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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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시인", "서스펜스의 대가" 이 책 책날개에도 나오는, 생전의 P 하이스미스에 대한 압축된 찬사입니다. <재능있는 리플리 씨> 같은, 우리가 다들 잘 아는 그녀의 대표작만 봐도, 분명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쫓겨다니는 주인공이지만 우리는 그의 위태위태한 행보를 계속 좇으며 불안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은근 응원까지 보냅니다. 서스펜스가 곧 불안이라는 뜻인데 이 서스펜스라는 단어에 대고 하이스미스는 거의 새로운 의미 하나를 창조해 낸 듯합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그녀의 단편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이 넓은 세상 어느 한 구석에는 반드시 있을 법한 색다른 실감으로 가득하고, 탄생시부터 뭔가 기이했던 사연과 사람들이 나중에는 더욱 예측 불가의 길로 폭주하다 괴상한 파멸, 혹은 찬란한 정복을 겪는 사연들이, 우리네 인생 곳곳에 도사리는 아이러니를 가장 생생하게 표현하는 듯 보이네요.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 수녀원도 수녀원 나름인지라 사실 우리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모든 곳이 서로 닮은 분위기는 아닐 것입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수녀 이야기>처럼 음울하고 정치 투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수녀원도 있겠고,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처럼 비교적 평화롭고 구성원 사이에 우애가 더 지배적인 곳도 있겠는데, 이 단편에서의 공동체는 물론 후자에 가깝겠죠. 주워온 사랑스러운 아이가 평화롭던 관계에 파탄을 내는 건 마치 <십계>에서의 모세를 보는 듯도 합니다. 또 아무리 이별이 고통스럽다고는 하나 그 운명의 길을 걸어가야 할 아이는 결국 그리 가야만 합니다.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 

미지의 보물: 아마도 전후(戰後), 제대 귀환한 어느 베테랑, 한때는 훤칠하니 여자들한테 인기도 있었을 법한 남자는 이제 다리를 절고 귀 한 쪽이 날아간, 초라한 장애인 신세입니다. 장애인일망정 그 큰 키는 앞서가는 자그마한 또다른 남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이제 공황 상태에 빠진 작은 남자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간신히 귀가하여 그만의 컬렉션이 모셔진 작은 방 안에서 홀로 안도합니다. 평화란 무엇인지, 불안과 공포란 또 무엇인지. 

최고로 멋진 아침: 출근길에 대로변에서 듣곤 하는, 빽~!하는 열차 소리, 작품에서는 이를 두고 (사람의) 새된 비명에 비유합니다. 활기 있게, 바쁜 승객을 날라야 하는 택시기사가 맞는 아침은 매일매일이 최고로 멋진 아침들이 되어야 하겠으나 현실은 꼭 그렇지 못합니다. 클레먼트만으로도 고마운데 플레전트이기까지 하다니(p51), 이처럼 사소한 의미라도 일상과 주변에 부여하는 그 마음가짐에 여유가 넘칩니다. 애런, 프레야, 피트, ... 그러나 "오염되지 않은 낙원의 느낌을 스스로 추방하는(p81)" 어리석음 또한 우리가 늘상 저지르는 바입니다.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올 때: 이제 하나의 송곳니만 남은 개 레드독, 한때는 제럴딘 눈에 그 누구보다도 두드러진 미남으로 보였던 클라크... 이제 그녀는 익숙한 모빌이 아닌, 알리스테어를 경유하여 언니가 사는 버밍엄으로 가려 합니다. 올라탄 버스 안에는 직업도 나이도 다양한 남자들이 탔습니다. 결국 남편은 어느 낯선 경찰에 의해 살아있다는 안부가 전해지고 그녀의 입에서 즉각 튀어나온 건 비명입니다. 프랭키는 대체 그녀에게 여태 무엇이었다는 건지.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 우리말로 앵초로 번역되는 프림로즈는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에도 종종 주조연으로 등장하는 식물입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정확한) 색깔을 뭐하러 신경 써?(p179)" 그래도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무엇이 어떤 색인지 혹은 색이었는지는 합의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살색이 과연 어떤 색인지 내내 논란을 부르는 것과 달리, 프림로즈는 그저 프림로즈색일 뿐일까요? 

영웅: 루실 스미스는 얼마 전 어머니를 여의고 이제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하는, 예쁘고 당찬 여성입니다.거침없이 자신만의 호흡으로 앞날을 개척하려 하지만 어머니를 포함한(어머니로 대표되는) 어떤 과거 때문에 계속 뒤로 밀려나는 느낌입니다. 크리스천슨 부인과 그녀의 귀여운 두 자녀, 시중을 드는 젠킨스, 운전수 앨프리드 등도 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해결 못 한 문제가 남은 듯 보입니다.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인데도 왜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혹은 자신에게, 엄청난 영웅, 고귀한 구원자로서의 자신을 계속 증명하려 드는 걸까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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