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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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염치, 부끄러움을 알아야 그게 인간입니다. 내가 부족하다 싶으면 더 갈고 다듬어야 마땅하지 혼자만의 공간에서 우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하고 무작정 자신만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밀어붙이듯 강요하는 유형을 두고 우리 조상들은 예전부터 소인배, 악인으로 규정하고 이를 경계해 왔습니다. p106을 보면 이어령 박사는 대학, 중용 등을 출처로 들며 "혼자 있을 때도 삼가고 조신할 것"을 강조하는 말로 "愼獨(신독)"을 환기합니다. 대학 중용에 명언이 한두 마디가 나오는 게 아니지만 유독 한국의 유학자나 지식인 사이에서 이 어구가 자주 거론되는 건 (이 책에 나오는 대로) 동인학맥의 거두 이퇴계가 특히 강조한 바 있어서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원래는 어조사 也를 끝에 붙여서 "신기독야"라고 하죠.  

"역설과 반어는 아주 밀착되어 있다(p90)." 사실 역설은 역설이고 반어는 반어일 뿐인데 고교 참고서 같은 걸 보면 이 두 기법을 같은 항목으로 놓고 설명합니다. 이 오묘한 이치를 설명하면서 이어령 선생은 김소월의 <먼 後日>을 예시(例示)합니다. 제가 며칠 전 어느 증권 애널리스트의 방송을 봤는데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면서 일부 예측자의 모순되는 듯한 워딩을 비판하더군요. 물론 주식에는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 식으로 일도양단이 되어야 하겠으나 인문 영역이라든가 사람 사는 이치는 꼭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서야 잊었노라" 이 말은 결국 안 잊겠다는 소리를 저리 돌려 표현한 것뿐이죠. 혹은, 제논의 역설(이 선생이 생전에 즐겨 거론한)처럼, 부분에 있어 타당한 게 전체로서는 부당할 수 있습니다. 

p168에는 여성의 비행에 대해 선생 특유의 의미부여가 나옵니다. 각별히 총명한 따님을 뒀던 선생이니만큼 여성 얘기할 때 선생은 언제나 페미니스트가 됩니다. p168 이하에서 선생은 박경원, 또 우리 시대의 이소연을 회고합니다. "여성의 비행은 그 자체로 시위다." 사실 이 분야에서 바로 떠오르는 인물인 아멜리아 이어하트도 그 생애 자체가 하나의 문화 상징입니다. p162에서 인용하는 작가 아인 랜드의 말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선생은 생전 고령 시점에서도 구닥다리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이처럼 전거로 삼는 지성인들의 pool이 언제나 최신으로 업데이트되어 있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로 한국사 교과서에도 잘 나오는 이규경은 "농업이 잘 되기 위해서는 천지인 삼자의 힘이 다 필요하다(p20)"고 했답니다. 경회루의 유래와 드라마 <용의 눈물>도 같이 거론되는데 이런 조상들의 의례, 혹은 몸부림이 미신처럼 보여도, 사실 기상 현상은 21세기의 첨단 이론, 기술로도 설명이나 텅제가 완벽히 이뤄지지 못합니다. 그러면 진인사대천명, 어차피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것 다른 온갖 정성을 기울여 공동체의 기강을 정화하고 다른 사회적 덕목을 부가적으로 달성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습니다.

<장크리스토프>로 노벨상을 받은 작가 로맹 롤랑은 실제로 <베토벤의 생애>라는 책도 따로 썼는데(p131) 여기에는 "비굴한 사람은 우상을 통해 행복을 얻고 위인(베토벤 같은 이들)은 고행을 통해 진정한 삶의 기쁨이 뭔지 체험한다"는 말리 나온다고 합니다. 연예인 뒷얘기나 경솔하게 읊어대는, 지성과 품격 모두를 결여한, 반골을 가장한 미친 광대(아무한테서도 존경을 못 받는) 입장에서는 이런 경지가 이해될 수 없겠죠.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구(詩句)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아주 특이하게 해석하는 이 선생의 글을 읽으며 인생의 진정한 묘미와 경지는 과연 어디서 찾아야할지 깊이 반추하게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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