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흔들린다 - 경제, 정책, 산업, 인구로 살펴본 일본의 현재와 미래,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정영효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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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만 해도 일본은 세계 무역의 이익을 혼자 차지하다시피한 경제 대국이었다고 합니다. 이러던 게 플라자 합의를 거쳐 국내 부동산 버블 붕괴라는 큰 재난을 겪고 나서는 수십 년 간의 경기 침체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이 걱정 되어서가 아니라 혹 우리 나라 역시 언젠가는 지금 일본이 빠진 함정에 고스란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경 도쿄 특파원 정형호 기자가 쓴 이 책은 일본 침몰의 과정 그 전조가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한국의 현재와 닮았는지를 환기하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20세기에는 일본이 아시아의 전주 노릇을 하다시피했는데 현재는 누가 봐도 중국이 가장 큰 금고를 놀리는 모양새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몇 년 전 AIIB를 만들어 위안을 아시아에서 기축통화 자리에까지 올려 놓으려 합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 오히려 대외강경론자로 비춰졌던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엉뚱하게도 중국을 은밀히 도왔다, 자금줄 노릇을 했다는 비판이 인다고 합니다. 아베 전 총리가 재임 기간 동안 엔화를 마구 찍어낸 건 맞고, 이 돈이 국제금융시장으로 흘러가 중국이 요긴히 썼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의 민간이 그 늘어난 통화(자본)를 활용할 의지가 없어서였으며, 지나친 결과론적 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쓰겠다는 돈을 중국이 영리하게(혹은 그저 운이 좋아서) 잘 활용했다고 봐야죠. MMT라는 건 코비드팬데믹을 거치며 과연 미친 이론이었음이 판명되었고, 일본처럼 경제하려는 의지가 아예 근본에서부터 꺾인 나라는 물론,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누구에게나 확연해졌습니다. 물론 정영효 기자님은 p98에서 여러 지표를 들며 "일본은행이 찍어낸 돈이 고스란히 중국으로 흘러간" 근거를 제시합니다.    

일본은 왜 이렇게 침체해 갈까? 이에 대한 답도 책에 나옵니다. 우선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드는데 대만도 현재 잘나가는 건 이미 거대공룡이 된 TSMC가 국민경제의 중심에 우뚝 서서입니다. 다음으로 일본은 재교육을 통한 생산성 향상 면에서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한국은 이 두 가지 점에서 어떨까요? 일단 대기업과 그 하청(협력) 업체 중심 구조는 비판도 많이 받지만 여튼 이 격변하는 세계 경제 전쟁 속에서 이게 잘 통했다는 점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은 장노년층 직업 교육 시스템에 비교적 정부 지원이 잘 이뤄지는 편입니다. 이게 꼭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되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중장년은 퇴직 후 뭐라도 하려고 동분서주하지 일본처럼 무기력하게 연금 저축 의존 위주로 살지는 않죠. 이건 국민성과 사회 분위기 면에서 양국이 큰 차이가 있다는 점 주목해야만 합니다. 

고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교수는 "잘 안되던 방식은 당연히 폐기하고, 잘 되던 방식도 일단 폐기해야 한다"며 이른바 파괴적 혁신을 주장했는데 이건희 회장이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방침과 매우 비슷합니다. p193에는 이른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物作り), 우리말로 흔히 장인정신으로 번역되는 풍조가 결국은 일본의 발목을 스스로 잡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인정신은 그 자체로 매우 좋은 것이며 이탈리아의 경우 수제 명품을 만드는 산업은 가령 전세계 경제가 공황을 겪어도 경기를 전혀 안 타고 혼자 살아남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괴물 노릇을 합니다. 장인 정신을 폄하하는 건 후미진 산골의 땟국에 쩐 추한 얼굴 천민 정신 소유자나 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기존 장인의 방식"에 종교적 의의까지를 부여하여 절대 불변의 진리로까지 떠받드는 물신주의 마인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 혁신을 가로막는 일등 방해꾼이 될 수밖에 없죠. 살아남으려면 transformation을 agile하게 해 내는 게 생존 경쟁에서 이기는 요체라고 저자는 요약합니다. 한국이라고 꼭 과거의 방식에 집착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날카로운 지적(p128)도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의 입을 통해 나옵니다.  

지방소멸, 인구감소. 이 두 가지 현상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장래에 대해 암울해합니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더했으면 더했지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은 특히 세계 반도체 생산의 클러스터를 기흥, 동탄 등을 가로지르게 만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만 국토 발전이 이처럼 불균형하게 이뤄지면 그 부작용도 걱정은 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결혼도 안 하고 자녀도 갖지 않아 젊은 세대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나라에 어떤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팩스, 팩시밀리는 한자 소통이 큰 비중을 이루는 일본에서 나온 세계적 발명품이었습니다. 각종 도면이나 사진을 원격지 간에 송수신하는 수요를 이 제품이 커버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각종 스캐너나 이메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일상화된 판에 더이상 이 기기와 회선을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 어느 지방 정부가 고안해 낸 팩스 위주로 돌아가는 허시스라는 시스템(인프라)은 현장 기업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습니다. 

하라타 유타카 교수는 일본의 현재 침체상이 마치 청나라 말기를 연상케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청 제국 역시 명나라를 대신하여 중원의 주인으로 등장했을 때는 온갖 혁신을 주도한 신시대정신의 총화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게 시대의 변화에 적응 못하고 구태를 고집하다가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 것입니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과거의 낡은 이념에 매몰된 집단의 모든 운명이 이와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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