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어느 아주 작은 회사를 다니는 청년(?)인데, 어느날 사장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질책을 받습니다. 업무상의 과실로 대금을 분실했으니 회사에 손해를 메꾸어 넣으라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오히려 회사와 상급자, 고용주가 처벌을 받을 만한, 얼척없는 무리한 요구이지만 주인공은 워낙 성품이 고지식한 통에 저런 말도안되는 갑질을 받아들이고 맙니다. 이제 그는 일주일 동안 3천만원(2만 9천 달러 상당의 원화)을 구해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금토일 그리고 월화수. 

한편 강원도 어느 고급 호텔로 가는 도중 주인공은 묘령의 여인과 조우하며, 그 외모로 보아 이런 여성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법한 자신에게 이상하게도, 마치 스토커처럼 사사건건 부딪히고 엮여드는 게 대단히 수상하다고 여깁니다. 알고 보니 과연 이 여성에게는 뚜렷한 동기와 목적이 있었으며, 자신은 어느 나이 많은 사업가와 불륜의 관계인데, 주인공이 마치 실제 남편인 것처럼 꾸미고 현장(?)을 덮쳐 위자료를 뜯어낸 후 돈을 나눠갖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이 당장 공금을 메꿔야 할 처지이다 보니 이런 나쁜 짓에 마지못해 가담하게 됩니다. 

늙은 사업가는 주인공의 험악한 인상과 태도에 바로 주눅이 들어 요구를 들어 주고, 주인공은 이제 여성과 호텔방에서 돈을 나눌 일만 남았습니다. 성공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늙은 사업가한테 하청을 받아 연명하던, 을(乙)의 처지에 놓인 이가 바로 주인공네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이제 사장은 주인공에게 그 검은 돈을 같이 나누자고까지 나오는 판인데, 순간 주인공은 갑자기 제정신이 들어 이 모든 불법과 부조리를 거부하고 그냥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맙니다. 

이 소설에는 큰 반전이 있는데 마치 김창동 소설가의 <보석 고르기>(아직 리뷰는 쓰지 않았습니다)에서 엄청난 재산가가 신분을 숨기고 사윗감을 고르는 설정과 닮았습니다. 또 25기 30주차에 리뷰했던 김지연 작 <촌남자>와도 진행이 꽤 비슷한데, 저무렵 젊은이들이 꿈은 크고 현실은 비루한 데서 마주쳤던 갈등과 좌절을 이런 통속 소설들이 반영한 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이 작품은 1984년 MBC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어진 적 있는데, 인상이 무서운 개성파 연기자였던 故 김추련씨가 정의로운 주인공 역입니다. 또 늙은 사업가 역에 정욱씨가 나오는데, 이분은 저때로부터 17년 후인 2001년 11월에 KBS에서 방영된 부부클리닉 어느 에피소드에서도 또 어린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늙은 교수 역을 맡았기에, 아주 이런 캐릭터 전문이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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