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2
김광호 지음 / 아담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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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건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모나코"인가였습니다. 1권에는 제 기억으로 외국 배경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이 2권 들어서야 처음으로, 채수희가 캐나다에 어학 연수 가는 사연이 있습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채수희가 캐나다에 가서 딱히 뭘 배워 온 것 같지는 않고, 1990년대 대학생들, 특히 서울 상위권 대학생들이 거의 필수로(졸업 필수 요건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주위에 개나소나 다 가니까) 가던 어학연수라서 시대상을 드러내기 위해 등장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제목이 왜 모나코인지는 2권 후반부에서나 밝혀지고 이 부분에서 독자의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 소설은 정통멜로라서, 아니 정통멜로임에도 불구하고 성애장면은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1권 후반에 최기우하고 드디어 관계를 가지면서 몇 번 오르가즘에 도달했다, 이런 게 거의 유일합니다. 2권에서는 캐나다어학연수 2인 1실 숙소에서 윤애리라는 룸메이트가 알몸으로 파트너와 함께 있는 걸 목격하는 장면 정도. 윤애리라는 캐릭터는 딱 여기서만 등장하고 사라집니다. 최기우를 따라 (팔자에 없던) 공장에 취업하고 그와 동거를 하는 건 1권 후반에서 봤고, 이 2권 초반에서는 그런 아슬아슬한 관계가 드디어 파국을 맞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1권 중반에서 독자들이 다 봤고, 이해가 안 가지만 채수희는 바닥을 다 봤으면서도 최기우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데 기어이 이 2권 시작부에서 지하실까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자는 답을 다 알면서도 순간순간의 감동으로 남자를...."이란 표현으로 채수희는 독자들에게 일종의 해명을 해 주는군요.


애초에 최기우는 채수희에게 큰 애정이 없었으므로 이 소설을 테리우스 v. 주윤발로 보는 건 무리이겠습니다. 2권에서 테리우스(?)는 전반에 완전 퇴장하며 다시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1권에서 코믹 릴리프나 깍두기처럼 잠시 얼굴을 내밀었던 OOO가 2권 중반쯤에 또 독자를 만나네요. 깡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대뜸 찾아와서 "순수한 수희를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그가 대견하긴 했으나 나이도 많고 수완도 더 좋은 범주가 녀석을 잘 요리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재미있습니다. 주윤발(!) 김범주는 이 외에도, 해결사로서 참 능숙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1권에서 재벌 회장의 청부를 받아 사이비 기자 노 아무개를 처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노 아무개는 이 2권에서 다시 등장하지만 범주의 솜씨가 아니라 MJ회장의 돈이 추가로 투입되고 나서야 입을 다문다고 합니다. p206에 보면 "노효만이 MJ에 매수된 게 확실한 듯했다"고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맥락을 보면 더 이상의 정보를 검찰 측에서 모르는 걸로 보아 노효만이 더 이상 뭘 떠들지 않는다는 뜻이겠네요. 사이비 기자 건이 잘 해결되어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바로 문제가 또 하나 터집니다. 


부족한 리더는 부하를 쓸데없이 의심합니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도 원로 탤런트 이치우씨가 扮한 양길 캐릭터(한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실존인물)는 지나치게 부하들을 의심하여 은부(박상조), 복지겸(길용우) 등이 기어이 배신하는 걸로 나오는데 이 소설 후반부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됩니다(스포일러라서 자세히는 말 못하고). 애초에 왜 변호사 송정인이라든가 보스 안영표가 자꾸 범주를 구치소에서 안심시키려 드는지가 좀 이상했는데 제대로 된 보스 같으면 집행유예니 뭐니를 미리 떠들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고 솔직한 소통을 하지요(상대가 김범주 같으면). 


(스포일러 조심)

여튼 깡패들이란 답이 없습니다. 신용이나 의리 같은 건 눈곱(눈꼽이 아님)만큼도 없고 기회만 되면 뒤통수를 칠 생각에 골몰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제 이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한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니 뭐니 떠들지만 이런 놈한테 올바른 친구가 있을 리 없고 끝에 가서는 다 배신합니다. 깡패가 참는 건 감화가 되고 이성을 갖추어서 참는 게 아니라 더 진행하면 골치아파지겠다 같은 일차원적 동물적 판단이 고작입니다. 기회가 되면 바로 과거를 끄집어내어서 묵혀 둔 못난 분노를 폭발시키고 그게 멋있는 줄 압니다. 그래도 이 소설의 김범주처럼 멋지고 착한 놈도 있지 않은가? 깡패가 멋지고 착하면, 범주처럼 뒤통수 맞고 감옥에서 청춘기 십 년을 썩다가 운이 기적적으로 좋아야 빵에서 나올 뿐입니다. 이게 부럽나요? "십중팔구 나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p89)." 놈이 지 입으로 하는 말입니다. 


(스포일러)

"범인의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을 때 말이야. 그 장면이 재미있는데 너무 짧은 것 같지 않아? 눈을 도려내는 장면을 더 넣었으면 좋겠어(p116)." 과연 놈 다운 말입니다. 이게 데이트 자리에서 하는 소립니다. 주인공이라서 동정은 가지만 사실 놈도 결말에서 저렇게 죽었어야 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고 하는데(p275 등), 거 참 큰 미덕이고 선행이네요 네. 십 년 빵살이가 결코 가혹하지 않았다는 걸 과연 놈이 깨달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만 안 죽였을 뿐 깡패 생활 내내 저러고 다녔지 않았겠습니까?(1권 p125:18)


(강력 스포일러)

소설 결말에서 갑자기 십 수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채수희가 성공한 대스타가 되는 게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아마 원래 엄청 긴 소설이 될 작정이었는데 모종의 사정상 확 줄인 결과일지, 아니면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현실에서의 눈부신 성공 그 자체보다 성공을 빚게 한 그 모든 고통스러운 성장 과정(길게 서술된)이 훨씬 값지다는 심오한 뜻일까요? 여튼 마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처럼 어느덧 중년이 된 주인공들의 극적인 해후가 가슴을 찡하게 하긴 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범주가 수희를 위해 다른 손님 한 명 없는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 장면이 세 번 등장합니다. 1권에서 첫만남(드럼통을 두들겨패는) 등 두 번, 이 2권에서 p134 이하 놀이공원 장면. 무엇보다 감동적인건 평생 글 같은 걸 써 본 적 없는 범주가 수희에게 차마 말로는 못할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 아닐까 싶습니다. 수희는 끝까지 가도 범주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니지 싶습니다. 기성범이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형수님(채수희)"한테 사태의 진상을 알릴 때, 수희는 "만약 처음부터 범주가 자신이 투옥되었음을 알렸다면 바로 헤어졌을 것"이라 말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투옥 사실을 숨기려 든 데에 감동한 건 맞지만 그 마음도 "이런 남자와 어떻게 헤어지겠냐"는 동정심에 가까웠다는 걸 잘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했다면 감옥에 찾아갔어야죠. 뭐라고 편지를 보냈건 간에 말입니다. 놈이 설마 "여긴 왜 왔어? 날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내 체면은 지켜줬어야지!"라고 했겠습니까?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출옥(사형수지만)할 때까지 기다리든가 말입니다. 


1권에서 주인공 수희가 하녀로 데뷔하는 장면이 p216에 나오는데 2권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대스타가 됩니다. p293에는 대스타 수희가 상상이 아니라 진짜로 모나코를 찾는 장면도 있습니다. p299, p339 등에서 언제나 나대기 좋아하는 수희 친구 박희준(1권에서부터 계속 나오는 4총사 중 한 멤버)은 제멋에 겨워 또 주인공 행세인데 이런 친구들을 여성이라면 항상 조심해야겠습니다. 꼭 보면, 괜찮은 여자 옆에 이런 타입이 하나 들러붙어서 초를 치더라구요. 수희가 스타가 된 언급만 있는 게 아니라 정상의 자리에서 갑자기 은퇴하고 조용히 사는 단계(아들도 있음)까지도 나옵니다. 1권에서 아주 인상적인 단역이자 첫사랑이었던 음악 선생을 먼발치에서만 보고 돌아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특정 연령대의 한국인들은 국산 영화 <겨울 나그네>를 슈베르트와는 별개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p30에 보면 "청소년기에 들었던 대만 여가수가 부른.... "이란 노래는 김범주는 무식해서 모르겠지만(제목은 모를 수가 없겠죠. 첫소절 가사니까) 진추하와 아비가 부른 남녀 듀엣곡입니다. 실제 이 곡은 1976년 발표이므로 김범주가 자신의 청소년기에 들었을 법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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