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범죄 대책과 시라타카 아마네
가지나가 마사시 지음, 김은모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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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를 봤는데도 손을 뻗어주지 않은 인간들(p189), 목적은 계도가 아니라 oo입니다(p190)." 며칠 전 리뷰한 <사색 판매원> 중 "증인"이라는 작품이 기억나는데, 현대인들이 사는 목적은 정부에 세금 내는 게 전부라는 냉소적인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최소한의, 정말 최소한의 연대의식만 유지해도 사회가 이처럼 위험한 곳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어쩌면 거의 날마다 일어나는 강력 범죄 사건에서 주범은 다양할망정 한결같은 공범은 남 일에 무관심한 우리 모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소설에는 경찰 네 사람과 살인사건 피해자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자 이름이 본문에 병기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공, 타이틀 롤인 젊은 여성 형사 시라타카 아마네는 한자 이름이 나오는데 역자가 아마 내용 이해에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인 듯합니다(몰라도 상관 없지만). 제목에서 "과"는 연결조사가 아니고 시라타카의 소속 부서를 나타내는 課입니다. 시라타카는 白鷹이라 쓰는데 뒤의 글자는 매 응 자입니다. 우리가 한국사 교과서에서 "응방"이라는 걸 배웠는데 그 글자와 같습니다. 

이 소설에는 시도때도 없이 "매의 눈"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시라카와 아마네 형사의 감각과 관찰력이 그만큼 예리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p151에는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의 먹잇감을 발견한 느낌"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이름인 아마네는 雨音이라 쓰는데 p175에 그녀가 조산원에서 태어날 때 빗소리가 들려서였다는 사연이 나옵니다. 또 시라타카 형사를 자신의 (죽은) 누나처럼 생각하며 따르는 신참 우즈카(兎束) 신사쿠도 한자 이름이 노출되는데 이 젊은이를 사람들이 종종 토끼, 토깽이라고 부르기 때문인 듯합니다. 

시라타카 형사는 "여성스러움"이 덜하다고 주변의 평판이 거의 고정되었는데 본인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듯합니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은 "여자력"이라 부르나 본데 p55에 이 말이 나오고 역자가 각주까지 붙여 놓았습니다. 이런 캐릭터를 보면 저는 <명탐정 코난>의 사토 미와코가 생각나는데 거기서 사토 형사를 남몰래 사모하는 남자 경찰관 이름이 시라토리(白鳥)여서 묘한 우연의 일치를 보입니다.  

소설 초반에 어떤 어린이(레이나 짱)이 납치 사건으로 죽어서 공동체에 충격을 안기지만 그 파장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대중은 저게 얼마든지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데도 무심히 넘기고 말며 결국 흉악범에게 어떤 온상을 깔아 줍니다. 이어 이 지역에서는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터지는데 피해자가 죽은 방법이 거의 같지만 세 사람 사이에 어떤 교차점이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이런 장르에서 보통 그렇듯 주인공만 희한한 촉을 발휘해서 사건의 진상에 대해 바른 방향을 잡고 주인공의 상관, 베테랑들은 하나같이 헛다리를 짚어 사건을 더 미궁에 빠뜨립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런 경찰의 (흔히 보던) 삽질이 제법 큰 의미를 갖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미스테리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치밀하다거나 통쾌하다기보다 차라리 제법 슬픕니다. p131에 유쾌범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피에로 분장도 등장하고 해서 사건의 진상이 잠시 그쪽인가 했으나 아니었습니다. 시라타카 형사가 (이런 장르에서, 혹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여성 형사들은 꼭)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다가 기어이 죽기 직전까지 가고야 마는데, 이게 클리셰가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독특한 의미가 부여됩니다. 여자력은 메말라 있지만 마치 못생긴 남자처럼 의리 있고(못생겼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진국인 그녀는 선배이자 전남친인 구사노 형사와 또 독특한 소통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후반에 놀라운 활약을 보여 주는 후쿠카와 다이치 수사 1과장도,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정말 최고로 멋진 남자입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비록 늙었고 아마 가정도 있겠으나)를 만나야 합니다. 진심.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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