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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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이 유명한 구절은 책의 뒤표지뿐 아니라 p37에도 나옵니다. p17에서도 설명되듯, 본시 합스부르크 가문은 위신과 명망이 부족한 편이었으나 이후 줄기차게 황제를 배출하고 집요하게 실리를 추구하여 중근세에 이르러서는 이미 대가 끊어진 숱한 명문가들을 물리치고 유럽 최고의 황문으로 우뚝 섰습니다. 부르봉 가문도 사실 남계 직계로 카페(Capet) 성을 이은 게 아닌 터라 가격(家格)을 따지자면 합스부르크의 위명에 댈 것이 아닙니다. 합스부르크보다 더 긴 족보를 자랑하는 비텔스바흐나 벨프 가문도 심지어 현재까지 명맥은 이어지지만 그 전성기만을 살피더라도 중근세 내내 합스부르크 가가 휘두르던 엄청난 위세에 비할 바는 못 되었습니다. 

불세출의 천재 미술가라 해도 그 천재성을 알아봐 주고 잠재력을 만개하게 돕는 든든한 후원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책은 매 장마다 미술가 한 명과 그를 후원한 황제 한 명씩을 매치시키며 독자의 흥미를 돋웁니다. 물론 황제들은 중근세에 접어들며 사실상 제위를 독점 세습한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들입니다. 첫 장에는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놀라운 미감을 듬뿍 표햔한 알브레히트 뒤러와 막시밀리안 1세를 나란히 놓고 천재와 황제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설명해 줍니다.  

위대한 가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비틀어지고 열등해진 유전자의 집약적 표현형을 한둘 정도는 세상에 내어놓기 마련입니다. 2장에서 설명되는 광녀 후아나가 그 좋은 예입니다. 이 후아나는 예술 작품 중에서도 그 흉한 외모와 그보다 더 끔찍하게 망가진 정신의 상처를 드러내는데 아무리 운 좋은 환경이라 해도 개체가 떠안은 지독한 저열함과 추악함을 만회할 수 없었던 극명한 예시, 예증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합스부르크는 중근세 동안 한 지파가 독일 중심부를, 다른 지파가 에스파냐를 각각 다스리며 그야말로 유럽 전역을 호령하다시피 했는데 이 책 제 4장에서는 <우르비노의 비너스>로 유명한 화가 티치아노와 펠리페 2세를 나란히 놓으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펠리페 2세의 전성기는 튜더 왕조(英)의 라이징 시기와 또 겹치므로, 이 챕터에서 우리 독자들은 근세 유럽의 가장 중요한 시기 역사의 흐름을 명화(名畵) 이야기와 함께 배울 수 있습니다.  

합스부르크는 16세기 초 이른바 Sack of Rome을 배후조종함으로써 교황청의 위신을 처참히 망가뜨렸고 의도는 아니었겠으나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을 앞당기기도 했습니다. 백여년 후 30년 전쟁이라는 대도박을 감행하여 유럽 전역을 손에 넣을 뻔도 했으니, 유럽을 전화로 몰아넣은 갖가지 전쟁에서 반드시 한 축을 담당했던 게 합스부르크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정세가 점차 민족주의 중심으로 재편되고, 그저 명가의 위신만으로는 더 이상 백성과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중근세 유럽 회화의 대가들이 정확하고도 풍자적으로 묘사한 합스부르크 가의 최고위층을 다양한 도판과 함께 소개하면서, 사진술도 없고 매스 미디어도 불비하던 시절 유일하게 구중궁궐 황족의 모습을 담던 그 찬란한 흔적을 우리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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