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1
김광호 지음 / 아담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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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소설은 잘 읽히고 볼 일입니다. 아무리 심오한 내용을 담았어도 가독성이 나쁘면 독자와 소통을 할 수가 없죠. 이 1권은 모두 34개의 장으로 이뤄졌는데 두 주인공인 채수희와 김범주가 번갈아 등장하며 1인칭 화자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처음에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시점을 배경으로 삼는지, 둘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는데, 채수희는 분명히 1990년대 전반을 20대의 나이로 살고 있지만 김범주는 나이가 삼십대 초반이라는 것 외에는 현대 한국의 어느 시대에 속했는지 좀 헷갈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6장, p166에서 둘의 서사가 드디어 교차했기에 답은 분명해졌습니다. 


사실 둘이 안 만날 것 같다고 느낀 이유가, 모든 장이 하나 건너 다음 장과 연결은 되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또 완결적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채수희가 음악 선생을 남몰래 사모할 때 이런 이야기는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가정해도 잘 어울리고 또 전개가 유쾌했기에 그냥 거기서 사연이 끝나도 이상할 게 없겠다 싶었습니다. 체육 선생, 음악 선생은 뒤에 또 안 나오지만 채수희와 그의 친구들은 계속 등장합니다. 


채수희는 아주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집안에서 자란 반면 김범주는 밑바닥 출신에 주먹 하나로 일어선 자입니다. 깡패라고 해도 아주 개념이 없어(p272) 그냥 말단 조직원으로 끝날 인생들이 있고, 전혀 자기 제어가 되지 않아 명을 재촉하는 유형(p123의 윤인식)이 있고, 어느 선까지 잘나가다가 딱 거기까지가 한계라서 조직으로부터 제거되는 윤삼원(p280) 같은 인간이 있으며, 지금 김범주처럼 능력도 있고 판단도 잘 되며 상식선에서 처신을 잘하는 타입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김범주처럼 약점이 딱히 없으면 이번에는 보스로부터 견제를 받기 십상이니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가장 좋은 선택은, 애초에 "깡패가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밖에요.


채수희는 참 감이 뛰어난 여성 같습니다(?). p111에는 "신기가 있는지도 모른다"란 말도 있습니다. p57에서 그녀는 "뭔가 수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딱히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얼른 수상한 사무실로부터 도망쳐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사실 그녀가 완전히 꽃혀 있는 남자는 최기우인데 어설픈 운동권 대학생에 지나지 않으며 주제도 모르고 정치인을 꿈꾸지만, 2020년대를 사는 우리들이 두 눈으로 확인한 대로 운동권은 지금 정치인 중 최상위 성골 라인이니 가히 그녀는 미래를 내다보고 남친에 투자 중이라 하겠습니다(!). 증거도 없었건만 일찌감치 끔찍한 일에 안 엮이고 상황을 모면했으니 대단한 센스다? 그런데 그녀 눈에만 안 보였을 뿐 우리 독자들은 <사건과 내막>, <여학생의 세계>가 얼마나 한심한 잡지인지 대번에 알아챘으며, 25년 뒤 한총련 출신들이 대한민국 최상위 티어를 차지할 줄을 지가 어떻게 알고 신랑감을 선점했겠습니까? 그냥 빌리 크리스탈(해리 역을 연기한 미국 코미디언)을 주관적으로 엉뚱한 대학생한테다 투사했을 뿐. 


한편 김범주의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채수희와 그의 친구들이 대뜸 주윤발과 동일시한 걸 보면 그 예외적인 상황(p174)에서 보정을 받은 걸 감안하더라도 꽤 잘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연애에 대단히 서투를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외모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표현을 않는 걸 보면(아직 젊다면 젊은 30대인데) 은근 진중한 면이 있습니다. 하긴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조각 낭만도 허락이 안 되기는 하겠는데, p235라든가 p251, p182, p68 같은 데서 기성범이, 차동만이 같은 이들이 형님한테 장난도 치고 여자도 소개시켜 주는 걸 보면 또 부하들은 젊은이답게 귀여운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라고 해도 아랫사람한테 이 정도의 여유도 허락 안 하면 아마 리더십을 온전히 구축하기 어렵겠습니다. 


"깡패의 꿈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들처럼 사는 것이다. 남들처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p122)." 아닌 것 같아도 이 진술은 틀림없이 어떤 현실의 일면을 잘 반영한 말입니다.  많은 깡패들은 혹 말은 번듯하게 해도 대화를 길게 나눠 보면 정상인을 당황케 하는 구석을 거의 반드시 드러냅니다. p124에 보면 정상적인 그 나이 또래가 결코 보이지 않는 단순함이라든가, 뭔가 경계성 지능 장애 같은 걸 결국은 티를 내는 거죠. "내가 아무 말 안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나 본데(p163)..." 보스 안영표는 특유의 허세로 "자신이 벌(여) 놓은 일(p162)"에 대해 떠듭니다. "나를 정상인으로 만들지 않은 세상 자체에 대한 적의가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어, 여차하면 나 역시 다른 주먹들과 다르지 않은...(p213)" 같은 말도 참 실감나는 깡패에 대한 내면 묘사입니다. 


채수희는 예를 들어 맑은 눈동자를 한 테리우스 같은(p246) 최기우에 대해 "여자의 내숭은 결코 계산되고 꾸민 게 아니고, 그것은 두려움과 설레임과 기대감이 뒤섞여, 도저히 감당을 못하기 때문에, 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도, 상대가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멀리는 못 가는, 그런 감정(p132)"이라면서 참 독자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말을 합니다. 배경음악으로는 역시 1990년대에 인기를 끈 캐럴 키드의 "When I dream"이라든가(p116), p313에 나오는 티시 이노사의 "돈데 보이" 같은 곡들이 소환됩니다. 2권이 궁금해지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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