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플롯 짜는 노파
엘리 그리피스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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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2021) 9월 경에 하빈더 카우어 시리즈 1권격인 <낯선 자의 일기>를 읽고 리뷰도 남겼더랬습니다. 거의 2년만에 제2편에 해당하는 이 책이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이렇게 나왔는데 물론 캐릭터와 세계관만 이어질 뿐 내용(사건)이 연결되는 건 아니라서 구태여 1권을 먼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범죄로부터 이익을 보는 자, 그자가 바로 범인이다(p136)." 책에도 명시되듯이 이 명언(방법론?)은 <제시카의 추리극장(Murder, she wrote)>에서 나왔죠. 제시카(작년 11월에 타계한 앤젤라 랜스베리 扮)은 미스 마플과 많은 부분이 겹치는 캐릭터입니다. p148에 안젤리카라는 이름이 등장하네요. 

p47에 언급되는 문스톤(<월장석>). p9에서도 그 한 구절이 인용되었습니다. 

p43 모어캄과 와이즈는 미국으로 치면 애봇 앤 코스텔로. 지휘자 앙드레(앤드류) 프레빈이 언급되는데 이 사람의 부인이 미아 패로였고 푸아로 시리즈 중 하나인 <나일 강의 죽음>에 주연 배우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p136, p143에 미아 헤이스팅스라는 가상의 배우(챌로너의 아내)가 나옵니다. p197, p202 등에서 드디어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의 이름이 언급되네요. 

p57 "폴란드에 대해 아주 많이 아셨어요." 그다음에 현대사라고 하는 걸로 보아 아마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공군의 기여, 망명 정부 등을 염두에 둔 언급 같습니다. 영국과 폴란드가 현대사에서 엮이는 지점은 거기밖에 없죠. 그러나 p108에 전혀 뜻밖의 사정이 나옵니다. p193부터 뭔가 상당히 구체화합니다. 

p62 돈바스 전쟁 언급 이 작품이 2020년에 쓰였기에 우크라이나 관련이 이 정도로만 끼어들었고, 22년 이후 작품들에 혹 다시 우크라이나가 등장한다면(가능성이 적지만) 크게 달라진 몇 마디가 추가될 듯합니다. 현지 여성들의 성향이 각별히 유명하기도 하고. 저는 처음부터 나탈카, 물론 흔한 이름인 나탈리아의 애칭(dimunitive)이겠으나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는데 p90에서도 투박한 닐 윈스턴이 그런 언급을 합니다. 그녀의 풀네임은 나탈카 콜리스니크(Natalka Kolisnyk, p303, p312, p325, p336. 그러나 p248에서는 콜"린"스니크라고 오타 있음)인데 <월장석>의 작가 콜린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실제로 추리작가를 랜스 포스터 앞에서 사칭하기도 해서 웃겼습니다. p97에서 여자 성직자란 동방 정교회에서 턱도 없는 소리이며 아마 로마 가톨릭이 태도를 바꾸는 게 더 빠르겠다 싶네요. 

p116에 보면 "수퍼카가 어울리는 아가씨", p39에서 에드윈 노인의 말로 "모델이나 배우", p158에서 해리엇의 말로 "나탈카 같은 예쁜 아가씨에게는 남자친구가..." 등의 표현이 나옵니다. p211에서 에드윈 노인"조차도"라는 말은, 동성애자인 그조차도 나탈카의 외모에 잠시 감정적인 영향을 받을 정도란 뜻입니다. p309에서 닐이 "나탈카는 모델 같네."라고 합니다. 

p65를 보면 나탈카가 드디어 베니의 일부 잘생긴 외모 피처에 집중합니다. 아, 로맨스는 이런 순간부터 시작하는 건데 최근에 제가 읽은 <치얼업>에서도 상권 p457에서 아무도 아니라고 하지 싶은 민재한테 선자가 처음으로 꽂히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이러면 일이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p38에 보면 한국식으로 "자만추"를 선호하는 베니의 순정 어린 면모가 나옵니다. 그런데 p77을 보면 베니는 새삼, 유색인종인 우리 주인공 하빈더 카우어 경사의 외모 일부 피처에 매혹되는 모습이고 그 낌새를 챈 나탈카에게 한 방 맞습니다. 알고보니 베니 콜은 완전 바람둥이이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수사(修士) 생활(p38, p84, p258)을 이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카우어가 지난 1편에서부터 확정된 게이 워먼(특히 이 책 p162)이므로 아무 소용 없겠지만. p113을 보면 큰오빠 쿠시는 "강도보다 더 무섭게 생겼기에" 늦은 시각까지 가게를 지키기에 알맞다는 말이 나옵니다. p244를 보면 키가 크기까지 한 그녀의 오빠들을, 경찰인 닐 윈스턴이 무서워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p287에서 베니가 같은 이름의 베네딕트 교황을 본 얘기를 하는데 이분은 며칠 전에 죽었죠. 

하빈더 카우어는 사실 저 개인적으로 게이라는 것도 그리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 상황에 따라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것도 좀 그랬습니다. 여러분을 모두 죽인다느니(p139), 불쌍한 자기 엄마를 어떻게 한다느니(p55) 등. 물론 어떤 건 생각에 그쳤고 대부분 농담이지만 그래도요. 저는 그래서 진즉부터 엘리 그리피스에게 이메일이라도 보내서 1권의 예쁜 클레어 캐시디(지금 이 작품 p57이나 p318 이후에도 잠시 등장함)를 대신 주인공으로 세우거나 하다못해 그녀가 주역인 스핀오프라도 만들어 줄 수 없는지 청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무망한 게, 그리피스는 골수까지 PC에 쩔어 계신 분 아닐까 싶어서... p140에 마가렛 스미스가 "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했던 분"이란 말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POSTSCRIPT MURDERS인데 p68에 드디어 왜 그런 제목이었는지 단서가 나옵니다. PS는 페기(=마가렛) 스미스의 두문자이기도 하다는 점이 새삼 강조되는 게 p153, p167 등입니다. 

p41, p70 등에 이름이 나오는 실라 앳킨스는 가공의 작가이며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특히 p177, p289). p20, p25, p88, p92 등의 덱스 챌로너도 마찬가지입니다(p106 이하에서 알 수 있듯 챌로너는 심지어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기까지 합니다). p70에 나오는 가공의 대표작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하빈더 카우어 시리즈는 1편(당시에는 1편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고 하지만)에 이어 인문서지의 화려한 가장행렬이 될 작정인가 봅니다. 1편도 이야기 속의 책 내용과 본문을 다른 폰트로 구분했었는데 이 2편도 p93 등에서 그렇게 하고 있네요.  

고 마가렛 스미스는 참 독특한 사람입니다. 아들을 쿨락이라 부르는가 하면 한 나라의 경찰은 코사크(p125)라고 규정합니다. 아들이야 가족 외 제3자가 그 성격을 알 리 없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경찰이 왜 코사크인가요? 왜 삶 속에 그만큼이나 러시안 코드가 많이 심겼을까요?(p232 참조) 또 p333에서 왜 하빈더는 단리라는 이름이 불길하다고 느낄까요? 

이번 2편은 1편 <낯선 자의 일기>에 비해 범인을 실제 추리해 가게끔 독자들에게 비교적 많은 힌트와 여지를 주는 게 좋았습니다. 또 작가 그리피스의 해박한 인문지식이 소설 전반을 화려하게 수 놓는 솜씨와 스타일 역시 최고였다는 생각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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