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그 화려한 역설 - 69개의 표지비밀과 상금 5000만원의 비밀풀기 프로젝트, 개정판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인 작가님의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를 지난 2월에 당첨되어 읽고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이 작은 그보다 더 먼저 발표되었고 이번에 개작이 이뤄진 소설입니다. 소설은 총 3부 69파트로 이뤄졌고 매 파트 앞에 제사가 배치되었습니다. 그 출처는 pp.489~492에 목록이 나오는데 세계의 고전이란 고전은 다 적힌 듯합니다. 

소설 내내 주인공 모제는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모제는 아직 나이가 젊은 경찰(소설 초두, p165, p274 등 여러 부분)인데, 모제와 친한 화교 나래는 스무 살이지만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하며(p180), 주인공은 스스로를 시멘트 세대라고 부르는데 몸과 마음이 다 늙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스물 일곱 살이면 요새는 노인이란 소릴 들어(p188)." 실제로 작가님 또래 분들은 20년전쯤에 다들 그러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어가는 나이에 대한 자조적 강박일 수도 있고 한 살이라도 더 어린 게 최고라는 식의 그 시대 분위기도 있었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합니다. 

무슨 락카페 헌팅이라든가(p170), p216 이하에 레게머리 털 뽑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와 어르신들은 젊었을 때 저러고 노셨구나 싶어 감탄(ㅋ)이 나왔습니다. "요새는 기능별로 상대를 만나는 세상이잖아. 술이 마시고 싶으면 술 잘 마시는 애를, 야구장에 가고 싶으면 소리 잘 지르는 애를..(p273)" 이 대사에서는 "one for the money and two for the show..." 어쩌구 하는 오래된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20년 전에는 활동하지 않았던 연예인들(주로 미국) 이름이 여럿 거명되는 곳을 보면 이 대목에서 개정이 되었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p240에서 니콜라스 홀트, 제니퍼 로렌스, 크리스 프랫 등의 이름이 그렇습니다. 2002년 같으면 뮤지컬을 영화화한 <시카고>가 큰 인기를 끌었을 무렵인데 모제가 르네 젤위거를 가리켜 "지적인 미모를 지닌...(p197)" 운운한 건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르네 젤위거가 지적이라니! p170, p288(이 외에 다른 여러 군데)에서 나오는 010 국번의 휴대전화 번호 역시 20년 전에는 없었겠습니다. 

또 재미있는 게 p355에 보면 형사소송법 개정 이슈가 언급됩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있던 건데 근 삼십 년 동안 말썽이다가 2019년에 드디어 입법이 이뤄졌죠. 저도 당시 검찰 수사권 시대의 종말(...)을 맞아 형사소송법 구판 중 최신판을 잽싸게 구입했는데ㅎㅎ 여튼, 류대와 모제는 둘 다 경찰이면서도 "법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대(p356)"를 걱정합니다. 

p397에 나오는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책 뒷부분 참고문헌 목록 p491에도 그 제목이 나옵니다. 1960년대에 나온 고전인데 지금 와서 읽어 보면 시대를 너무 앞서 가서 오히려 오류를 범한 책 아닌가 싶습니다. 1989년에 역사의 종언을 말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지금 와서 구차하게 말을 바꾸는 판이니... p211에 나오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은 나라를 뒤집어놓은 거나 다름없"다는 서술은 다음 판에는 개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p191에서 레이스 뮤직(race music. 요즘은 이런 말을 쓰지 않죠)을, 의상을 치장하는 레이스(lace)와 연관시킨 건 모제씨가 아주 큰 착각을 한 듯합니다. 

클리프 리처드, 톰 존스, 앤디 윌리엄스 등(p201)은 모제의 어머니(p164) 세대가 즐겨 들었음직한 가수들이고(보통 엄마가 즐겨 듣던 음악을 아들도 좋아하게 됩니다), 스티비 원더, 로드 스튜어트(p182) 혹은 여러 메탈 장르가 아마 모제 자신의 청춘기에서 스스로 찾아 듣던 음악이겠죠. 아들은 경찰인데 엄마는 출신도 부유층인 데다 다시 부유한 남성과 재혼한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흥미로웠습니다. "서양화가 동양화보다 더 그림 같고, 국제 경쟁력도 떨어지는 데다 사 놓아 봐야 가격도 안 오른다"는 모친 말씀에 주인공 모제는 "(모친이) 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하는데 독자로서 여기에 웃으며 공감하면서도, 솔직히 이건 맞는 말 아닌가 싶었습니다. p386에 애너벨 청과 함께 언급되는 그레이스 켁은 이름을 Grace Quek이라고 씁니다. 

이 책에서 모제는 미국이 퍼뜨리는 악성 종양(p405) 같은 대중 문화를 신랄히 비판합니다. 문화적 사대주의(p183), 신경제제국주의(p210) 등의 용어가 쓰이지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안 나오네요. 어찌보면, 미국 대중문화를 비판하면서 정작 모제 본인은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과 자유분방한 관계(미국 상업 문화가 퍼뜨리는 가장 나쁜 영향인 말초적 쾌락의 추구)를 갖는다는 게 역설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재혼한 모친(젊어서 열렬히 엘비스나 클리프 리처드 등 영미 팝송에 몰입했을)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다 읽고 나서 답답해지는 가슴을 저도 모제처럼 나래를 만나 해소(p195)하고 싶어졌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