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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평점 :
법정 스릴러의 거장 존 그리샴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독자들은 마음이 설렙니다. 특히 이 작품은 "희귀 원고의 도난"을 소재로 삼았기에 더 흥미로운 눈길이 가기도 했는데 다 읽고 나서 과연! 존 그리샴이었음을 재확인했습니다. 존 그리샴다운 이지적인 구성, 군데군데 숨어 있는 위트와 휴머니즘, 뜻밖의 반전 등이 여전히 돋보였으며 역시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점 다시 느낄 수 있었네요.
"전에도 체포된 적 있나?" 미국은 전과 자체보다, 이처럼 현장에서 체포된 전력이 있는지를 우선 확인하는 듯합니다. 마크는 이 순간 제리가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할지를 더 궁금해합니다. 이 장면을 읽고 잔 내시의 게임이론에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가 생각나기도 하며, 현직 법조인을 능가하는 감각과 지식을 자랑하는 존 그리샴의 예리하고도 상세한 묘사가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부부 생활의 끔찍한 실패 후 "아버지는 무서운 여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이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 젊은 여인들은 성인의 눈으로 보면 그 나름 치명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채 뭇 남성들을 홀리고 다니는 존재들이겠지요(착각에 빠진 늙은 퇴물이 아닌, 정말로 젊음의 생기를 발산하는 거리의 여인들). 그러나 아버지 역시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이런 여성들의 닳고닳은 속내를 훤히 꿰고 있습니다. 어떤 계산 같은 것이 아니라, 이분 역시 감정이 소진되고 아무런 정신적 여유가 없는 터라 여인들의 "공사"가 먹힐 턱이 없죠.
문제의 원고는 우리가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미발표 작품입니다. 여기서 가외로 우리 독자들이 살펴 볼 포인트는, 작가 그리샴이 어느 정도까지나 자신과 피츠제럴드를 동일시하느냐입니다. 또 공백기가 길었던 그리샴 자신이 얼마나 "미발표작의 성공적 공개"에 대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지에 대해서도 짐작해 보는 은근한 재미도 있죠.
그리샴의 작품은 그저 주인공(1인칭이든 3인칭이든)의 일방적 시점에서만 전개되지 않습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치열한 두뇌 싸움 와중에 사건의 진행은 예측불허로 꼬이고 뒤집히며, 이 배신의 막장극 속에서 더럽고 저열한 플레이를 하는 건 국가 기관인 FBI도 다를 바 없습니다.
"일 년에 도서관에서 없어지는 책만 천 권이 넘는다." 한국도 도서관 업무를 가중시키는 게 이런 생각 없는 사람들이며 선진국인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아무튼 얼핏 보아 별것도 아닌 이런 팩트로부터 엄청난 단서 하나가 마련되며 그리샴 특유의 미친 듯한 템포로 사건은 종막을 향해 달립니다. 역시 거장은 잠시 사라질 수는 있으나 결코 죽지 않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