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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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독특하게도 중앙은행이 공적기관이긴 하지만 민간인(공직자 신분이 아닌 이)들의 모임입니다. 연준의 성격이 이러하기에 미 재무부는 형식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중앙은행에 대해 채무자 포지션입니다. 반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는 미국과 상황이 다르기에 중앙은행의 "실질적 독립"이 재정건전성이나 거시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무척 중요합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중앙은행이 저렇게 민간인들의 클럽처럼 구성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 않으며 이 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난연준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p21을 보면 저자는 연준에 대해 "반관반민의 혼종"이라고 규정합니다. 

때로는 소설처럼, 적어도 논픽션 스토리의 구성을 취하기 때문에 독자의 정치적 입장에 무관하게 책을 읽어 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p12 작가 제임스 그랜트의 추천사를 보면 이 책에 대해 "페이지 터너" 라고 평해 놓았습니다. 

연준이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무척 단순합니다. 경기가 과열되거나 물가가 너무 오른다 싶으면 이자율(기준금리)을 올리고, 그 반대의 경우 낮춥니다. 많은 경우 미국의 이자율은 매우 낮은데 첫째 미국은 성숙기를 지나는 선진국이지 개발도상국이 아니므로 성장률이 낮고, 둘째 자본은 많고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부진하며, 셋째 기축통화이므로 안전성과 신뢰도가 높아 정부가 외국에 대해 채권을 쉽게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던 게 지금은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져 한국 같은 나라가 오히려 미국보다 금리가 낮으니, 여러 나라의 경제에 주름이 생기고 수출 부진이나 외화 유출 현상을 겪으며 고생하는 것입니다. 

2010년대에 연준에서 소수자 포지션이었던 토머스 호니그 당시 캔자스시티 연은행장은, 벤 버냉키가 주도하는 양적 완화에 대해 거의 임기 내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한 게, 양적완화를 통해 증발(增發)된 통화가 주로 월가의 거대 금융기관으로 흘러가고, 이것이 기관들의 투기를 부추겨 증시의 옥석을 못 가리게 한 후, 십수년 뒤에 결국 거품이 터져 많은 이들, 폭탄 돌리기의 막판에 술래로 걸린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간기 루스벨트 대통령도 시중에 돈을 풀고 억지로라도 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늘리는 이른바 뉴딜 정책을 폈습니다만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선 돈이 먼저 풀리는 정책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돈풀기라도 2008년 이후에 이뤄진 양적완화는 저 호니그 행장의 지적에 의하면 먼저 월가의 투기놀음에 쓰인다는 것이었으니 돈이 풀리고 안 풀리고의 문제보다 그 풀리는 경로를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는 함의이겠습니다. 

벤 버냉키는 존경 받는 거시경제학자로 보통 알려졌으나 그의 제안이나 아이디어 중에는 경제학의 기초상식에 반하지 않나 싶은 것도 제법 있었습니다. 연준이 장기 국채를 무제한으로 사들여 금리를 낮춘다거나(이러면 시중에 돈이 엄청 풀려 어떻게든 돈 가치가 떨어지긴 하죠. 또 채권 가격이 오르면 금리는 낮아진다는 철칙이 다시 가동되게도 하고요), 이른바 헬리콥터 드롭 같은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p139를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팩트가 정리되는데, 호니그 행장은 자신에게 아직 의결권이 없던 시절(2006년) 회의에 참석해서 금리를 더 올리자는 당시 버냉키 의장의 포지션에 반대하여 금리를 그만 올리자는 의견을 표명합니다. 이 책의 메인 스토리에서와는 입장이 정반대였던 셈인데, 원래 중앙은행은 상황을 봐 가며 금리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므로 그 자체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전집 등에서 읽은, "트럭에 돈을 싣고 가도 빵 한 개를 살 수 없었던" 1차 대전 후의 독일 국민들이 겪은 어려움을 잘 압니다. 아무 대책 없이 정부가 돈만 찍어내면 물가 폭등으로 그렇게 국민 경제가 파괴됩니다. 2010년 당시 보수매체 드러지리포트는 "연준이 자꾸 돈을 찍어내면 미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될 것"이라며 연준의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확산시켰습니다. 이때 연준은 확실히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였었고 중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마치 경쟁이나 하듯 평가절하에 나섰습니다. 저때는 중국이 한창 성장 엔진을 돌리던 후진타오 주석 시대였으므로 더욱 약한 위안화(수출에 유리한)가 필요했겠습니다. 

한국에서도, 특히 주식하는 분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이름인 현 연준의장 제롬 파월은 이 책 p212 이하에서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젊은시절 행적부터 아주 자세히 서술되네요. 책 p139에서 호니그를 한때 매파로 사람들이 착각했다고 하듯, 파월 역시 인플레에 대해 본질적으로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WP의 마이클 파 매니저의 분석처럼) 알 수 없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원래는 이분이 법률가 커리어로 갈 사람이었는데 딜런 리드에 입사한 후 금융인으로 전향했던 셈이었네요. 

책  10장을 보면 제롬 파월 의장의 정체성이랄까, 그가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성향인지 추측할 수 있는 과거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렉스노드 사에 들어온 그는 직장에서 다양한 인사들을 알게 되는데, 애써 빌린 돈으로 자사주나 사는 등 사실상 빚 위에 빚을 쌓는 옥상옥, 사상누각의 행태였습니다. 그런데도 워낙 주가가 많이 오르던 통에 대주주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투는 어리석은 대중이 끝자락에 잡게 되며 그 결말은 불을 보듯 뻔하죠.  

"이 상황에는 연준 자체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었다(p332)." 책에서 지적하는 건, 태생부터가 반관반민, 아니 부자를 대표하는 위원회 격인 이 연준이, 21세기 들어 그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드러내는 중이며, 미국 내 가난한 사람들, 혹은 미국과 교역하는 외국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미국 같은 초강대국의 정책은 이미 미국인들, 그 중에서도 소수 부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기에 우리 한국 독자들도 주의 깊게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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