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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 - 암호화폐가 불러올 금융빅뱅
홍익희.홍기대 지음 / 앳워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2018년에 간행된 책인데 이때 이미 암호화폐의 도입이 부를 여러 파장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먼저 화폐의 본질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모두 5챕터로 구성된 이 책에서 2장, 3장을 통해 화폐 일반의 지난 역사를 두루 짚습니다. 서론 격인 1장에서 아직도 이 새로운 현상이 어색하고 낯설었을 독자들을 위해 문제의식부터 심어 주고, 4장에서 암호화폐의 역사를 요약 분석한 후, 5장에서 향후 전망, 즉 암호화폐를 둘러싸고 세계 자본 간에 벌어질 전쟁 양상에 대해 내다봅니다. 책이 나온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만큼 짜임새 있는 체제로 독자를 가르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심지어 예측도 상당수가 적중한 책은 보기 힘든 듯합니다. (단, 그간 발생한 최신 사정들은 따로 업데이트가 필요하겠죠)
"비트코인의 탄생 10년, 비트코인은 시작에 불과하다!" 뒤표지에 적힌 모토입니다. 5년 전 책이니 이제 이 혁신적 아이템이 탄생한지 15년이 지났으며, 한국의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게 대략 10년 정도 전입니다. 이제는 내 자산을 불릴 때 포트폴리오 편입 사항으로 암호화폐를 고려하지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주변에서도 비트코인의 등락으로 웃고 우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됩니다. 비트코인이 한국인의 실생활에서 널리 결제 수단으로 쓰이게 되려면 아직 많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지금 먼저 선점(투자)해 두고 나중에 큰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 혹은 세력들 간의 눈치싸움은 전쟁을 방불케 합니다.
저자 홍익희 홍기대 두 분이 한국인이시니만치 책에는 한국의 화폐사 부분도 흥미롭게, 또 비중 있게 서술됩니다. 참고로 두 분은 부자지간이며(앞날개에 사진이 있습니다) 부친 홍 교수는 코트라맨으로 굵직한 경력을 쌓으신 분이고 아드님 홍 대표는 어려서부터 해외에 체류, 성장하여 탁월한 국제 감각과 외국어 실력을 갖춘 분으로 보입니다. p96을 보면 우리 고대 왕국 고구려에서 어떻게 무역이 이뤄졌으며, 국제 거래시 주된 품목이 짐승의 가죽이었고 이 가죽의 교역을 위해 길고 뚜렷한 루트가 형성되었음이 설명됩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배웠듯 도전(刀錢)과 포전(布錢)이 화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 특히 마케도니아 중심의 알렉산더 제국은 BC 3세기에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멀리 인도까지 짓치고 들어갔을 만큼 번성했습니다. 이런 그리스 제국이 왜 신흥 로마에게 패권을 넘겨 주었는가? 알렉산더가 대두하기 전 천하를 호령했던 아테네는 지중해에서 널리 쓰던 금화에 구리를 슬쩍 넣어 순도를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인위적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경기가 너무 침체하면 억지로라도 돈을 풀어야 합니다만 이후 그에 걸맞은 생산력 증대가 실제 안 일어나면 악성, 만성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2023년에 사는 우리들도 그를 막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감수하는 중입니다.
저자 중 홍익희 교수는 <유대인 경제사>라는 베스트셀러 저술로 유명한데 책 p200 이하를 보면 20세기 초반 모건 그룹과 록펠러 그룹의 실세들이 만나 연방준비은행을 만든 비하인드 스토리가 간단히 나와서 흥미롭습니다. 지금 세계가 리세션을 걱정하는 중인데 이 책도 챕터3에서 미국 경제사를 개관하며 공황의 리제와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분석합니다. 이처럼 경제 공부는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p321에 보면 1970년대에 만들어진 국제결제시스템 SWIFT가 간략히 설명됩니다. 현재 국제간 거래는 단일 화폐가 사용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해도 여러은행들을 거치는 동안 시간도 걸릴 뿐 아니라 누가 그 수고를 공짜로 해 줄 수 없으므로 수수료가 지출됩니다. 저자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암호화폐가 널리 쓰이면 이 모든 수고가 한순간에 0, 제로가 됨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런 물리적 실체나 효용이 없는 암호화폐가 지금 그토록 기대를 모으고 고가로 치솟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서유럽과 미국은 러시아를 이 SWIFT에서 퇴출했는데, 이때 러시아와 중국은 대안이 될 만한 결제 시스템을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며 몇 주 전 드러났듯 사우디를 살살 꼬셔서 이 체제에 들어오게 할 요량입니다. 그 성패 여부는 지금 알 수 없으나 이를 계기로 SWIFT가 균열되면 암호화폐 통용 시기가 더 앞당겨지는 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네요.
p390을 보면 채권시장 불안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자산시장의 규모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외환>상품>채권>주식 순입니다. 그만큼 (일반인들에게는 의외로) 채권시장의 규모가 큰 것인데 이놈의 채권이라는 게 알고보니 조용할 날이 없다시피했었네요. 지금 SVB 파산도 채권 가격 불안정에서 비롯했고, 엉뚱하게도 반 년 전 김진태 강원지사의 엄청난 판단착오로 한국 채권 시장에 큰 동요가 올뻔한 적도 있습니다.
이 책 p391은 완전 도선비기나 정감록 수준(?)의 예언력을 과시하는데 미 연준에서 금리를 (인플레 잡겠답시고) 자꾸 올리면 이걸 채권 시장이 감당 못한다는 겁니다. 채권은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이자와 원금을 따박따박 받는 게 목적인데 인플레가 생기겠다 싶으면 저 정해진 금액만 받아 챙기는 게 다 손해입니다. 그러니 채권 시장에서 채권을 살 때 최대한 후려쳐야 하는데 금리가 정도껏 올라야 이것도 가능하지, 연준이 자꾸 저렇게 해 대면 아예 시장 자체가 붕괴할 수 있는데 그게 5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습니다(지금이 더 심함). 게다가 이 책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나왔는데도 말이죠.
탈중앙화가 핵심인 암호화폐의 대두 와중에도 이와는 정반대 방향을 잡은 현상도 유력한 게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2018년에도 예를 들어 리플 같은 건 사전에 검증된 주체만을 검증자로 허용하는데 이는 비잔티움 장군의 문제 증명 등의 성과가 무색해지는 정책입니다(p304). 또 특정 소셜미디어에만 연동되는 화폐(p333), 이스라엘의 디지털 세겔 추진, 중국의 무조건 금지화(p348) 등 시대 조류에 역행하는 듯 보이는 현상도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도 있고 깊이 있는 통찰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