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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를 살아가는 지혜, 논어
동리즈 지음, 김인지 옮김 / 파라북스 / 2023년 2월
평점 :
<논어>는 우리 조상들도 그로부터 삶의 지혜와 도덕의 기준을 추출하는 진리의 샘이었습니다. 이 책은 논어 원문에서 많은 구절을 인용하고 한문에 음도 달아서 독자의 구송을 돕고, 해설을 붙였으며, 그와 관련된 다른 출전(역사서 등)의 중국 고사도 곁들여서 입체적 학습을 가능하게 합니다.
p88에 보면 <자로편>에서 유명한 구절이 인용됩니다. 선인과 악인을 인인(隣人)의 평판을 통해 구별하는 방법인데, 개인적으로는 재작년 EBS 수능특강에서도 이 부분을 가르치는 걸 봤습니다. 매우 단순하고 상식적인 듯 보이지만 깊이 있는 지혜를 담은 문장입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사람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5호 16국 시대 전진(前秦)의 왕 부견의 일화를 같이 소개합니다. 재상 왕맹이 "적은 진(晉. 즉 동진)이 아니라 선비족과 강족"이라 간했으나 부견은 이를 무시하고 남정을 무리하게 단행하다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인편에서 공자는 이약실지자선의(以約失之者鮮矣)라고 말합니다. 언제나 자신을 단속하면 실수가 드물다는 뜻으로 책에서는 새깁니다. 鮮은 교언영색선의인이라고 할 때와 그 용법이 같죠. 책에서는 절묘하게 장한과 왕정상의 고사를 이에 엮으며, 과오를 일단 저질렀다 해도 몸을 깨끗이 하며 제2, 제3의 타락을 면할 것을 타이릅니다. "에이, 기왕 망친 몸!"이라며 자포자기, 탈선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선택은 없습니다. 살면서 정말 명심해야 할 바입니다.
"빈이무첨도 빈이락만 못하며, 부이무교도 부이호례만 못하다.(p128)" 역시 공자님다운 멋진 말씀이며, 무첨도 좋지만 기왕이면 락의지경까지 가라는 독려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한실의 중시조인 유수가 엄자릉과 대범하게 교유한 일화를 들려 줍니다. "객성이 제좌(帝座)를 범하려 했나이다." 그 일관도 참 천문을 정확히 보긴 봤습니다. 이처럼 달인들은 사소한 예를 초월하여 대도를 함께 논하는 호방함이 있습니다. 광무제 유수의 다른 일화는 p152 이하에 또 나옵니다.
p177에 보면 사람의 겉모습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 나옵니다. 안연편에서 극자성의 말이 인용되는데 책에서는 자우, 등애, 위선 등의 고사가 함께 소개되네요. 이 교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지만 현실에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원칙이기도 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丁儀 역시 마찬가지로서, 그의 진가를 뒤늦게 알아보고 "사시가 아니라 장님이라고 해도 그를 맞았어야 했다!"라고 탄식한 조조의 일화가 유명하죠. 저런 극단적인 말로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조조도 어지간하다는 생각입니다.
서양에서는 인재의 고유한 특기만 중시하지 어떤 인격 같은 건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공자는 본인이 다재다능한 폴리매스였으면서도 언행일치, 지조 같은 도덕 팩터를 무척 중시한 게 독특합니다. 하긴 예수도 어부 등 하층민들로부터 제자를 받았으니 有敎無類(유교무류. p204)라 할 만합니다. 이 유교무류 정신은 이후 250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부패를 막고 사회유동화를 촉진하는 핵심 교리로 작동하죠. 저자는 이를 두고 시대를 앞서간 "교육개혁"까지 높이 평가합니다.
위정편에서 공자는 강압이나 혹률로 백성을 다스리는 건 한계가 있음(p237)을 분명히 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자의 일파가 나온 건 철학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예(禮)에 복귀하기를 이끌어야 하는데, 사실 한 무제는 앞서 사마천(p155)을 궁형에 처하는 등 무지막지한 면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백성을 잘 먹이고 본인은 검소하게 살며 나라의 경제를 잘 관리한 명군으로서의 면모를 더 강조합니다. 확실히 이런 미덕은 모든 위정자가 본받아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