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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클래식 - 감정별로 골라 듣는, 102가지 선율의 처방
올리버 콘디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2년 12월
평점 :
영국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콘디가 지은 이 책은 클래식 활용 사전과도 같습니다. 옆면에 진짜 사전들처럼 thumb index도 붙었고, 항목은 가나다순으로 실렸습니다. 물론 영어판 원서는 내용 전개가 ABC순이었겠으므로 이 한국어 번역서는 그 편집 과정에서도 특히 관련 인력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의 drive에 시달립니다. 그 감정 중에는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즐거운 격정도 포함됩니다. 이런 기쁜 감정도 그것이 폭주하게 방치하면 그건 그것대로 해롭습니다. p267을 보면 "자의"라는 항목이 있는데 저는 처음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일부러 이 아티클부터 찾아가 정독했습니다. 글을 읽어 보니 이 자의는 아마 姿意를 뜻하는 듯했습니다. 자의... 물론 우리 인간은 제 뜻대로 하는 바가 있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존재입니다. 그게 아무리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이라 해도... 이 부분이 잘 통제되는 사람은 인격자, 군자로 주변에서 칭송 받고, 안 되는 사람은 소인배나 범죄자로 단죄 받습니다.
재미있는 게 본문에 소개되는 용어 중에 voluntary라는 게 있는데 이게 명사로서 즉흥 독주라는 뜻이 분명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추천하는 곡은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인데(세 번의 표기 중 닐슨이라는 오기가 한 차례 있었습니다), 그의 평가는 "강력하고 체제 전복적인 악구를 만들어낸 작곡가(p268)"입니다. 특히 이 곡에서 저자가 주목한 건 타악기의 역할인데, "자의를 따르되 무슨 일이 있어도 음악을 방해하기로 작정한 듯 연주하라"는 해석이 기가 막힙니다. 내 자의가 내 진로, 혹은 조직의 호흡을 확 가로막으려 들 때 이 곡을 듣고 대리만족해 볼 일입니다.
직장인의 가장 큰 적은 잠입니다. 물론 잠은 모든 스트레스와 생각, 감정의 꼬임을 가장 효율적으로 풀어주는 해결사이기도 하지만 잠이 그 주인을 지배하게 방치하면 인생이 무너집니다. "가장 마법 같은 일출의 정경(p67)." 사실 모리스 라벨의 곡풍이 다분히 몽환적이긴 하지만 잠이 쏟아질 때 이 곡을 들으면, 잠이 더 올지 아니면 짧은 시간 렘 수면 대리로 잔 효과가 날지는 쉽게 판단이 안 됩니다. 저자도 그렇게 생각하셔서인지 "더 냉정하고 엄하게 잠을 깨우려면" R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도입부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음악이 이리도 부지런히 움직이니 당신이 다시 잠들 가능성은 없다." 그렇긴 한데 이 곡도 서두는 꽤 잔잔하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버려지다" ㅎㅎ 누구나 세상 살다 보면 버려지는 듯한 고립감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헨델의 메시아를 추천하는데, 이 메시아라는 곡이 런던에 파운들링 호스피털을 설립할 당시 독지가 토머스 코램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네요. 책에도 잘 나오듯이(p114) 파운들링 호스피털은 "고아원"을 점잖게 부르는 말입니다. 남자애들은 불량배, 여자애들은 커서 창녀로 빠지는 정코스가 되기 십상이었기에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도 이런 조치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헨델의 거룩한 뜻에야 십분 공감하지만, 과연 이 곡을 듣고 버려진 느낌이 힐링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열정이 부족해진다고 느낄 때 저자가 추천하는 곡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입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에릭 사티의 실제 삶을 환기하며 지저분한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도 음악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를 떠올려 보자고 권합니다. 확실히 저자의 처방들은 배경 지식에 어느 정도 도움 받는 이지적 경로를 통하는 것들이다 싶습니다. 이 짐노페디만 해도 저 같은 경우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그리울 때 듣곤 하는 곡인데 저자분과는 쓰임새가 많이 다르죠.
모든 추천곡 해설 뒤에는 QR코드가 붙어서 쉽게 찾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또 유튜브 핵심 키워드가 따로 달려 있기에(해 본 이들은 알지만 구글이나 유튜브 엔진은 내 맘을 잘 모를 때가 많아서 키워드가 적절해야만 합니다) 검색에 편의를 톡톡히 제공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