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의 어떤 비의(秘義)를 알려면 신뿐 아니라 때로는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도 아후라마즈다뿐 아니라 아흐리만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남겼으며, 그 아흐리만의 입에서 나왔다는 많은 메시지들은 이후 조로아스터 교의 핵심을 이루기도 했죠. 악신의 성격은 역설적으로 절대선과 신(神)의 본질에 대해 더 정확한 파악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면도 있습니다.  

인간은 본디 떠도는 존재입니다. 어느 한 지역에 머물려고 작정하면 그때부터 발전이 멈추고 에고와 정체, 심지어 부패가 시작되며 자기객관화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을 이루고 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중화제국이 19세기 들어 처참한 굴욕을 겪은 건 발전을 거부하고 쇄국을 고집했던 잘못된 결정에서 비롯했습니다. p85를 보면 아담도 낙원을 나온 후에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생각으로는 아담이란 어리석은 사내가 신의 명을 거부하고 공연한 유혹에 빠진 대가를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으로 톡톡히 치른 것만 같은데, 이 소설의 메시지는 그와 반대입니다. 그러니 아담은 처(妻) 이브를 거친 악마로부터의 제안을 수용하고 나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되었다는 뜻도 됩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원죄(아우구스틴의 체계에서)는 저주의 낙인이 아니라 삶의 진정한 의의를 깨닫기 위한 마중물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거짓말이란, 가면을 쓴 진실에 불과하다(p129)." 여인은 세상을 비웃기 위해 춤을 추고 다닙니다. 세상을 비웃겠다는 의도는 존중하지만 그렇게 광인의 춤을 추고 다닌다고 무슨 변화가 생기는가? 당연한 의문입니다. 이 여인의 논리를 좇자면, 잔학한 악마 역시 사실은 불미스러운 가면을 쓴 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때리며 고행속죄를 하는 인물을 flagellate라고 합니다. 중세 유럽에 이런 이들이 실제 있었으며 수도사나 사제일 수도 있고 평신도일 수도 있습니다. 인기 소설이었던 <다빈치 코드>에도 일부 이 비슷한 묘사가 있었습니다. p291에서 이제 선과 악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그"는 아예 "선의 끝은 악이고 악의 끝은 선"이라며 본격적인 궤변, 아니 불멸의 진리를 설파합니다. 사실 설파라 하기엔 다소 어폐가 있는 게 여전히 그의 어조가 신중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피하기 위해 위장된 선을 행하는 건 진정한 선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편으로서의 선도 선으로서의 성격을 전적으로 박탈당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p311을 보면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뜻 있는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의 유두에는 딸기가 달려 있고 국부에는 장미꽃이 피어 있습니다. 누가 이들을 맛보는 중일까요? 여자의 말이 맞습니다. "희망은 곧 그리움이겠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