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미안 ㅣ 미래지식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변학수 옮김 / 미래지식 / 2023년 2월
평점 :
이 변학수 박사님 번역은 첫째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 둘째 아무래도 작품의 배경에 대해 낯설어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에 대한 친절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사실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각주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친절히 부가 정보를 싣는 마음에는 그만큼 정확한 독해로 이끌려는 열정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p17의 각주 1 같은 것을 봐도, 2마르크(이제는 쓰이지 않는)가 한국 시세로 대략 얼마나 되는지 친절히 알려 줄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건 몰라도 큰 상관은 없지만,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 앞에서 느꼈던 큰 당혹감이 더 생생히 와 닿는 듯합니다.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신분이라면 공립학교(p13) 출신들은 categorical하게 무시할 수 있었겠으나 헤세의 소설들에서 자주 나타나듯 어린 주인공은 이런 불안한 상태에서 매번 근원적인 위기를 체험하는데 아무리 10대 시절이라곤 하나 너무도 안쓰럽게들 보입니다.
이 번역에서 막스 데미안은 더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하게 다가옵니다.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 정도는 겪었음직한 악마 같은 녀석이 바로 크로머죠. 벗어날 수 없다면 때려죽여!(p53) 한편으로 무책임하게도 들리지만 그 실행가능성 여부를 떠나 일단 듣는 사람 속이 시원해지기는 하는 일갈입니다. 데미안의 등장은 고맙긴 하지만 그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은 아니었는데 자립, 자유를 방해하는 또하나의 종속 상태(물론 나에게 우호적이지만)가 시작되었다는 게 싱클레어의 자체 진단입니다. 얘도 어떻게 보면 참 고생을 사서 하는 타입입니다.
허용된 밝은 세계(p63)와 카인의 일 사이에서 싱클레어는 언제나 갈등합니다. 이때 데미안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너는 누군가를 때려죽....여서는 안돼(p81)." 이건, 말이 바뀌는 게 아니라 이제 조금 더 크고 더 안정을 찾은 상대(싱클레어)에게 레벨이 달라진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죠. 사실 싱클레어처럼 섬세하고 연약한 아이한테 무슨 "허용과 금지"의 환기가 필요할까만 이런 아이의 내면에서도 선과 악의 대결은 폭풍우를 휘몰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두번째 스승 격일 피스토리우스와의 만남도 극적이면서 격의없는 분위기입니다. 이 음악가는 말투가 참 험합니다만 데미안 등 극히 일부만 알고 있을 아브락사스에 대해 듣고 곧바로 젊은 싱클레어에게 공명해 줍니다. 이 사람은 성음인 옴(p159)을 가르쳐 주는 등(<싯다르타>도 참조) 싱클레어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고, 특히 야곱의 씨름에 대한 가르침은 스승에 대한 극복을 뜻하지 않게 유도한 셈이라 재미있기도 합니다. 야곱은 그 씨름을 통해 이스라엘로 거듭났으니 말입니다. 이로써 싱클레어의 김나지움 시대는 마무리됩니다.
에파 부인은 아들 막스 데미안과 싱클레어 모두를 압니다. 이로써 싱클레어는 포근하고 거대한 여성성 안에서 자신의 성숙을 마무리짓게 되죠. "자신도 믿지 않는 소망에 매달려서는 안 돼요(p194)." 이제 싱클레어는 여태 거쳐 온 모든 방황을 마무리짓습니다만 데미안은 바로 그순간 그를 떠납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어른이 된 싱클레어는 더 이상 어떤 상실감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