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 4 자치통감 4
사마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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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을 쉽게 풀어쓴 대중서, 자기계발서의 저술뿐 아니라 고전 저작 자체의 완역에 오랜 시간 동안 헌신해 온 고 신동준 선생의 유작 격인 <자치통감> 네번째 권입니다. 자치통감이라고 하면 권중달씨 역본이 국내 독자들에게 유명하겠고 그 책도 최근 개정판이 나오는 중이나, 고 신동준 선생의 번역판은 고전 무엇을 대상으로 삼았든 간에 기존 정평 있는 책의 대안이 될 만합니다. 

이를테면 사마천의 <사기>가 그러했는데 그 고전은 정범진 본, 김원중 본 등이 인기를 얻었지만 신동준 역본도 전권이 다 출간되었더랬습니다. 신 선생의 번역은 1) 중국 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었고 2) 구체적인 구절 하나하나를 꼼꼼한 분석 대상으로 삼아 가능한 여러 해석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이들을 대조 비판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더 넓은 지평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중국 고전을 보다 깊이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신동준 역본은 거의 필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치통감>이라고 하면 역시 개인적으로 권중달씨 역본(구판)을 다 소장하고 읽었습니다만, 또 앞에서도 언급했듯 현재 이 4권까지 나온 신동준 박사 역본이 그보다 못한 바 전혀 없으며, (이미 언급한 몇 가지 특장점에 주목하자면) 이 신동준 역본이 오히려 낫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권중달씨 본도 원문을 싣고 있지만 신 박사는 그가 옮긴 모든 고전에 원래부터 한문 원 텍스트를 함께 실어 왔고 특히 이 자치통감 4권에서 그 메리트가 유감 없이 드러납니다. 또 기간(旣刊) 타 역본들이 한 가지 해석만을 내세우는 데 그친다면, 신 박사 번역은 논쟁의 소지 있는 대목에서 어물쩍 넘어가는 일 없이 무엇을 짚어도 다양하게 짚어 주며 이 과정에서 독자의 소양도 덩달아 늘어납니다. 

이 자치통감 4권은 후한 시대를 열어젖힌 광무제 유수의 업적 중 하나인 공손술 토벌(AD 30)부터 사건 기술을 시작합니다. 공손씨는 이 사람이나, 한참 뒤 후한말의 공손찬(역시 삼국연의의 중요 인물 중 하나), 잠시 후 위나라 때의 공손연까지 해서 매번 지방에서 할거하다가 중앙 정부로부터 토벌 대상이 되곤 한다는 게 특이합니다. 이 기사들에서도 드러나듯 유수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상황을 냉철하게 관망하다가 정교히 계산한 끝에 주저없이 척척 두는 수들의 힘이 무서웠던 인물입니다. 그러기에 삼백 년 후 5호 16국 시대 후조를 세운 갈족 석륵이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곤 했죠. 

건무 30년의 기사를 보면(이 책 p177) 급사중 벼슬의 환담이 황제에 간(諫)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는 공자의 <논어>를 직접 인용합니다. 신동준 박사는 여기에서도 역주를 통해 논어 해당 구절이 어디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그의 장기를 발휘합니다. 이런 태도는 독자가 혹 궁금함이 생길 경우 일일이 검색하는 수고를 크게 덜어 주며 타 역본에서는 좀처럼 베풀지 않는 친절함이기도 합니다. 이런 치밀함은 예컨대 p582의 각주 163번에서 다시 <논어> 미자편을 인용하는 대목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또 p616 역주 180번에서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라는 유명한 성어를 적시하는 곳에서도 그러합니다. 

중국에 불교가 본격 성행한 것은 남북조 시대입니다만 후한 초부터 이미 천축의 종교가 널리 중국에 전파되어 큰 영향을 끼치는 중이었습니다. p213 이하를 보면 명제(광무제의 넷째 아들)이 불(佛)이라는 신적 존재의 가르침에 큰 관심을 보였고 고승을 우대 초빙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만 이에 대해, 완고한 유학자였던 저자 사마광은 대단히 피상적인 태도로 서술하는데 이는 그의 이해가 짧아서라기보다는 고의적인 무관심 노출로 보입니다. 

p253을 보면 명제의 생모이자 광무제의 정비였던 음려화가 거명되는데 낙양에서 이름난 미녀였던 이분과 유수의 젊었을 적 로맨스는 직전권인 제3권에 잘 나옵니다. p328에 보면 걸신과 의위라는 까다로운 어휘에 대한 설명이 역주에 나오는데, 바로 이런 점이, 현대 중국 학계 연구 성과를 꼼꼼히 훑는 신 박사만이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장기라고 하겠습니다. 또 신 박사는 고교 시절부터 서울대 재학 기간 동안 한학의 대가들을 충분히 사사한 데서 비롯한 튼튼한 베이스를 갖춘 분이기도 하죠. 

인간사랑은 지금까지 신 박사가 옮긴 거의 모든 중국 고전을 묵직하고도 예쁜 장정에 담아 내용 면에서도 정확한 편제로 독자들을 맞아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멋진 미관 면에서도 인간사랑판이 타 번역본들을 압도한다고 평가합니다. 삼국시대까지를 커버하는 신동준 역 <자치통감>이 부디 무사히 완간되어 고전 애호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 5권이 특히 삼국시대를 다루므로 게임 마니아들이라든가 삼국연의 애독자들 중 진수의 정사 등에 만족 못 하는 분들에게 큰 선물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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