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간절한 날에 읽는 철학 이야기
사토 마사루 지음, 최현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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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다 보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 책은, 그럴 때마다 억지로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 주는 내용이 아니라, 어찌보면 그 반대를 우리에게 일러주는 내용입니다. 어차피 어느 직장이건 어느 산업이건 이번 코비드19 팬데믹으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보다 큰 스케일에서 보는 세상은 이런 방향으로 돌아가고, 그 방향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가르쳐 주는 건 철학밖에는 없습니다. 돈은 무엇인가, 회사나 사회에서 맺어온 인간관계 그 본질은 무엇인가, 일은 대체 왜 하는 걸까, 부정적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어느새 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고 나뿐이라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생각해 보면 경쟁에서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고, 혹여 내가 원래 내가 원했던 자리에 앉지 못했다고 해서 뭐 자살이라도 할 수는 없고, 어떤 식으로든 내 처지를 관조하고 새로운 비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보다 큰 틀에서 나의 운명, 회사(내가 이미 떠나온?)의 위상, 이 사회의 발전 단계 같은 걸 냉철하게 내려다보면 내 아픈 마음도 어느새 진정되고, 제2의 진로가 좀 더 쉽게 모색될 수도 있겠죠. 철학은 본시 모든 것을 메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마련된 사고 체계이니 말입니다. 

과연 상품이 우월한가, 화폐가 우월한가? 상품도 상품 나름이겠습니다만, 여튼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상품은 우리 삶에서 어떤 식으로건 쓰임새가 있습니다. 반면 화폐는, 혹 이것을 독점 발행하는 정부가 어느 시점부터 제 기능을 못 하기라도 하면, 혹은 전쟁으로 총체적인 무질서가 초래되기라도 하면,  아니면 우리가 무인도에 고립되기라도 하면,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화폐가 상품으로 쉽게 바뀌는 줄은 알지만, 상품이 화폐로 바뀌기란 쉽지 않음을 다 알죠. 저자들은 이를 두고 물신성(p57),  페티시(p57, p64), 환상(p64)이라고 규정합니다. 

본질적으로 화폐는 그걸 두고 씹어먹거나 몸에 바르거나 해서 내 기분을 좋게 할 방법이 전혀 없는, 그저 집단 믿음에 의해 위태하게 통용되는 하나의 상징(token)에 불과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가상화폐의 성격 역시 이 프레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p64에 그 말이 나옵니다. 가상화폐라는 건 결국 아무 실체가 없는 환상에 불과하여, 이에 투자한 모든 이의 희망을 갈가리 찢어 놓은 채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까요? 그 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돈을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돈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해서도 안 된다." 가상화폐를 정말 화폐의 일종으로 보든,  신종 투자 자산으로 보든 간에, 책의 저 말이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보다 성숙한 프레임으로 쓰일 수 있겠습니다. 

진정한 재산은 우리의 편안한 마음 속에 있다(p78, p82)는 일종의 유심론적 기조 때문에라도, 이 책의 시선이 마르크스주의에 전적으로 입각한 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소환되고, <유토피아>(p131)를 저술한 토머스 모어도 환기됩니다. 

돈 못지 않게 사람을 피곤하게, 때로는 절망 상태로 몰아가기까지 하는 게 바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입니다. 등장인물 시마오 씨와 사토 씨는 재미있는 대화를 통해, 우선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는 동료 직원들은 절대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직설적으로 짚습니다. 다들 자기 이익을 위해 2차 집단인 회사에 모인 것이고, 내 마음을 나처럼 혹은 부모님처럼 알아주길 기대하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서 소통 과정에서 정(情)을 쌓으려 들지 말고, 신뢰를 서로 축적해 가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래서 갈등은 개인 대 개인으로 해결하지 말고 소속 집단(소그룹)을 통해 해소하는 게 원칙이라고 합니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고, 각자의 입장과 세계를 보는 눈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듀이 등이 발전시킨 프래그머티즘 같은 철학 사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의 2차적 인간관계 역시 이런 실용주의적 관점에서만 쿨하게, 감정을 부착시키지 않고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서 뭔가 일이 뒤틀렸다면, 다른 방법으로 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꿈을 이루는 방법은 다양하기(p132)"때문입니다. 

내가 명문대 출신(p162)이 아니라고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주위의 기대 때문에 과중한 부담을 느끼지만 나는 그런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가진 게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는 토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분명 있고, 지주나 자본가는 생산 수단의 소유가 부과하는 여러 압박에 시달립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불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가 무척 힘듭니다. 고소득자는 고소득자라서 그 나름대로 고독합니다(p211). 

"어떤 사람도, 동류(同類)가 아닌 인간의 덕을 질투하지는 않는다(p182)." 스피노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수목(樹木)이 높고 오래 살고 푸르르다고 해서 그 수목을 질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과 이치가 같습니다. 언더도그마의 논리적인 취약점을 지적한 철학자는 니체였는데 약자는 강자에게 질투를 느끼기 쉽고 이것이 르상티망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왜곡된 자기애는 질투로 인해 유발된다(p191)." 작중 인물 사토 씨의 멋진 말입니다. 

"일이 잘 안 될 때에는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앞을 내다보는 사고를 단련하다 보면 길은 확실하게 열린다(p228)." 네코노 시마오 씨의 말입니다. 알고보니 그 정체가 고양이였던 사토 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인 시마오씨는 마침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합니다. 꼭 고양이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겠으나 우리 역시 철학으로부터 깊은 깨달음을 얻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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