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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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지금도 케이블 채널에서 간혹 틀어 주는데 워낙 분위기나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 독특한데다 이야기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에 공감 못 하는 관객들이라고 해도 마치 작품 안에 빨려들어가듯 감상하게 됩니다. 제베타 스틸이 부른 주제가 "아~~~~~~암 코오~~~~~~올링 유우🎵😏🎶캔츄 히얼 미 아~~~"라는 그 애절하면서도 몽환적인 가사와 곡조도 머리에 한번 들어오면 도통 빠져나가질 않습니다. 이런 바그다드 카페가 어느날 내 인생에도 갑자기 불쑥 들이닥치기라도 한다면? 물론 재미있고 신기하며 낭만적인 체험이긴 하겠으나 대단히 우울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 내용도 내용이었으니만큼 아마 부부(미혼이라면 애인) 사이라는 것에 심각한 대미지가 오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1부의 시작에서 이 소설의 1인칭 화자 두 사람이 나옵니다. Mr. A라고만 지칭되는 남자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자란, 아프간 이민자들을 부모로 둔 외과의사(p15)"라고 합니다. 남자가 오래 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후 페이스북을 통해 조우한 여자는 한국인 화가 박경아입니다. 인연이란 때로 기이한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하기에, Mr. A는 같이 근무하는 한국인 의사가 흥얼거리는 노래 <벚꽃 엔딩>을 통해서도 박경아씨를 더 추억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라스베가스를 지나면서도 저 부근에 실제로 바그다드 카페가 있으리라고 기대(p25)하는 Mr. A, 진짜 바그다드와는 700km나 떨어진 시리아 사막에 실제로 있었던 바그다드 카페(p44)를 회상하는 Mr. A는 가는 곳마다 박경아씨가 그린 그림을 발견하는 serendipity라도 가진 분인가 봅니다. 이에 대한 화답은 2부 p65에서 박경아씨가 합니다. 

박경아씨도 자신의 지난일에 대해 약간은 슬픈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전남편은 중국인이었는데, 사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남자에게 다가가건 혹은 자신에게 남자가 다가오는 상황이건 간에 경계가 안 될 수가 없겠죠. 그래서 찰스 보이어,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고전영화 <Gaslight>를 자연스럽게 언급도 하는데, 정작 박경아씨 부부를 갈라놓은 건 남편이 뒤늦게 찾은 자신의 성정체성이었다고 하니 황당합니다. 

Mr. A는 의사의 직분에 어울리게, 자신의 모국에서 벌어지는 숱한 광신의 산물인 자폭 테러, 여성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폭력 등을 개탄하며 그 희생자들의 안위를 걱정합니다. 성정체성의 자각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아내에게는 큰 상처를 입히고 떠난 셈인데 묘허게도 Mr. A는 플로리다 올랜드 어느 게이 전용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거론합니다. 이 서간 소통이 이뤄지는 것도 대략 2016년인 듯한데 실제 저 사건, 아마도 증오 범죄일 저 비극도 2016년에 일어났습니다. 플로리다는 미국에서도 풍요롭고 번화한 곳인데 어떤 비뚤어지고 잘못된 신념에 의해 처참한 비극이 벌어지는 건 중동이나 그 시정이 다를 바 없다는 게 아이러니이겠습니다. p78에도 장소를 안 가리고 일어나는 폭탄 테러에 대한 탄식이 나옵니다. 또 2017년에도 라스베가스 하배스트 뮤직 페스티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는데 이 언급은 소설 3부 p113 이하에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되네요.  

아프간의 탈레반은 2001년 바미얀 석굴을 파괴(p53)하여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박경아씨는 무상한 시간 개념을 떠올리며 언니와 함께 찾았던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느꼈던 바를 이야기합니다. 그들 자매는 그 유적에서 "비어 있음"의 미학을 체험(p59, p97)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미얀 석불이 비록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파괴되었어도 그 빈 자리에 여전히 불심은 머뭅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007 영화 시리즈에는 그 배경으로 중국이나 홍콩이 자주 등장합니다. 박경아씨는 시리즈의 제7편(한국 개봉 기준으로는 제4편), 숀 코너리가 마지막으로 주연한 <다이아몬드여 영원하라>의 주제가, 셜리 배시가 부른 그 흥겨운 곡이 "인생은 유한하니 죽기 전에 실컷 즐겨라"는 메시지로 들렸다고 합니다(p64). 사실 가사가 끈적하고 에로틱하긴 합니다. 박경아씨 남편은 유난히 도박을 즐긴다고 하며 새 동성 애인도 그쪽에서 인기있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카o노는 다양한 지점(미국, 중국에서 상반되는 이미지들(환락, 평화[p114], 테러)과 연결됩니다. "아, 인간은 얼마나 선하며 동시에 얼마나 악한 것일까?(p121)"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된 자만이 자신을 묶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p134)."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이 구절이 나온다고 합니다. Mr. A는 이민자 2세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상기하며 평소에 좋아하던 존 레넌에 대해 언급하는데 뭔가 겉돌았던 성장 배경에다 동아시아인 여성(오노 요쿄)과 나중에 맺어진 인연까지 스스로를 레넌에 투사하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인공지능(p154)이 앞으로 많은 일을 맡아하며 사람의 영역(미술 포함)에 침투해 들어올 테지만 그래도 몽골 고원에서 의료 봉사를 수행하던 어느 한국인 여성 간호사의 아름다운 마음(p162, p181, p189)을 대신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지 싶습니다. 불안의 책을 삶의 책으로 읽어낼 줄 알기에 인간은 향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행여 결혼의 시대가 끝난다 해도, 향수 이터니티나 장난감에 깃든 추억의 유효기간은 영원하기에 우리는 사막 한복판에서도 사랑을 논할 수 있고 마음껏 눈물도 흘려 오아시스를 채울 수도 있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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