된 건 과거 정민의 부친이 이분에게 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 경위도 알고 보면 어이가 없는 것이며 이런 부친 때문에 정민의 인생에 얼마나 큰 그늘이 드리워졌겠는지는 짐작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피해자 쪽인 주란보다 오히려 정민이 더 그들을 불편해했는데, 처음에는 정민이 좀 이기적이지 않나 생각했지만 더 읽어 보니 그럴 만도 했겠구나 싶은 과거의 사정이 나오더군요. 이래서 사람의 인성과 특정 행동은 한 국면만 놓고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배경이 일산이다 보니 지하철은 주황색 3호선을 타고 이동해야겠죠(p179). 혹은 고터로 향하는 M버스이겠습니다(p237). 정민도 아빠가 저지른 일 때문에 일종의 업보의식 같은 게 있어서 늘 괴로워하는데 기식도 선대가 겪던 고초가 대물림되는 것 같은 (사실은 근거 없는) 공포와 죄의식("할아버지의 손을 놔 버린 벌". p181)에 시달리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건 정민만큼 심각한 케이스는 아니고, 정민하고 균형을 맞추려고 하나 꺼낸 정도입니다. 아직 나이가 어렸을 때였는데 기식이 어떻게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겠습니까.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어법에 틀리게 쓴 표현도 눈에 띄어 웃음을 자아냅니다. p203의 우리가 좋아했었었던이라든가, p28의 완벽하게 찌그러졌다 같은 게 그 예입니다. 훈훈해져 가는 분위기 속에 인물들의 살짝 꼬였던 삶은 대체로 풀려 갑니다. 준은 대학(그것도 도예과)에 합격하고(과연 천재?ㅋ p74, p190), p165에 처음 등장했던 소타는 정민이 잘 될 걸 다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고, 정민도 이제 재도약을 준비하며 다만 조희쌤은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사람들은 이 밤가시마을에 모여들어 이제 고소한 양식만 잘 추리고 날카로운 가시는 쏙쏙 잘 제거하여 나만의 그릇을 소중히 빚는가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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