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컬처 -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
요하네스 하르틀 지음, 김희상 옮김 / 나무생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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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환경은 오염되고 강력 범죄는 늘어나며, 인종과 나라, 문화권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는 요즘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풍요롭고 안정된 이상향을 꿈꿔 왔는데 그 대유어 중 하나가 "에덴 동산"이겠습니다. 저자는 거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지배해 가는 작금, "에덴 2.0"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또 공동체적 지평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며 또 무슨 각성이 필요한지 독자에게 아름다운 문체로 전달합니다.


p53에 나오듯 일찍이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이라는 원리"를 논한 적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그저 인간을 하나의 생명체,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에 의해 기계처럼 작동하는 유기체로만 보는 시각에서는 싹트기 힘들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20세기말 인류는 드디어 게놈 지도를 갖게 되었습니다만 이것의 결론은 침팬지 등과 인간이 98% 이상 닮아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침팬지는 우리들과 너무도 다른 삶을 살며, 우리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복잡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판이합니다. 저자는 카이 미셸 같은 학자의 관점을 소개하며, 기독교의 구약 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 이야기도 결국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독해가 가능한 "인류의 일기(신의 계시가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류가 우리 사는 지구를, 사회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기 시작할 때, 미래를 향한 그윽한 유토피아적 비전은 어느새 모두의 마음에 같은 방향을 그리며 싹틉니다. 


20년 전만 해도 버스 같은 밀폐된 공공장소에서조차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담배를 싫어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이런 행동을 쉽게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데 저자는 이제 단순한 금연을 넘어 관계의 빈곤이 내 폐를, 내 장기를, 내 영혼을 좀먹지는 않는지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저자는 관계가 결핍된 인간은 이미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중이며, 현대 사회는 개인 사이의 유대가 거의 끊어져 각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시피하고, 그런 까닭에 "각자의 우주에 고립되어 있다(p75)"라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또다시 진화생물학적 논거를 듭니다. 왜 척추동물 최후의 진화(현 시점 기준) 단계가 하필 포유류일까요? 포유류란, 어미가 새끼를 품에 안아 젖을 물려 키우는 유일한 족속입니다. 우리 포유류는 태생부터가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게끔 설계가 된 것입니다. 


고독사는 요즘 들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독신자는 그의 슬픔과 스트레스를 다른 누구와 공유할 기회가 없고, 그 결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이 크게 상하기 쉽습니다. 저자는 "장기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는 중병과 조기 사망을 예방해 주는 실증적 결과가 확인되었다(p102)"고 상기시키는데 우리 독자들도 이 점 알고 있으며 또한 공감합니다. 인간이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그보다 더 확장된 가족(대가족)이라든가 마을 공동체, 나아가 헤겔이 인륜 최고의 형태라 말한 "국가"를 이룬 것은 필연적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확실히, 능률과 효율만을 최고로 치는 전체주의 국가 시스템이 인류의 행복과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도 내립니다. 특히 저자가 경계하는 건 집단 경제인데, 이는 저자가 중시하는 공동체적 삶이라든가 유대 관계와는 정반대를 지향합니다. 그런 집단 경제에서는 개인의 창의와 여유가 조금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소련에 의해 집단 농장이 만들어졌던 1932~33의 우크라이나를 그 예로 듭니다(p163). 선한 농부들은 그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무수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역사의 악몽이 있었기에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가망 없어 보이는 전쟁에 그토록 결사적으로 참여하여 조국의 적을 무찌르려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만들려 애쓰지만 저자는 이런 노력보다는 의미를 찾아 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권합니다. "의미는 진정성 있는 언어로 표현된다(p196)."그래서 우리들은 연인 사이에, 친구 사이에, 가족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단지 정보 교환만을 꾀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생각과 그윽한 정을 공유하려 드는 것입니다. 저자는 p207 이하에서, 특히 프랑스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68세대, 그들을 부모로 둔 MZ 세대가 서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도 언급합니다. 어떤 경우에나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결론은, "개인의 차원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와 공감의 존재"를 구축하는 과제입니다. 


"무의미함은 생명을 앗아간다(p216)." 그래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라"고 이 책의 곳곳(p258 등)에서 강조합니다. 의미는 잉여나 사치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저자의 일관되고 아름답게 표현된 주제의식과 사상도 사상이지만, 다양한 학자들과 인류사적 지성들의 여러 명언이나 아포리즘이 끝도 없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인문 고전이나 현대의 필독서 십여 권을 함께 읽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아무리 뜻깊은 의미를 찾았다 해도 이를 한눈으로 응시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두 눈이 주어져 원근의 응시를 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생명체가 진화하며 올바른 길을 찾아내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의미를 두 눈으로 보라(p226)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깊습니다. 유발 하라리 역시 이 책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는 저자 중 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혐오"라는 잣대를 사용하며 타인의 행위를 단죄하는 요즘입니다. 저자는 "대체 혐오라는 게 무엇인가?(중략)누군가 자신의 종교나 조국, 정부를 겨눈 비판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형사 처분을 하는 게 온당한가?(p269)"라고 묻습니다. 또 이처럼 혐오라는 막연한 잣대로 형사 처벌까지 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일견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평등을 도모하려는 듯 보이나) 그 안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고 하며,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하여 자기 검열을 유도한다고 지적합니다. 


머리에 칩을 심어 능력을 개선하는 이른바 트랜스휴먼 논의는 예전부터 똑똑한 저자들과 학자들에 의해 흥미로운 논의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이 책이 미래학도 겸한 주제이다 보니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잊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앙상한 기계론, 환원론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저자가 여기에 대해 호의적일 리 없습니다. 이런 논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방해하고,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피상적으로 대응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혹 사람 머리에 칩을 심는 게 가능해진다 쳐도 어느 세월에 실용화가 이뤄지겠습니까? 현실은 간단한 백내장 수술조차 각종 부작용으로 문제를 빚는 판에 말입니다. 신장, 심장 등 장기 이식은 첫발을 뗀지 40년이 자났건만 사실상 제자리걸음입니다. 이게 가능할 것 같으면 지금쯤 장기 부실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이가 없어야죠. 


p280에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 일부이기도 한 "에덴"이 뭘 말하는지 비교적 선명히 풀어 줍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 저런 "트랜스휴머니즘"에 반대되는 논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자는 (앞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듯) 어떤 특정 종교의 교의를 대변하는 건 또 전혀 아니라고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앞에서 "혐오"라는 이름으로 종교 등을 무작정 보호하는 입법 움직임이 우려스럽다고까지 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무한하게 넘어선다." 이는 블레이즈 파스칼의 말인데, 칩의 도움이 아니라 해도 이미 인간은 인간인 자체로 인간을 넘어설 수 있기에 존엄한 것입니다. 또 "몸이 가지는 유한함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극복하자"고 하며 이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된 주제를 다시 드러냅니다. 자연도 인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며 어떤 기능을 잘 수행하기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고 합니다. 확실히, 이 모든 생각이 모두의 공감을 얻어 지켜지고 다른 의미가 새로이 발견되는 사회야말로 모두의 낙원이자 이상향인 에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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