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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고전을 읽어드립니다 -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민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평점 :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단국대 교수님은 현직 의사이며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한국 최고의 엘리트 중 한 분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지적으로 봐 주지 않는 이유가 "고전을 덜 읽어서"라고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시지만 어려서부터 고전을 많이 읽으셨으니까 최고 학부에도 들어가셔서 의사가 되셨겠죠. 예전 입시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으니 교수님의 공력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어려운 고전을 교수님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쉽게 풀어 주시기 때문에 전과는 다른 안목도 트이고 모르던 재미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뛰어난 여성이, 그 시대의 제약 때문에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성별을 떠나서 같이 화가 나곤 합니다. 반대로, 있지도 않은 재능과 진정성을 가장하여 매명에 열을 올리는 사기꾼도 판을 치는 요즘이고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서민 교수님은 매우 직설적으로, 고전 <제인 에어>의 주인공이 평균보다 떨어지는 외모의 여성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우리는 고전의 무게 때문에 텍스트 안에 빤히 드러나는 사실조차 간과하곤 합니다. 교수님은 오히려, 나이도 너무 많고 잘 어울려 보이지도 않는 로체스터를 구태여 남편으로 고른 제인 에어의 결정에 마냥 박수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아가, 요즘의 젊은 여성들이라면, 발달한 교통과 통신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충분히 활용하여 더 신중하게, 더 자신의 느낌을 반영하여 배우자를 고르기 바란다는 실용적인 충고까지 곁들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도 서민 교수는 저 뒤 p64에서 이 책을 두고 페미니즘의 맹아를 심어 둔 "한 방"이 있는 걸작으로 평가합니다.
톨스토이의 고전 <부활>에 나오는 네흘류도프는 사실 그 요란한 회개에도 불구하고 잘못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저렇게 잘못을 멋있게(?) 깨우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잘못을 안 저지를 수도 있었을 텐데, 일단 잘못 좀 해 보고 나중에 남 보란 듯 장엄하게 회개하는 자신에게 혹시 나르시시스트처럼 도취된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듭니다. 교수님은 네흘류도프의 두 가지 잘못을 지적하는데 구구절절 맞습니다. 특히 상고 절차상의 하자 때문에 결국 카튜샤가 징역을 살게 된 건 백작의 잘못도 큰데 이쯤되면 여자의 불행을 아주 즐기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결혼해 주는 걸 무슨 은혜나 베푸는 듯한 태도도 현대 독자의 눈에 거슬립니다. 재판과 마찬가지로 사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교수님 말에 박수를 보내게 되네요.
<돈키호테>에서는 "필요없는 책은 과감히 정리해버리자"는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스토리텔링의 매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무려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룬 장에서 "너무 나대지 말자"는 교훈을 끌어내신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슨 말을 꺼낼지 짐작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 신을 상대로 내기를 할 때에는 좀 더 신중하게 확률을 따져 보고 판을 깔든지 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더러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더러 하는 충고였습니다(...). 알고보니 그나이 먹도록 공부만 한 사람치고는 세상물정에도 어두웠을 뿐 아니라 사람 사는 바른 이치도 전혀 몰랐기에 악마한테 영혼을 팔고 여자들한테 못된 짓이나 저지른 것 아니냐, 그러니 서푼짜리 지식만으로 나대지 말았어야 했단 것입니다. 이 책에서 요약한 파우스트 박사의 행각을 읽어 보니 앞의 네흘류도프 백작하고 결국 아무 차이가 없더군요. 말만 더럽게 많은 것조차 닮았습니다. 로체스터, 네흘류도프, 파우스트, 이 세 어설픈 나쁜 남자들 모두 우리 교수님한테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릴 것 같네요.
범인(凡人)과 비범인에게는 적용되는 원칙이 달라야 한다는 라스콜니코프한테도 교수님은 동정이 안 간다고 하십니다. 일하지 않으려는 무책임함, 답이 안 나오는 허세... 결국 사람을 죽이고도 고작 8년형밖에 안 받는데, 감경사유가 심신미약이었다는 점도 판결의 허술함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실제로 현대 맑스주의의 거두 루이 알튀세르도 재판에서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받아 큰 논란이 된 적 있죠. 라스콜니코프가 진짜 뉴턴급 두뇌였다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법 집행에 예외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명작이라고 해도 독자는 자신만의 느낌으로 책을 읽을 권리가 있겠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개운찮은 느낌을 다 털어놓고 나면, 그후부터 오히려 작가의 진짜 의도가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비로소 안목이 생기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억지춘향격으로 교훈을 암기할 게 아니라 정직한 생각하기부터 훈련하는 게 독서뿐 아니라 모든 정신 소양 쌓기의 첫걸음이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