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 건들건들 컬렉션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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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이 생겼을 때 담백하게 당사자 둘의 물리적 대결로 해결하는 건 인류의 오래된 관습입니다. 두 사람의 피지컬이나 격투 실력이 비슷할 때에는 더 간절하고 더 억울한 쪽에 승산이 있겠으므로 이 방식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 같아도, 중세에 벌어진 귀족, 기사 사이의 많은 다툼을 해결하는 데 이 방법이 큰 지지를 얻은 건 이런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이런 식으로 당부를 가리자면 폭력배가 매번 올바른 승자가 되는, 아주 부당한 결과가 빚어지기 십상이라서 근세 이후 문명 사회에서는 결투를 칭송하기는커녕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형사 범죄로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책에서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 영향도 분석합니다(p120).

30년 전쟁의 향방을 프랑스 왕국에 이롭게 이끈 노회한 정치가였던 리슐리외 추기경(p62, p106)은 루이 13세를 보필하며 내정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1626년의 반결투법이 의회에서 통과되게 한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p63,  또 p152 등에 나오지만 이 결투라는 방식은, 명예라는 게 뭔줄 알고 또 지킬 명예라는 게 있기나 한 귀족들의 전유물입니다. 루이 14세 때에도 결투에 몸이 단 양 당사자를 똑같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비로소 분쟁이 해결되었다는 사례가 책에 나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스웨덴, 러시아에서도 결투가 군주의 명에 의해 금지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인명중시나 인도주의 같은 의도가 아니라 절대 왕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합니다. 단 이후 계몽군주의 시대(p111)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지긴 합니다.

그럼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이 몰락했으니 이 결투라는 관습도 자연히 같이 사라졌을 법합니다만 그렇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오히려, 이때부터 근대적 결투가 새로 시작되었다고까지 단언합니다. 인간의 욕구 중에는 명예욕이라는 게 있고, 결투 신청을 통해 구 귀족처럼 품위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것도 속물 근성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단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 널리 결투가 퍼지지는 않았는데, 이 배경에 대해서는 책에 특별한 설명이 나옵니다.

결투는 이른바 신명(神命) 재판의 일종이었습니다(p47). 물론 모든 결투 재판이 중세에 교회 주관이었던 건 아니고, 종교와는 무관하게 귀족, 왕의 공권력에 의해 열린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820년 바르셀로나 백작 베라가 이슬람 세력과 결탁하여 반역하려 들었다는 혐의를 쓰자, 루도비쿠스 황제는 고소인인 루시용 백작의 대리인 사이의 결투를 마지못해 승인합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고트 족의 명문 혈통이었으며 고트 전통 역시 결투로 누가 신의 뜻을 얻었는지 가리는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이 역시도 신명재판이었기에 패자가 된 바르셀로나 백작은 죄를 자인하고(!) 다만 황제의 자비로운 사면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습지만, 신이 반대편의 손을 들어 주어 결투에서 이기게 했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이런 재판은 중세말에 이르러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일단 종교 당국이 폭력을 점차 금하게 되었고(p63, p96), 대중 역시 그저 물리력이 우세한 자(혹은, 그저 결투 당일 운이 좋았던 자)가 정의롭게 판정되는 이런 결과에 대해 점차 불신하게 되었다는 설명인데 상식에 비추어서도 타당합니다. 중세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 <엘시드>에도 자우스팅 장면이 있습니다. p80, p194 등에 나오듯 결투는 이를 지켜보는 대중에게 하나의 오락으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와 스웨덴 왕 칼 9세 사이에 있었던 서신 결투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후자가 덴마크 측의 칼마르 점령을 항의하며 일대일 물리적 결투를 신청하자 전자가 "결투까지 갈 것도 없이 당신에게는 이미 신의 벌이 내렸음이 분명하다! 결투니 뭐니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벌써 정신이 돈 것 아니겠는가?"라며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확실히 크리스티안 4세의 반응이 훨씬 성숙하고 이성적입니다. 이 일은 1611년에 있었으나, 중국에서는 기원전 2세기 말에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항우가 유방더러 일기토를 신청하자, 유방이 "남아라면 당연 지혜를 놓고 한판을 겨룰망정 어찌 폭력으로 자웅을 가리겠는가?"라며 상대를 점잖게 꾸짖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실제 싸움이 벌어졌다면 이미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데다 변변히 무술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평민 출신 유방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을 텐데 약아빠진 그가 이런 방식을 수용했을 리 없습니다.

반면 19세기 서부개척시대에 벌어진 미국의 결투는 귀족적이라거나 명예로운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야만적 행태였습니다. 등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는 영화적 허구가 퍼져 있긴 하나 그런 신사적 낭만이 무법천지 미국 서부에서 통했을 리 만무합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영화에서 즐겨쓰던 대표적인 배경이 애리조나인데 이곳은 합중국 가입이 보류되던 준주(準州. territory)에 블과한 지위였습니다. 이 책에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결투 그 유명한 사례들도 소개되는데 하나 아쉬운 건 미국사상 아마 가장 큰 화제가 된 결투였을 알렉산더 해밀튼과 애런 버 사이의 총격전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여튼 책은 후반부에서 나치 독일이 어떻게 결투를 하나의 제의(際儀)와 오락, 스포츠로까지 발전시켰는지 분석합니다. 이 점이 책의 품격을 높이며, 독자에게도 그저 역사잡학 가십거리의 제공을 뛰어넘어 체계적이고 통찰력 있는 역사 고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고, 생각할 소재도 많았던 고마운 책이었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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