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타임 - 빛도 시간도 없는 40일, 극한 환경에서 발견한 인간의 위대한 본성
크리스티앙 클로 지음, 이주영 옮김 / 웨일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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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유행 초기에 미국의 어떤 백만장자가 자신이 아직 감염이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p9와 책 뒤표지에 인용된 박한선 서울대 교수님의 추천사를 보면 "컴컴한 동굴처럼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햇빛은 바로 사람이다."라는 아주 멋진 말이 나옵니다.

이 추천사에서는 "(없던) 시간을 만들어낸 게 바로 인간"이라고도 합니다. 반대로, 만약 그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인간은 잠시 그 시간을 없앨 수도 있다(p2)고 합니다. 올해 8월 태풍 피해 와중에  지하주차장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기어이 고립상태에서 구조된 분의 실화가 모든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참된 위대함은 바로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증명되고 확인됩니다.  

"오늘은 2021년 3월 14일, 딥타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정확히 40일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난다(p18)." 이 세상에는 참으로 기발한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더 놀라운 건 그런 놀라운 발상을 자신과 동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프로젝트로 구체화한 후 이를 실행에 옮기기까지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호사가들의 취미이기만 한 건 아니고, 각종 과학적 의문을 해결하고 여러 연구 성과에 실증을 더하기 위한 목적도 컸습니다. 크루들은 그래서 다들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정말로 40일 동안 동굴에서 외부 연락 없이 지낼 건가요? 동굴 안은 항상 추워요.(p40)." 1995년 한국의 삼풍백화점 사고도 생각나고, 영화 <디센트>도 떠올랐습니다. 이런 대담하고 어찌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이 지금(2022.9)으로부터 불과 1년 6개월 전에 있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이 힘든 40일을 남과는 다른 길이, 강도, 깊이로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딥 타임"입니다.

"멜뤼진은 내가 아는 최고의 모험가다. 현장 감각도 뛰어나고 어딜 가나 뛰어난 사람과 함께하며 언제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한다(p53)." 이 책에서 재미난 점은, 극한 상황에 일부러 처한 후 온갖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서 극복해 내는 과정도 과정이지만, 저자이자 프로젝트 리더인 클로 소장이 크루를 모으고 통솔하는 솜씨입니다. 리더부터가 최고이니 밑에 모이는 사람들도 따라서 최고가 되며,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리더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없다면 팀과 프로젝트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습니다.

이런 동굴 극한 체험에서 가장 간절한 건 햇빛입니다. 아무리 진정성 있는 시도라고 해도 정말로 사람 목숨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기에 지상 팀이 따로 대기 중이었습니다. 숙소 이름은 의미심장하게도 "태양은 가득히"인데 물론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입니다.

전문지식도 지식이지만 이런 극한체험 과정에서는 무엇보다 손재주 좋은 분이 팀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미앵 주밀고(p10, p41)는 46세였는데 이 팀에서 최고령자였으며 정비사, 소방대원, 목수 등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터라 이 모험에서 특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해 냅니다. 동굴 진입 전 그가 팀원들을 훈련시키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잠수함 승선원들도 그렇고 이렇게 고립된 공간에서 사는 이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게 바로 배설물 처리입니다. 배설물이 세균 등으로 뒤범벅이라 위생상 해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괴로운 건 바로 냄새겠고 이 책에도 아주 직설적인 언급이 있습니다. 이걸 이 팀은 일단 입구에 정기적으로 갖다 놓고 퇴비처럼 건조하여 재활용하기로 했는데, 영화 <백투더퓨처>에도 나오듯이 서양 비료도 성분은 비슷하지만 이처럼 건조 과정을 거친다는 게 다른 듯합니다. 반면 조선 초기부터 시행된 시비법은 습식 그대로인데 그래서인지 1950년대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재배된 채소를 절대 안 먹었다고도 하죠. 기생충이 들끓는 문제가 한국식 시비 패턴에서 끝내 해결 안 된 걸 보면 문제가 확실히 있습니다.

"딥 타임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 종류의 시간이 있다. 딥타이머의 시간, 지상팀, 가족들, 일반인들, 그리고 절대불변인 자연의 시간(p127)." 처한 상황에 따라, 그저 심리적으로 그리 느끼는 게 아니라 정말로 시간이 천천히(반대로 빠르게도) 가기도 한다는 걸 발견해 낸 아인슈타인의 업적은 그래서 더욱 놀랍습니다. 고난의 환경 속에서 시간이 더 깊게 흘러가는 중 다미앵이 결국 부상을 입습니다. 앞에서 "동굴 안은 참으로 춥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의 부상은 동상(凍傷)인 게 드러납니다. p145 이하에서 저자가 잘 정리하듯 뉴턴식 개념, 스위스 시계 기술자식 개념, 호킹의 개념 등은 각기 내포가 다릅니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다양성을 필요로 함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p207)" 저자는 이 뜻깊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팀 같이 불굴의 의지와 체력을 갖추지 못한 우리 독자들에게, 이 프로젝트의 진짜 소중한 교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연대하는 인간은 강하며, 어떤 시련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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