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주다 - 딸을 키우며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우에마 요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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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본시 일본과 전혀 별개의 문화, 혈통, 정체성을 지닌 지역 정치 단위였으며 조선과도 오랜 시간 종속적 지위에서 교류한 적 있습니다. 소위 명치 유신 이후 강압적으로 일본국에 편입되었으며 불평등 대우를 받다가 2차 대전 패망 후 미군 기지가 들어서기도 하는 등 약소 종족으로 많은 곡절을 겪어 오늘에 이릅니다. 행정상, 국제법상 일본 영토이고 국민이지만 이 책 저자분처럼 다른 비전과 지향성을 갖고 사회 운동을 펴 오는 이들이 많으며 한국의 진보진영과도 연대를 이어 갑니다. 

"바다가 시꺼맸대. 미군 전함이 온 바다를 뒤덮고 일제히 포구를 이쪽으로 겨누었다고 하더라.(p62)" 미군은 이처럼 주둔 예정 현지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고 경솔하거나 무례한 매너를 노출하여 공연한 반미 감정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곧잘 저질렀습니다. 하지 중장도 포고문을 발표할 때 사용한 문언(워딩)이 전혀 공손하지 않았기에, 비슷한 시기 38도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 치스차코프 대장의 대단히 상투적이고 기만적인 인삿말과 크게 대비되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긴 합니다만. 

"함포의 먹다 남은 찌꺼기" 한 시대를 살며 그 모순과 궁핍과 비위를 고스란히 겪어내고 그 상처를 몸에 새긴 이들은 주로 여성들, 그 시대가 제법 오래 전의 과거라면 할머니들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근로정신대나 일본 전투 부대에 끌려갔다온 할머니들이 아직도 살아계시죠. 저런 표현도 마치 시인이 작정하고 언어로 빚어낸 듯 심상이 생생하고 어조가 절실하며 심지어 역사적 정확성까지 갖췄습니다. 마치 윤정모 작가의 장편 속에서 튀어나오신 캐릭터처럼도 보입니다. 

사실 이 책 저자분은, 적어도 일생 전체를 통해 본 커리어로는 그닥 진보적이라거나 민족주의자 성향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젊어서부터 일본 기성 체제에 성공적으로 편입된 전문직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죠. 저자의 고향이 오키나와였기에 뜻 있는 활동가들이 찾아와 더 적극적인 참여를 권할 때 그는 냉랭하게 대했습니다. 모토야마 진시로라는 자신보다 훨씬 젊은 활동가가 단식까지 해 가며 미군 측의 끔찍한 비위를 고발하는 데 열정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그의 태도는 점차 바뀝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위기 청소년 보호 분야에 종사하던 분이었고, 이런 취약 청소년(특히 여성)들이 남성 접대부 한 명을 상대로 몇 명씩 몰려가 교제하는 희한한 흐름을 취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책으로부터 잠시 인용하면, 이런 남성 접대부 중에는 나중에 스폰서를 제대로 확보하여 크게 잘될(...) 이들도 나오기에 미리 "투자(!)"하며 연예인 성장을 지켜 보듯 하는 풍조가 저들 여성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합니다. 참 너무 놀랍고 기가 찹니다만 한국 사회 일각의 특정 퇴폐 풍토도 어쩌면 저런 트렌드의 연장에서 분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물론 남성 청소년 문제에도 관여(예를 들면 p105)했습니다. 

취약 청소년(여성)들 중 상당수는 생계를 위해 성ㅇ매 혹은 그 주변 업종에 종사하게 되는데 마사ㅇ샵 같은 곳은 참 한국의 대응 업소나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p179 같은 데서 묘사하는 몇몇 대목은 한국식 은어로는 이른바 "마무리"라는 것이죠. "옵션"은 한국과 용어까지 같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언제쯤이면 남성들이 크게 자각하여 이런 행위가 도덕적으로, 혹은 스스로의 양심을 위해서, 결코 용납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자발적으로 근절하는 대결단을 내리게 될지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성ㅇ수를 하는 남성(수요)이 있으니 성ㅇ매 여성(공급)이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성들도 한때의 빈궁 때문에 행여 잠시 서빙한다는 생각으로 특정 접객업에 발들여 놓으면 큰일납니다. 룸살ㅇ 접객원은 그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업주가 급여에서 원천징수할 때 특정 코드로 세무서에 신고하기 때문에 평생 기록이 남습니다. 혼삿말이 오고갈 때 신랑 측에서 흥신소에다 의뢰(불법이긴 하지만)라도 하면 과거가 다 드러납니다. 

이 책에도 보면 마사지샵이나 아예 대놓고 성ㅇ매를 하는 업소의 경우, 이른바 "실장" 같은 이들이 행여 벌어질 수 있는 남성 고객들의 일방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를 해 주는지를 놓고 이슈가 나오는데(p179), 아니 불법이면서 고객 폭력으로부터 보호도 안 한다면 돈은 애초에 뭐하러 받아간답니까?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ㅇ매 여성은 그렇다고 어디다 당당히 하소연도 못하겠으니 이중삼중으로 억울하겠지요. 

"시즈(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 중에 조용한 사람은 없구나(p208)." 이른바 자기모순(self-contradictory) 용어입니다. 세계 평화와 정의, 군축을 외치는 이들은 많은데 말과 행동이 따로 놀거나 아예 속내에 다른 잇속을 감춘 이들까지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평화롭고 아름답고 작은 섬 오키나와 주민들이 진정으로 행복을 찾을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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