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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쩐 : 하 - 김원석 극본
김원석 지음 / 너와숲 / 2023년 3월
평점 :
p35를 보면 대본과 실제 드라마 대사가 좀 다릅니다. 대본집에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라고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바람의 조카"라고 되어 있네요. 약간 어색하긴 해도 뒤의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도 증권감독원이라는 현판인데 대본집에서는 본문 중 주석을 통해 "現 금융감독원의 전신"이라고 설명하지만 드라마에선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반면 p37에서 리픽싱 같은 용어에 아무 설명이 없는데 드라마에서는 클로즈드 캡션을 통해 뜻을 설명해 줍니다. 그럴 만합니다. 한편으로, p112 등 에서는 블록딜 등을 캐릭터 장태춘 등이 직접 설명해 줍니다.
p35에 은용이가 코인야구장에서 읽는 게 경제신문이라고만 나오는데 드라마에서는 무슨 "동향(!)경제일보"라고 제호가 찍혀서 웃었습니다(책 중에도 동향경제일보 읽는 스틸 컷이 실렸습니다). 드라마에서 U-MART라는 편의점 비슷한 데서 (정직 중) 검사 태춘이 간단하게 요기하는데 대리기사 차림이 잘 어울리고 훨씬 어려 보여서 잠시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p107에서 중절모를 쓰고 검찰청에서 조사받기를 마치고 나가는 명인주가 함진 검사에게 "일좀 하입시다"라고 할 때 "아유 그럼 곧 또 뵙겠네요. 회장님이 일하시면 검사들도 할 일이 생겨서"라고 할 때 개인적으로 드라마에서 가장 재치있는 대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함진 역 최정인 배우가 저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에서 (나이는 좀 드셨지만) 제일 미인처럼 보였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섬뜩한 비주얼의 캐릭터는 이진호인데 배우 원현준씨가 열연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의 여러 컬러 중 맛깔나는 두 가지를 김홍파씨, 원현준씨가 (서로 안 겹치게) 잘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이진호는 은용한테 수시로 요장, 요장 거리는데 이거는 구글에 검색을 해도 그 뜻이 안 나옵니다. 상권 p38에 비로소 그 뜻이 본문 중 주석으로 설명되는데 "소년원 학생회장"이라고 하네요.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건지 신기했습니다. 하권 p179에 용이가 "교도소에서 짱먹었다"고 자랑하는 대목 있습니다.
이진호는 여러 깡패들을 대동하고 상권 후반부에서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박준경의 차를 대로변에서 덮쳐 테러를 가하는데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말이 안 되는 장면이라 생각했습니다. p120에서 그에 대한 리벤지로 박준경이 이진호를 잡아와 둘이 대치하는 장면은... 둘의 실력 차이가 너무 나서 시청자로서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전직 검사지만 너무도 경박하고 그 영혼이란 애저녁에 악마... 아니 명인주에게 팔아먹은 이수동 역을 권혁씨가 재미있게 잘 연기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비록 악역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이 배우는 <치얼업>에도 잠시 나왔는데 진선호 母 황진희의 남편(처를 경멸하여 결국 이혼하는) 역이었고 이 드라마에서와는 분위기가 180도 다릅니다.
곽 박사라는 캐릭터는 p58, p131 등에 나오는데 이 배우는 <사랑과 전쟁>에 괴퍅한 시아버지 역으로 종종 나오는 우상전씨입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곽 박사가 젊은 여자(라곤 하나 40대로 보임)를 대동하고 황기석 부부와 식사를 같이하는 장면이 있는데 명품 바막 밑에 초록색 상의를 받쳐 입은 저 여자가 누군가 했으나 대본집에 "내연녀"라고 나옵니다(ㅋ 그랬었군).
참고로 이 드라마에서는 "내연녀"가 두 사람 나오는데 다른 사람은 p296 이하에 나오는 이수동의 내연녀입니다. 여기서 사실 장태춘팀이 사용한 트릭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데 함진이 명인주를 놓고 "그 정도로 무모한 인물은 아니"라고 하는 대목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p175에서 심지어 박준경은 "명회장이 이 정도로 미친 짓을 몰랐다"고 하네요?ㅋ). 네, 사람은 원래 화가 나면 무슨 짓을 할 줄 모르는 겁니다. 여자 하나 목숨을 걸고(아무리 업소녀라고 하지만) 공권력이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나요? 장검사님, 당신 oo도 그런 출신 아니었습니까? ㅎㅎ
p150을 보면 아주 중요한 대사가 나오는데 명인주가 자기 사위 황기석에게 "니는 내 돈 지키는 개다."라고 하는 게 그것입니다. (스포일러 조심!) 사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납득이 안 되는 게, 어쩜 저렇게 은용이 박준경 짱태추이 좋으라고 적전분열이 때맞춰 잘 일어나냐는 겁니다. 하늘이 돕기라도 하는 걸까요? 황기석이처럼 출세만을 지상과제로 삼는 괴물이 참된 가족의 의미를 알 리 없고 정략으로 만난 사람들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잘도 갈라설 수 있다는 의미로 좋게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또 명세희가 쉽게 부친을 배신할 수 있는 것도, 그녀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야망(돈으로 살 수 없는, 세종로 1번지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정도 미리 마련되었긴 합니다.
p308에서 차 박사라는 사람이 은용에게 "그러니까 당신도 결국은 블루넷을 집어삼킨 명 회장과 같은 사람 아닙니까?"라고 하며, p199에서 이미 장태춘은 "우리가 명회장이나 황기석하고 다를 게 뭡니까!"라고 박준경에게 따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긴 여기서 좀 싸워줘야 명인주-황기석 진영의 뜬금없는 내분과 균형이 맞죠. 아 물론 황기석도 무려 1화에서부터 선을 자주 넘는 장인과 싸우기는 했으니 밑밥은 없었다고 못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캐릭터는 남계장(검찰수사관)입니다. 그는 적당히 속물적이면서도 인간 양심의 코어를 지킵니다. 능력도 출중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균형 감각을 잃지 않습니다. 장태춘(얘는 그나마 나이나 어리지)이나 박준경처럼 어처구니없는 자기모순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함진 검사도 김성태(구치소에서 은용을 린치한 깡패)를 수사할 때 그게 강압수사 아니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나요? 시청자야 린치 상황을 직접 봤으니 아는 거지만 함 검사는 뭘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는지.
9화에 보면 검찰청 앞에 "수사는 경찰에게 기소는 검사에게"라는 표어 스탠드가 보이는데 실제로 서초동에 이런 게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한 정치적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없애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저 표어가 무색하게 장태춘과 (특히) 박준경은 잘도 월권을 하고 다닙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 대본집은 참 예쁜 굿즈입니다. 시청자로서 감사하게 생각하며 끝에 실린 김원석 작가의 짧은 후기도 여러 상상을 하게 도왔습니다. 이선균씨 싸인이 참 독특하단 느낌도 들었으며 <끝까지 간다> 이래 그의 연기는 언제나 탁월했다는 점 다시 말하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