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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 - 어둠의 시간을 밝히는 인생의 도구들
미셸 오바마 지음, 이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4월
평점 :
미셸 오바마 여사는 8년에 걸쳐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로 활동한 분입니다. 버락 오바마도 아주 젊은 나이에 2004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화려한 정치 커리어를 열기 전부터 이미 최고 학부를 졸업하여 엘리트의 길만을 걸었던 사람이지만, 그 부인인 이분 역시도 명문대를 나온 수재 출신이고 개업 변호사로서 뚜렷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남편에게 "당신의 부인은 언제 정계에 데뷔하는지?"를 물으면 그는 언제나 "내 아내는 정치를 하기엔 너무도 현명한 사람"이란 대답으로 응수한다고 하죠.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일각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 것과 달리 이분에 대해서는 비토 세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훌륭한 인재에게는 언제나 그를 잘 다독이며 올바른 길로 이끈 훌륭한 부모님이 있기 마련입니다. p5에 보면 저자가 자신의 부모님께 바치는 헌사가 있습니다. 부모는 꼭 물질적으로 자녀를 뒷받침해 줘서 훌륭한 부모라는 게 아니라, 용기를 북돋우고 바른 길을 가르쳐 주며 뛰어난 DNA를 물려주신 것만으로도 그 자녀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미셸 오바마 같은 위인들은 이처럼 언제나 자신의 책에서 당당하게 이런 헌사를 적곤 하는 것입니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Roosevelt)는 대공황 시기 의기소침해 있던 미국인들을 향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는 명언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위축될 상황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주는 부정적 기류에 지나치게 짓눌려 아무런 대처 의지를 못 드러내는 이들을 격려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어찌보면 지금도, 앞으로 수십 년에 걸친 불황기가 시작된다든가, 세계대전이 멀지 않았다는가 하는 근거 없는 불안감 조성 분위기가 횡행하는 걸 보면 대공황 직전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에선 몇몇 은행이 파산하고, 한국에서도 주가 조작 세력이 판을 치는 행태를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이 책은 그런 사태가 벌어지기 몇 달 전에 완성되었을 원고에 기반했습니다만, 미셸 오바마는 마치 미래를 내다본 듯, 불안에 떠는 독자를 격려합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대체로 추상적인 두려움이다... (우리는 지혜를 발휘하여) 실제로 위험한 상황과, (위험하다며) 날조된 상황을 구분하고자 시도하며 살아간다(p81)." 가짜 뉴스와 여론 조작이 대담하게도 대로를 활보하는 요즘, 나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의지할 방법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의지와 혜안뿐임을 여사는 환기하는 것입니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한국으로 치면 남자프로씨름 한라장사급에 해당할 만큼 당당한 피지컬의 소유자이지만 성품은 정반대로 주위에 잘 호응하고 정면에 나서는(그래도 아무 상관 없는데) 걸 자제하는 경향입니다. 무슨 행동하는 여성으로서 자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그럴 리가), 타고난 성품이 겸손하고 선량한 분이라서이며 사실 부군인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런 사람에 가깝습니다. 원래 남녀는 끼리끼리 만나는 경향이 있죠. 물론 p155를 보면 "나는 아빠(부친 프레이저 로빈슨)와는 다르다. 덜 순응적이고 의견을 자주 표현하는 편이다."라는 말이 나오긴 합니다. 그러나 이건 로빈슨씨가 워낙 진중한 인격자 스타일임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하죠.
"나의 두려움보다 작은 것에 나를 맡긴다. 나의 우려와 분노보다 작은 것, 압도적인 좌절감보다 작은 것에 나를 맡긴다(p55)." 평범한 우리에게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남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는 공연한 강박, 경쟁심리, 허영심, 남들 앞에서 두드러져야 한다는 이상한 연예인병 따위에 나 자신을 좀먹힐 이유가 없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때 모든 문제의 해법이 보이는 법입니다.
"처음 이 책을 구상할 때에는 이 책이, 부단한 변화의 시기를 겪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변화의 시기를 주로 바깥에서 바라보려 했다(p35)." 그러나 작금의 코로나19 유행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며 여사는 저런 시련을 겪는 게 그저 다른 사람들의 사정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인생의 안정을 찾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며 대단히 소탈한 어조로 말합니다. "불확실성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구석구석 적시고 있으며, 핵전쟁의 위협만큼이나 광범위하고 아이의 기침 소리만큼 사사롭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역시 여사는 표현력도 참 빼어납니다.
일단 힘든 공부를 하며 쟁쟁한 수재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분들은 낙제생과 한 책상에 앉아 본 적조차 없고, 곁에서 경쟁했던 이들은 다 본인과 지능, 끈기, 의지를 갖고 레이스를 펼치는 수재들이죠. 일류 로펌에 취업하고 나서도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시카고의 어느 고층 빌딩 47층에 자리한 회사법 전문 법률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는 매일 매주 매달 청구가능한 근무시간을 최대한 욱여넣는 법을 배웠다(p45)." 이런 구절을 보면 그녀 역시 영락없는 한 명의 워킹맘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일(그러나 그렇지 않은)을 여사는 회상하는데, 둘째 딸 사샤가 어려서 추바카(스타워즈의 한 캐릭터) 수트를 입은 사람(백악관 파티에 초청받은)한테 엄청 큰 공포를 느껴 한동안 큰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일은 어린이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으며 아직 둘째 딸이 어렸기에 어머니로서 애가 보이는 저런 증상을 놓고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겁니다. 또 제 생각에는, 백악관이라는 지극히 공적인 장소에서 자라며 다소의 정서적 불안이 있던 상태에서 무엇이든 트리거로 작용했을 듯도 합니다. 여튼, 여기서 여사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이 책의 주제를 다시 꺼냅니다. 확실히 이 책은 명백한 주제의식을 두고, 체계적인 집필 기획 하에 쓰인 책임이 이런 데서도 드러나며 여느 여성 정치인의 전형적인 회고록들과는 차별점이 보입니다.
남편 바로 앞에 대통령을 지냈던 조지 W 부시처럼 부친의 후광을 입어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학생들도 있는데 자신처럼 당당히 실력으로 입학한 경우가 그저 피부색만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일에 대해 여전히 저자는 울분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결혼이란 걸, 쫓아가 쟁취하는 트로피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p215)." 물론 비범한 인생에게 결혼 상대방은 누굴 고르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같은 페이지에 나오는 표현대로, "많은 사람(이성)들을 더 만나 보고, 가슴이 온통 떨리는 느낌도 느껴 보고" 나서야 비로소 결혼 상대방을 고르는, 지극히 인간적인 체험을 자신의 딸이 하기를 바라는, 아주 솔직한, 진솔된 어머니로서의 희망을 피력합니다.
책 후반부에는, 꼭 넉넉하지만은 않았던 살림에서 빠듯하게 자녀를 키우며, 나서야 할 때는 반드시 나섰으나 그렇다고 아무때나 나서서 자녀의 자립심을 꺾지는 않았던 어머니 매리언에 대한 회상이 나옵니다. 딸이건 아들이건 위인을 키우는 몫의 태반은 반드시 어머니의 기여이며, 이런 어머니 밑에서라면 만약 그 자녀가 위인까지는 되지 못했다 해도 아마 분명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 있을 것입니다. 미셸 오바마는 성공한 법률가, 영부인, 셀럽이 아니었다고 해도 분명 내면이 안정되고 행복한 사람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