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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캉디드 ㅣ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7
볼테르 지음, 김혜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1월
평점 :
볼테르의 고전 <캉디드>는 마치 대하소설의 요약본처럼 스피디하게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 무렵 혹은 20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 문학에선 특유의 중언부언 만연체가 지배적(물론 그게 또 매력이긴 합니다만)이었던 걸 생각하면 다소 의외이기도 합니다.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기획이 내세우는 대로 "쉽고 역주가 필요없는 번역, 주석이 본문에 녹아있는 번역"이 이 책에서도 돋보이지만, 구태여 윤문이 필요 없을 만큼 불어 원문부터가 심플한 걸로 유명합니다. 하긴 볼테르가 넉살(p8)을 지레 부린 대로 원래 이 사연은 독일어(p72)로 길게 쓰인 원전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으니 말입니다(물론 그런 건 없지만). p151에는 국뽕 가득 담아 영국의 문호 존 밀턴을 까는 대목이 나와서 우스웠습니다.
캉디드는 주인공의 별명인데 그 뜻은 소설 본문(이 책이라면 p9)에도 잘 나오고 또 일반 교양 사항으로도 잘 알려진 바입니다. 이 프랑스어 형용사는 영어 어휘에도 편입되어(캔디드) 드물게, 또 점잖은 뉘앙스로 쓰이는 단어죠. p9 밑에서 두번째 줄에 타피스리가 나오는데 영어의 태피스트리도 여기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저 뒤 p97 같은 데를 보면 "리브르 스털링" 같은 말이 나와서 흥미로웠는데 영국 파운드화뿐 아니라 부르봉朝 프랑스에서도 무게 단위와 구별하기 위해 저런 표현을 쓴 듯합니다. p132에 나오는 국왕 시해 사건은 앙리 4세(낭트 칙령의 주인공)에 대한 것입니다. p157, p181에는 유럽이나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은 왕이나 왕자들의 운명이 언급되네요.
설정에 의하면 주인공 캉디드는 남작의 따님 퀴네공드와 근친 간인데도 무리한 로맨스(게다가 비천한 혼외자 신분이니)를 벌이다가 성채의 안온한 삶으로부터 추방당하며(남작 부자 2대에 걸쳐 캉디드는 벌을 받을 뻔했습니다. p12, p75) 이때부터 거의 고구려 미천왕급의 개고생이 시작됩니다. 본시 그렇게 살던 사람이야 고생이 몸에 배어 그닥 힘들 게 없겠지만 이런 분들에겐 열악한 환경에 처했다는 인식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깡디드, 또 뀌네공드 못지 않게 빵글로스(팡글로스. 이하 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가 중요한 인물인데 그 나름 박식한 인격자이긴 하나 근본 바탕이 엉터리인 위인입니다. 한 사람이 세계관을 낙천적으로 갖느냐 반대로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설정하느냐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며 타인이 개입할 바 아닙니다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팩트가 프레임 안에 엉망으로 구겨넣어질 지경이라면 이런 관점은 타인을 교화하기는커녕 당사자 본인의 앞가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볼테르가 이 팡글로스 선생의 운명을 이렇게 비참하게 세팅한 건 물론 당대 특정 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긴 했겠지만, 현실에 단단한 바탕을 두지 못한 막연한 낙관론이 얼마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지를 깨우치려는 의도가 다분한 듯 보입니다.
볼테르 당대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 이 소설의 핵심 배경은 리스본 대지진 과정에서 근거 없는 낙천주의와 종교 맹신이 얼마나 처참하게 그 무력함과 한심한 허구성을 드러냈는지를 풍자하기 위해 그리 설정되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이 소설 속에는 좀 특이한 이야기들이 끼어드는데, 예를 들어 소설 속 퀴네공드의 부친인 남작 가문이 박살난 건 불가리아 왕(차르)의 정복 전쟁, 그리고 불가르 족의 영원한 적수 아바르 족의 행패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바르 족이나 불가리아 차르국이 위세를 떨친 건 리스본 대진재로부터 거의 천 년을 거슬러올라가는 예전 일입니다.
이때는 발칸과 아나톨리아가 비잔티움의 지배를 받을 무렵이며 이후 오스만이 이 일대(뿐 아니라 지중해 세계의 상당 부분)를 통치했고 볼테르의 시대에는 그 패권마저 해체될 단계였습니다. 불가리아 차르와 아바르 족(그나마 더 친근하게 묘사된)은 무지 폭력 야만 상태에 놓인 프로이센, 혹은 잡다한 슬라브 제족이 거주하는 동유럽을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장치 같습니다. 소설 후반부(p90)에는 엘도라도가 다 등장하니 명백한 판타지이긴 하지만요. p109에는 마르탱이 자신을 마니교도라고 밝히는 대목이 있는데 이때 캉디드가 "요즘도 마니교가 있나요?"라고 물어 웃음이 터졌네요. 그럼 아바르족은?
여튼, 유서 깊은 게르만 귀족 가문이 누리는 평화, 부유함, 위신 같은 게, 고명딸 퀴네공드의 비참한 성적 유린 과정에서 보듯 한순간에 붕괴할 수 있는 무상한 가치(p99도 참조)일 뿐이라는 게... 아, 마치 볼테르의 시대로부터 600여 년 전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정강의 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캉디드도 캉디드이지만 사람으로서 겪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겪고도 멘탈을 잘 추스려 현실에 재적응하고 의지를 다지는 퀴네공드가 대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볼테르의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무관하게). "명예를 목숨처럼 지키던 여인도 한 번쯤은 그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p89)" 이 소설에서 불가리아 군인들이 저지른 만행은 성범죄 외에도 전쟁범죄 등 아주 심각하고 복잡한 성격을 지닙니다만, 문제를 단순화하자면 이런 태도를 현대의 성범죄 피해자들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범죄자가 극한 응징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다만 그와는 별개로 피해자 역시 마음을 크게 먹고, 밝고 희망찬 삶을 resume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풍속범죄에 대한 에두른 언급은, 동성애 관련이 p168, 수간 관련이 p52, p79 등에 나옵니다.
팡글로스 선생이 "사랑(의 병)"에 감염(p29)된 한심한 사정 이야기는 마치 이때로부터 수백 년 전 창작된 <데카메론>의 몇몇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또 p56 이하에 나오는 할멈의 이야기도 어떤 대목은 데카메론의 한 에피소드와 놀랄 만큼 비슷한데 물론 데카메론 역시 이전 민담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바 있었겠죠. 여튼 남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자가 성욕 하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더러운 병에 걸렸다는 게 벌써 자격이 없음을 자백함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사람이 설파하는 어떤 원칙이나 교의에도 무슨 설득력 같은 게 실릴 리가 없습니다.
캉디드와 퀴네공드가 비현실적인 세계관 때문에 몇 배의 큰 고통을 겪고 고생한 건 사실 팡글로스의 잘못된 가르침에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노출된 탓이 큽니다. 이 팡글로스는 마치 몰리에르가 만들어낸 타르튀프(p119에 프랑스 희곡에 대한 언급 있습니다)나 마찬가지로 엉터리이며 그나마 무슨 범죄 의도 같은 게 없어서 다행이긴 하나 이 역시 도덕성의 발로라기보다 그만한 주변머리조차 갖추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리석음에서 비롯한 선의는 결과적으로 사기꾼의 수작만큼이나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캉디드는 자신의 기지 덕에 살아났으면서 엉뚱하게도 "역시 자연의 본성은 선해!(p83)"라며 이미 효력을 잃은 팡글로스의 가르침에 또다시 경의를 표합니다. 불치병입니다. 이렇게 멍청하니까 사기(p104)를 당하죠.
오지게 고생을 하고 나서 캉디드도 드디어 그 멍청한 수동적 기질을 버리고 기성 질서에 대들기도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p173에서 퀴네공드와의 결합을 반대하는 남작 주니어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요즘 드라마 <빨oo선>을 보면 은산이가 지남철에게 건배하며 "들이받자!"를 세 번 외치는데 어차피 답답한 현실이 개선 안 된다면 일단 들이받고 나서 대안을 모색해 볼 일입니다. 마지막에 드디어 철이 들게 된 엉터리 박사 팡글로스의 씁쓸한 토로도 결국 그 뜻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