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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대여점 -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
이시카와 히로치카 지음, 양지윤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9월
평점 :
누구나 가끔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사람의 가치, 효용성, 심지어 내면의 빛깔까지를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시대라면 더욱 그런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 강남 명품 샵에 가면 어떤 곳에서는 일정 기간 아이템을 대여해 주기도 하는데 겉으로 남에게 보이는 모습이라는 게 그만큼이나 위신, 자존감, 명예의 충족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흐음, 그랬군요. 그럼 오타 씨의 모습을 한 저는 뭘 어떻게 하면 되죠?"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남의 외모를 뒤집어 썼으니 나 역시 어떤 이점이 있고 앞으로 목적을 달성할 여지가 생기는 거고, 그런 만큼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합니다. 쌍무계약의 이치가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큰 제재를 받습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서 여장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가 있을까요? 있으니까 세상에 이런저런 사고도 터지고, 심지어 수술을 받아 아예 여자가 되어 버리는(겉모습으로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겠습니다. 사실 이런 욕구를 가진 사람은 사회의 곳곳에서 충돌을 빚게 마련이며, 그런 갈등 없이 "연말 송년회 장기자랑에나 어울리는 모습을 한" 사람은 (속으로야 어떤 불만을 갖든 간에) 사회적 관계 설정이나 소통에 있어 마음은 당장 편한 것입니다. 세상엔 그저 무난하게, 평균 정도 하는 모습으로 태어난 게 가장 편한 것이란 각성이 들 때가 어쩌면 어른이 되었을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건 직장이건 "옥상에서 만난 친구"가 꼭 있습니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사실 이는 그 사람의 잘못만이라고는 꼭 말할 수 없으며, 어떤 사람은 괜히 조직에서 따돌린다든가 하는 외부의 잘못이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뭔가 다르게 생각하는 자아상이 따로 있어서 조직의 평균이 그리 여기는 모습에 적응을 못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꼭 보면 저렇게 "옥상에서 만난 친구"를 즐겨 찾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이 역시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자신의 인생 숙제입니다.
우리 전설에도 여우가 남의 탈을 쓰고 사람 행세를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 인접국이라서인지 중국이나 일본도 그러하며 이 소설에서도 기본 설정 중 하나입니다. 재미있는 건 아무리 이런 능력을 지닌 여우라고 해도 남의 겉모습을 판에 박은 듯 닮은 변신은 불가능하며, 그 이상의 효과는 당사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내뱉은 악의에 지금 막 자신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절묘했다는 느낌이 든 구절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뿐 아니라 다른 여러 외모를 두루 "대여"합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그 곡절을 누군가는 꼼꼼히 궁리하여 추리해 냅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럴싸합니다. 사람한테 이런 편한 특권이 생긴 후에도, 저런 기발한 수를 더 생각해 낼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꾀의 경우의 수가 뻔한 것만 같아도 기실 상상의 경계란 게 없는 셈입니다.
외모 대여라는 발상 자체가 기막힌데, 더 기가 막힌 건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연입니다. 이런 처지에 빠진, 혹은 자초한 사람이 다 있구나, 그 난관을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구나(혹은 반대로 이렇게 파멸하는구나), 이 과정을 보면서 인생의 기막힌 아이러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