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 게임 - 세상에 없던 판도를 만든 사람들의 5가지 무한 원칙
사이먼 시넥 지음, 윤혜리 옮김 / 세계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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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든 축구든 이닝이나 제한 시간이 있으며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경기가 끝나고 승자 패자를 정해야 합니다. 또 팀제 프로스프츠의 경우 1년 정도를 시즌으로 삼아 우승팀을 따로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예를 들어 비즈니스의 경우 그런 식으로 승자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 재벌 기업들 중 상당수는 망해서 없어졌고 현재 뉴스에 나오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름만 대우일 뿐 그룹 창업자 김우중씨도 죽었고 그 후계자가 맡아서 경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20년 전에는 이름도 못 들어본 기업들이 지금은 대기업 반열에 올라 활발히 사업을 벌이지만 이들 중 과연 몇이나 십 년 후에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p20에서 저자는 비즈니스야말로 무한게임의 대표적 예라고 하는데 바로 이런 현상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승자도 없고 또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게임입니다. 사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어떤 기준을 잡으면 삼성이 1위였고 다른 기준을 잡으면 현대, 심지어 럭키금성(현재의 LG, GS 등의 전신)이 더 높은 순위를 점할 때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설령 단기간으로 잡는다 해도 승자 패자를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그런데 저자는 유한게임일 때와 무한게임일 때 플레이어들의 전략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책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독자인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은 특히 유한게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프로야구 같은 데에 잘 들어맞는다 싶었습니다. 프로야구(현재 명칭 KBO 리그)에서는 몇 번의 시즌을 우승했냐를 두고 감독이나 팀의 업적, 성취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단기의 고성적이나 우승에 집착하다 보면 특정 선수를 혹사하며 운용할 수가 있습니다(이른바 "갈아넣기"). 특정 연도에 반드시 우승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처럼 "갈아넣기"를 일삼다 보면 결국 그 팀은 향후 몇 년, 혹은 십 몇 년 동안 하위권에서 맴돌 수 있고 그 혹사된 선수들도 커리어가 훨씬 짧아지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유한게임의 대표적인 폐해라는 것입니다. 


무한게임이 되면 게임이 장기전이 되므로 기업의 단기 실적에 집착(p152)하지 않고, 오래살아남아 장기간 호실적을 올리거나 아예 게임체인저가 되는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흔히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절대적인 미덕으로 꼽기도 하는데, 임기가 정해진 단기 CEO들은 그해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내세울 업적만 중시하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 투자를 소홀히할 수 있습니다. 이재용씨가 감옥에 있을 때 삼전은 단기 실적에 치중하느라 무리하게 원가를 절감하려 들어 결국 지난번 고스파동이 일어났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책 p28 같은 곳에서는, 특히 유한게임에 치중하는 경영자들은 변화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다 장기를 보고 과감히 행동하는 경영자들은 오히려 안정된 현재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1990년대 전반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씨의 결단이라는 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는 이미 부친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기업을 물려받았고, 경쟁 기업이었던 현대의 당시 삽질 때문에 그저 그 당시의 위치만 지켜도 아쉬울 게 전혀 없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진 걸 과감하게 특정 분야에 베팅하여 몇 십 배로 자산을 불렸고, 경영 혁신도 "최고의 품질"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날 지구인이 다 알다시피하는 글로벌 일류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 임원진이 해외 소비자들이 삼성을 일본 기업으로 안다면서 이런 착각이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지금은 갤럭시나 삼성가전 덕분에 코리아라는 나라도 덩달아 알게 됩니다. 외국의 IT 인재가 삼성에 입사하러 왔다가 그 나름 높은 기준 때문에 좌절하고 돌아가기도 하는데 일단 외국의 청년 인재에게 한국 기업이 입사의 꿈을 심어 주기도 한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지난시절의 삼성이야말로 또 고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이야말로 인피니트 게임이 뭔지를 제대로 알았던 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정희 때 거지 나라에서 이제 먹고는 살 수 있는 나라로 바꾸었다, 이런 레벨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냥그저그런 수준에서 일류로 도약하는 건 넥스트 레벨 이슈이기 때문이죠. 흙수저가 건실한 중견 기업을 일으킬 수는 있는데(이것도 물론 보기 드물지만), 이런 기업이 재벌급으로 도약하는 건 완전히, 완전히 다른 난이도입니다. 


책에는 20세기 전반 소련의 과학자였던 바빌로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스탈린에 의해 탄압 받고, 동시에 그의 조국은 2차대전이 터지자 레닌그라드 공방전 등 나치 독일의 침략에 의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로프의 대의에 찬성하던 동료 과학자들은 이런 이중고에도 굴하지 않고 본연의 업적에만 몰두했다고 하는데, 요즘 돈 몇 푼만 더 쥐어주면 불순한 나라의 불순한 기업에 매수되어 일회성 도구로 쓰이다가 결국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불쌍한 일부 엔지니어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화지요. 이런 정의로운 과학자들 역시,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인피니트 게임을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여기까지 책을 읽고도 독자들이 이미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저자가 "유한 게임"이라 부르는 판에서 플레이어들은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목표에 보다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무한 게임 플레이어, 적어도 자신이 지금 무한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이들은 보다 긴 안목으로 상황을 봅니다. 오늘 보고 내일 다시 안 보겠다 싶은 사람하고는 얼마든지 안면몰수하고 더티한 게임을 할 유인이 생기는 법입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무한게임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의 명분을 보고 간다"입니다. 


오래가는 기업은 그 수뇌가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보면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 운 좋게 큰 돈을 손에 넣고 한때 행세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잘나가는 기세가 언제까지 가느냐가 문제인데, 모든 사장 모든 회장이 그 끗발 그대로 가는 게 아니고, 그릇과 깜냥이 안 되는 인간은 반드시 무리수를 두다가 꼴아박고 전과자가 되거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해서 전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무슨 정주영이다 이병철이다 하는 뭐 이런 사람들은 그런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훨씬 먼 그림을 보고 승부를 걸었기에 그 기업이 이처럼 자식 대에까지 오래 가는 거지, 무슨 자선사업가로 살았다거나 심성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었으나, 적어도 남들 눈에 그 속이 훤히 내비치는 얕은 수는 안 썼다는 거죠. 졸부, 사기꾼이나 잡범을 보면 제딴에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기발한 수를 내는데, 남들이 절대 눈치를 못 챌 것이라고 엄청 의기양양해 합니다. 남이 보면 속이 그 훤히 들여다보이는 꼴이 참 우습기 짝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수중에 돈이 오래 머물지를 않는 것입니다.


인피니트 게임 플레이어는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정하게 마음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도 신중합니다. 저자는 예를 들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오늘 나에게는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던 그 유명한 연설에 주목하자고 합니다. 꿈이 있다고 하니 설령 흑인 민권 운동에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했던 백인들조차, 저 연설을 듣고 인류 보편의 양심과 가치에 호소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인피니트 게임 플레이어는 사려깊습니다. 사려깊다는 평판을 듣기 때문에 그의 활약과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 받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 자본주의에 크게 실망하고, 이 체제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며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게, 2008년 주식시장으로 대변되는 금융 시스템이 대단히 큰 모순에 가득하고, 소수의 비합리적인 이익에만 종사한다(실제 기여하는 바도 적은)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지, 오히려 거액의 성과금을 나눠갖는다, 뭐 이래서는 안 되죠. 차라리 그런 돈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가한테 가도 가야 마땅한 것이고.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밀턴 프리드먼이 한 말, 즉 "기업의 목적은 언제나 이익 극대화이다"를 거론하며, 이제는 이런 마인드로 기업을 운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무한게임 리더는 직원을 자원으로만 보지 않고, 먼 여정 동안 같이 가야 할 동료로 보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처우부터를 달리합니다. 구태 블랙 기업이나 일부 악질 사회단체에서 직원들을 그저 expendable로 보고 함 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게 만드는 걸 보면 이들의 안목이 얼마나 좁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로는 노동이 최고 지상의 가치인 양 떠들지만, 실제로는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마치 자신들이 그들에게 큰 은혜나 베푸는 양, 자본가가 노동자를 하대하는 것보다 더 졸로 취급합니다. 영혼을 무슨 집단내 촤상위 포식자에게 위탁한 것처럼 얼빠진 혼자만의 충성을 바치는 최말단 분자의 모습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건 사람이 아니라 좀비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저 주주에게만 최선을 다하는 회사가 아니라, 주주가 아니라도 예컨대 공장이 위치한 지역 내 주민이나 불특정 다수 소비자처럼 자신의 회사와 직간접으로 이해를 함께하는 이른바 셰어홀더들도 중시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포드라든가 잭 웰치 같은 사람들도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지역 주민이나 노동자에게도 매우 전향적인 태도로 대한 것입니다. 판을 길게 보고 더 깊은 사려를 베풀어 사람을 대하는 것과, 날품팔이처럼 내일 이후로는 이 사람을 안 볼 것으로 작정하고 이용 대상으로 삼는 쓰레기들의 미래가 결코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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