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부동산 사기꾼에 당할 수밖에 없는가?
김하진 지음 / 밝은강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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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기발하고도 교묘한 부동산 사기 수법이 늘어나는 요즘입니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현금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에 자산투자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자산 중에 가장 유망한 건 현재로서는 부동산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기꾼의 마수를 피하여 내 재산을 안전하게 늘릴 수 있을지 고민되는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쓴이는 대학 교수님인데 분양형 호텔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고 행동에 옮겼다가 큰 손해를 보시고 부차적인 정신, 육체적 건강까지 상한 경우입니다. 이런 분도 낭패를 당하는 판이니, 하물며 물정에 어두운 서민들이라면 까딱 잘못하다가 무슨 큰 피해를 볼지 모를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다들 401k에 자동으로 연금을 붓게 되어 있어 노후 준비는 그게 끝인 줄 알고 산다(p27)." 우리 나라도 물론 국민연금이라는 게 있습니다만 수익성이 좋지 못해서 적립할 때에는 거액이고 막상 연금을 탈 때가 되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또 무슨 연금개혁이다 뭐다 해서 사실상 국가에 사기를 당하지나 않을지 걱정도 되고 말입니다. 그러니 다들 부동산이다 주식이다 코인이다 해서 한눈을 팔지만 결과가 다 좋지 못합니다. 여튼 분양형 투자 관련, p48에 나오듯 "연금같이 받으시라"는 말이 있으면 무조건 사기인 줄 알고 피하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사실 흔한 아파트, 우리 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거주 형태인 아파트에서도 동대표 잘못 뽑거나 하면 이 사람이 어떤 비위를 저지를지 알 수가 없으며 그저 한동네 사는 사람이니 믿어야지 하며 반은 체념하고 삽니다. 그러나 이번 둔촌동 개발 사건에서 보았듯 집합건물에 사는 이들은 매번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게 아니며 민법상 조합을 이뤄 사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의사집행기구를 구성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집행부가 다수 주민을 대변하지 않고 모럴 해저드에라도 빠지면 대책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의 현실에서 이 부분이 언제나 맹점입니다. 


대략 십 년 전부터 전단지라든가 중개업소, 심지어 책까지 만들어서 분양형 건물에 투자하라는 마케팅이 참 많았습니다. 이 중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며 명동 소재의 호텔에 투자하라는 움직임이 특히나 두드러졌던 게 기억 납니다. 주주총회에서도 이른바 총회꾼들이 현장에서 난리를 치는 일이 있는데 소유자들이 집합건물을 놓고 어떤 여론을 형성할라치면 과연 소유자가 맞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인물들이 들어와서는 원활한 의사 진행에 방해를 놓거나 반대방향으로 여론을 끌어가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큰돈을 들여 지분을 갖게 된 건물에, 어느 특정 인사(소수)들이 조직적으로 방해 공작을 펴서 투자자의 정당한 이익에 해를 끼친다면 이런 투자는 정말로 조심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책 후반부 p370에 자세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다수 투자자들의 정상적인 의사 형성을 방해하는 이들을 두고 "프락치"라 부르는데 이 말은 무려 대한민국 헌정 초기 국회 프락치 사건이라든가 1980년대 학원가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까지 해서 참 연원이 깊은 말입니다. "해방구"는 과거 1980년대 학생운동진영에서 널리 쓰던 말이기도 하고(?), 역사 속에서는 예컨대 1871년 보불전쟁 종료 후 파리 코뮌 같은 게 거론될 수도 있는데 저자와 그 동료분들은 "모 호텔 해결 방안을 구하는 모임"의 약칭으로 쓴 점이 재미있습니다(재미있다는 말은 어폐가 있겠지만 일단은요). 저자께서도 "입에 착착 감긴다"고 하셔서....


저자는 이 과정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피해를 입었음을 주장하는 신촌 M 빌딩 투자자들과 연대를 하기도 합니다. "개별등기 분양이 아닌, 구좌 지분 분양으로 몇천만원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한"이 홍보문구였다고 하는데 제가 십 년 전에 자주 봤던 전단지도 이런 취지의 계획을 소개하며 투자자를 유인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한한령이 내려지지 않아서 계속 중국인 보따리상이 오는 상황이었으면 명동 지역에 한해서라도 활황이 계속되어 이런 분쟁이 벌어지지 않기라도 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기꾼들은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면 유정개발 사기꾼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나중에 밝혀지지만 자기 애도 아니고 고아이며 설마 애 키우는 사람이 사기를 칠까 하는 생각에 사람들이 쉽게 믿게 하려는 수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이게 사기면 내 아들이 죽는다" 같은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이는 저자분의 주장입니다. 아무튼 투자 결정이란 신중해야 하며 못 믿을 말을 주변 정황 때문에 덜컥 믿어서는 곤란합니다. 


신촌의 피해 주장인들이 지적한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1) 채권 자체를 가짜로 만든다. 2) 거짓말을 쉽게 한다 3) 소유자 임원 회유에 능하다 4) 경찰서, 세무서, 구청은 다 한통속인듯 보인다. 


특히 4)와 관련하여 전직 국세청 직원을 대표로 앉혀서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는 것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는 아직은 저자분의 주장일 뿐이지만, 정말로 어떤 세력이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서민들 포함 숱한 피해자들을 만든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시행사 측은 준매매위탁계약(p70)이라는 주장을 폈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한국민법이 상정하는 전형계약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적 자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인 이상 당사자 간의 합의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새로운 내용의 계약을 만들 수는 있죠. 문제는, 계약의 내용이 어느 한 당사자에게만 명확하고, 다른 당사자에게는 불명확하거나, 원래 이런 것이라며 마치 이런 성질의 전형계약이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양 계약서 안에 없던 내용이 갑자기 당연한 이치인 양 바깥 어디서 원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형계약은 일일이 계약서 안에 모든 이치와 경우의 수를 다 명기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준매매위탁계약(?)은 사회가 아는 전형계약이 아닙니다. 


지분소유권자들이 여튼 잘 뭉치기만 하면 사기꾼들이 다수의 정당한 주장을 무시하고 조합을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사기꾼 상대하기도 힘든데, 소유권자들(투자자들)조차도 이런저런 근시안적인 주장만 내세우며 결국 단합이 안 된다는 데 있는 듯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웬 얄팍한 인정욕구만 가득찬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많은지를 놓고 개탄합니다. "똑똑함보다 현명함과 통찰력이 요구되는 곳이다(p83)." 이런 건 확실히,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겁니다. 내가 이 주장을 하면 상대방은 이런 이해가 침해되므로 반대할 것이다, 같이, 상대방의 반응을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서로 에너지와 시간을 절약하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게 최선일 것인데, 그게 안 됩니다. 그냥 어디서 자기가 주인공인양 멋있는 말을 연극 대사처럼 연설해 대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낍니다. 중2병에 걸린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며, 이건 사실 똑똑한 게 아니라 가장 멍청한 짓입니다. 이러니 이런 오합지졸을 사기꾼들이 얼마나 고마워하고 우스워하며 갖고 놀겠습니까. 악질 사기꾼은 알고보면, 단견+협량의 평범한 소시민들, 바로 멍청한 우리들이 배양하고 출세시켰던 셈입니다. 


"어쨌거나 운영수익 대비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았다.... 약속된 임대료의 비중은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럼 나머지 30%로 운영비, 인건비, 기타 비용을 모두 충당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하겠는가.(p121)" 더군다나 무시무시한 객실 회전율 유지 등 각종 비현실적인 가정을 다 하고서 이런 계산이 나오는 건데, 저자께서 말씀하시듯 비수기, 돌발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있으므로 오히려 보수적으로 잡아야 맞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진짜 호텔 전문경영인"께 이게 가능한지를 물어 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답은 당연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물어 볼 만한 호텔 경영인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기까지 한 서민들은 정말 악 소리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처럼 계획이 현실성이 있냐도 따져야 하고, p123에 나오는 대로 인근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경쟁 시설이 있는지까지도 다 따져 봐야 하는 것이겠습니다. 


"사기죄는 고의성 여부가 관건이던데..(p122)" 사기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가 다 마찬가지로 고의가 없으면 성립을 하지 않지요. 어떤 투자가 실패했을 때 그 결과만을 놓고 "애초에 사업 자체가 무리"였다며 투자한 돈을 도로 내놓으라고, 사업가를 무작정 사기꾼으로 몰 수는 없습니다. 투자자 역시 그 위험 부담은 스스로 져야 하는 게 맞지요. 문제는, 당초의 사업 계획과 실제 집행 과정이 큰 차이가 난다거나, 허위의 계획을 고지한 후 전혀 당초의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건 뭐 처음부터 돈만 떼어먹을 작정을 하고 벌이는 짓이겠죠. 이게 바로 고의라는 것의 본질입니다. 


크라우드펀딩과 유사수신행위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책 p148에서 적절히 말씀하시듯 "장래에 원금 이상의 돈을 준다고 약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겠습니다. 여기서는 한 가지 특수사정이 더 곁들여지는데, 그것은 호텔객실 소유권 지분을 블록체인 형태로 발행하여, 이를 숙박권 겸용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사실 고급 콘도 회원권도 비슷한 원리에 의해 운영되며 구좌를 만들어 구분소유권자가 되고 동시에 일정 기간 동안 시설을 이용(숙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이 같습니다. 또 이런 회원권은 유가증권으로 인정이 되죠. 게다가 블록체인 형식으로 발행되었으니, 이 당시에 한창 인기 좋던 코인의 일종으로 취급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한때 최악의 매물로 떨어졌던 이 호텔이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로 다시 최상의 투자상품으로 거듭나기 직전이었겠습니다. 이때 그 모 관리인분의 "이건 유사수신이라서 안된다!"는 발언은 사업에 초를 치는 언동으로 받아들여졌겠고, 새 관리회사를 꽂아넣고 가려는(p149) 일종의 사전 정지작업이었겠습니다. 


사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왜 그 모 관리인, 선한 인상을 하신 분을 그토록 끝까지 믿으셨는지, 심지어 형사 재판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그를 믿어 그의 충고에 따라 유죄인정을 하고 벌금형을 받으셨는지(p157)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배신의 징후, 마각을 드러낸 분인데 즉각 손절을 쳐야 맞지 않았겠습니까? 불성실한 수임자를 끝까지 믿으신 것 자체가 과실이라면 과실입니다. 사기꾼들의 오랜 수법은, 나만 나쁜 게 아니라 너희들도 잘한 것 없다며 어떻게든 형사전과를 만들어 같이 흙탕물을 튀기는 것입니다. 이런 전과가 생기면 제3자가 겉으로 보기에 아 둘 다 잘못한 게 있군 하면서 양비론으로 갈 수밖에 없죠. 


이 책 p166 이하를 보면 특히 서울 모 기초자치단체 일부 공무원의 심각한 태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저 담당자가 바뀌었을 뿐인데도 이후에는 업무추진이 그만큼 쉬워졌다니 말입니다. 최종보스격인 모 씨와의 유착 관계를 의심할 만하나 이는 물증이 없으니 그저 그리 짐작만 할 뿐입니다. 사실 대체 어떤 분이기에, 저 선한 인상을 한 변호사분도 구워삶고 동시에 모 과장도 그처럼 손 안에서 부릴 수 있는지 그 수완이 놀랍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저자분의 피해의식이 빚은 환상(!)으로 여기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책 p325 이하에 자세히 또 나옵니다. 내부고발자로 방송국에 제보하여 오히려 영웅 비슷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분 입장에서는 기가 찰 뿐이겠죠. 

 

"명도집행은 또다른 세계였다.(p169)" 이 책을 읽어 보면 승소판결을 받아 내어도 명도까지 이어지기에는 엄청난 수고를 들여야 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이나 치밀하게 준비를 했으니 과연 이쪽 방면에 도가 튼 분들이 분명합니다. 집기를 객실마다 알박기했으니 이를 치우자니 운반비 보관비가 몇억이며, 집기의 소유 여부를 다투면 이걸 해결하는 데 또 시간이 소요됩니다. 웬만한 사람은 제풀에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와중에도 사람 보는 안목이 탁월한(그 정도가 아니지만) P회장, "머리가 좋고 할 줄 아는 게 어찌나 많은지 맥가이버가 따로 없을(p177)" 아무개 씨 같은 분입니다. 정말 이런 사람이 되어야 사회 어디서도 환영을 받습니다. 책 읽으면서 진정 부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맥가이버가 또 보면 드라마에서도 돈 욕심이 없습니다. 물론 손튼 국장이 때때로 두둑이 챙겨는 주겠지만 말입니다. p262 이하에 전업투자가인 이 젊은분이 "나홀로파이터"로 살아온 이력이 짧게 언급됩니다. p264에 언급된 책 저자인 어느 검사님(현 국회의원)은 키가 아주 크죠. 저도 학교 다닐 때 먼발치에서 본 적 있습니다. 


p282에 보면 저자분께서 이 분양형 호텔을 맡아 끝까지 살려 보려 한 선택을 후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솔직히 저도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에 도가 튼 그 보스분하고 구태여 불리한 그라운드에서 이렇게까지 싸울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적당선에서 서로 타협하고(물론 저자분이 큰 손해를 본 상태이지만) 물러나셨다면 그토록 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불운의 사슬도 만나지 않았겠죠. 그 변호사라든가 C 모씨 같은 경우도, 왜 그렇게 저자분 말을 듣지 않고 맘대로 하다가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이게 다 그 보스의 치밀한 사전 계획의 산물이라기보다(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싸움이 저쪽에 승산이 기운다 싶을 때 내부 배신자가 계속 나오는 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건 방법이 없습니다. 


여튼 이처럼 부조리한 일을 겪고 순순히 물러난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정말 끝까지 간다는 결연한 각오로 불리한 싸움을 여기까지 이어오신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이런 분쟁이 미연에 방지되려면 입법을 통해 계약 내용을 규율하고 감독관청을 따로 두어 관리회사의 영업을 관찰하게 하는 특별법을 (저자분 말씀대로) 제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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