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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평점 :
품절
"다양성과 전형성이 이루는 조화". 이 세상은 원래 천차만별의 다양한 군상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며, 어느 한 가지의 우세종이 독과점하는 단색 스펙트럼과는 거리가 멉니다. 맹수는 맹수답게 타고난 기질을 과시하며 질주하고, 순한 양은 양대로 온순하게 한 세상을 살다 마칩니다. 양에게 사자다움을 강요하거나 그 반대를 억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저 말의 정확한 뜻은 이 책 p167에서 설명하는 에르고딕(ergodic) 이론 파트에서 더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전형성에서 조금만 벗어난 누군가가 보이면 대번에 비정상의 딱지를 붙이려 듭니다. 그 사람이 우리보다 공동체에 끼치는 좋은 기여가 훨씬 큰 경우에조차 그렇습니다. 어떤 정상/비정상의 경계를 무리하게 가르려 드는 시도는 결국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쓰는 언어에는 비유(metaphor)라는 게 있습니다. 집채만큼 큰 빵이라고 할 때 웬만큼 그 덩어리가 크다는 뚯이지, 정말로 누가 아파트 한 채만한 빵을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그 자체로 수학 기호처럼 명료하지 않으며 맥락이라는 게 보충되어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저자 카밀라 팡 박사는 어렸을 때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길 "상자 속에 갇혀 생각하는 사람(p27)"이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로만 해석"하는 어떤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합니다.
"사과 다섯 개를 사고, 달걀이 있으면 열두 개를 사오렴."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는 사과 5, 달걀 12를 사오는 게 정상인 반응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 팡 박사는 어렸을 때 사과 12개를 사오곤 해서 엄마의 걱정을 샀다고 합니다. "달걀이 있으면"이란 부분을 하나의 조건문으로 보고, 달걀이 있을 시 사과 구매 개수가 열 두 개로 늘어나는 귀결문으로 해석, 마치 컴퓨터 알고리즘처럼 연산을 수행한 것입니다.
애초에 "달걀이 있으면"이란 말은 남에게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없으면 어차피 못 사오는 것이고, 앞부분에선 "사과가 있으면" 같은 조건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두 종류의 지시는 뭔가 차이 나게 해석해야 한다는 착각을 (순전히 논리적 관점에서라면) 부를 만합니다. 이런 언어 관습은 효율성의 차원에서라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런 종류의 착각은 초2 정도만 되어도 하지 않는 게 보통이죠. 알고리즘 자체의 무결성보다는 사람 사이에서의 융통성 있는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자각이 이미 저 나이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린 팡은 왜 그런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고 그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할 때 그 타점이 조금만 경계를 벗어나도 엉뚱한 페이지가 열리거나, 반응이 늦어져 이차 터치를 할 때 비로소 다음 링크가 열려 짜증을 내곤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기계는 그저 제자리에서 정직하게 연산을 수행했고 잘못은 우리에게 있는데도 죄 없는 기기한테 화를 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한국에서도 팡 박사와는 무관하게 잘 알려졌는데, 군대 같은 상명하복 질서가 중요한 조직에서 저런 지시를 했을 경우 선임이 복장터진다며 이런 경우 후임, 고참 중 누구 잘못이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성인인데도 너무도 융통성 없이 워딩에만 집착한 후임도 문제이겠고, 중의적 해석의 여지를 남긴 채 지시를 내린 선임 역시도 잘못이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나무는 서로 다른 맥락과 주장을 넘나들며 제 역할을 한다.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할 수도 있고, 전체 줄거리를 파악하려 할 수도 있다(p32)." 여기서 팡 박사가 "나무"라고 하는 건 그저 비유(팡 박사가 서투르게 다뤘던!)이거나, 우리가 수형도라고 할 때의 그 나무를 뜻하는 건 아닙니다(물론 그렇게도 새길 수 있으나 그러면 의미가 크게 축소되고 맙니다). 팡 박사는 다재다능한 과학자답게, 여기서 진짜 생물학적인 나무를 뜻하는 겁니다.
그녀에 의하면 나무는 프랙털 구조라서 부분이 전체를 모방하여 생장하고 가지를 본체의 생명 유지에 지장없게 적절한 방향으로 벋어나가게 할 줄 압니다. 사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나무는 몸에서 마구 가지가 솟아나는 생물인데 서로 안 다치게 저렇게 큰다는 게 알고보면 굉장히 신기한 겁니다. 이와 반대되는 게 상자처럼 틀에 박혀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박사는 이처럼, 융통성 있는 소통의 가치를 진즉에 인정하고, 단선적 오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메타적으로 볼 줄 알게 된 것이죠. 사람이 발전이 있으려면 저렇게 남 탓을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설령 그 다른 사람이 명백히 잘못했던 경우라고 해도 말입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매일의 질서를 통제할 만한 수단을 찾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 집착한다(p84)." 그러니 사실은 자폐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질서를 잘 지키고 비폭력적인 인간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정돈, 청소는 엄청 스트레스 받는 일입니다. p87에 나오는 대로 열역학 제2법칙에 반하는 활동이기 때문이죠. 그처럼 사물의 기초 질서에 반하는 노동을 하면서도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얼마 안 가 허물어지는 걸 볼 때 좌절감이라는 게 꽤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강박이 있는 환자라면 이게 얼마나 미칠 지경이겠습니까. 주부들이 겪는 우울증은 바로 가사노동의 반복성이라든가 외부로부터 인정 빈약성 같은 이유가 있고 여기에 대해 팡 박사는 깊은 위로를 보내는 듯합니다.
우리는 프리즘을 초등학교 때 다루면서 빛을 분해하는 그 성능을 눈으로 보고 신기해합니다. 무엇인지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고 섞여 있는 건 다루기 힘들 것만 같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프리즘이 되어 대상을 이런저런 요소로 분해하고 분석하면 더이상 그 대상을 무서워하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프리즘처럼 되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투명해질 줄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물리학에서 사물은 입자이거나 파동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단, 빛은 이중성을 지님). 파동은 서로를 증폭하거나 상쇄할 수 있습니다(p140). 저자는 "삶의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타이밍이 핵심이다"라는 말도 하는데 이 정도 센스면 누구도 이분한테 자폐 스펙트럼 어디라고 말을 함부로 못 할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과학의 이런저런 이치를 우리네 삶에 적용시켜 설명해 준다는 게, 살면서 가장 힘든 경지인 자기객관화, 메타인지적 사고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도 드네요.
확률은 특정 가정 없이 구하는 값과, 특정 조건 하에 구하는 값이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두 조건이 독립일 경우 확률값이 같기도 합니다). 이 이론을 베이지언 확률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베이즈 정리가 "증거가 가설을 개선하도록 돕고, 가설은 증거를 더 잘 활용하도록 돕는다"고 합니다. 이 정리를 만들어낸 베이즈 목사야말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게 돕는 최고의 상담사였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인공신경망에 대한 논의는 요즘 핫한 AI, Chat GPT 관련해서 쉬운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사실 컴퓨터 일반이론도 그렇고 머신 러닝도 사람의 행태를 모방하여 여기에 이른 성과입니다. 규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인간사회의 이상한 그런 무질서성에 대해 너무나도 불편해하며 적응을 힘들어했던 저자가 많은 고생 끝에 이론적으로나 실생활에서나 드디어 갈등을 모두 극복하고 일반인들을 이처럼 잘 도닥이며 가르치는 책까지 쓰신 걸 보며, 우리도 주어진 환경이나 내 자신의 약점을 놓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더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다른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