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재의 태블릿, 반격의 서막
변희재 지음 / 미디어워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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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방송사 JTBC에서 보도한 이른바 "최서원(구명 최순실)의 태블릿"은 당시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점은, 이른바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서원씨가 박 대통령(당시)의 연설문을 하나하나 수정하기를 즐겼고 이를 주위에 과시하듯 말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이런 보도는 JTBC뿐 아니라 좌우 진영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언론이 같은 취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책에서는 일단 당시 최서원의 태블릿으로 알려졌던 그 기기의 실사용자가 최서원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국정농단의 핵심 증거 중 하나였던 태블릿이라는 중간 고리가 증거 능력이 부족하다면 사건 전체에 대해 재평가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하는 듯합니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일단 당시 핵심 증인 중 한 명이었던 고영태씨는 같은해 12월 8일 국회청문회에서 "최서원이 연설문 고치는 일을 좋아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p28). 독자인 저도 당시 저분이 그런 증언을 하는 것을 TV로 보았고, 왜 많은 국민들이 (이 책의 주장에 의하면 잘못된 보도를 통해) 알게 된 바와 다른 증언을 할까 같은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아함은 잠시였고, 이미 대중의 뇌리에 "국정농단의 주범 최서원"으로 새겨진 인식은, 그 정도의 태도 변경에 의해 영향을 받지는 않는 상태였겠습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태블릿의 실사용자는 최서원씨가 아니었으며, 최서원씨는 그 태블릿을 통해 (공소 사실에 나오거나 언론에 보도된) 여러 행위를 할 만한 능력이 못 되는 인물이었음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1) "문서 수정 프로그램도 없고(p40)" 2) 태블릿 안에는 최서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사용한 기기였다고 가정하면 더 잘 설명되는 여러 파일이 있었으며(p56), 3) 문제의 여러 파일들은 사후에 조작된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나옵니다. 이 중 1)과 2)는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단 3)의 경우는, 1)과 2)가 틀림없는 진실이라는 가정 하에 빚어지는 심각한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저자의 설명에 불과합니다. 3)을 믿으려면, 대한민국 국가기관인 검철과 거대 방송국인 JTBC의 공신력을 송두리째 의심해야만 가능하지 싶습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 사이에서도 태도가 심각히 갈릴 것이라 짐작합니다. 


운명의 그날 박 대통령은 뜻밖에도 개헌론을 국회 연설에서 들고 나왔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내각제 개헌론자들을 일단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인 후"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관철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라고 추측(p32)합니다. 이날 저녁 JTBC가 최초로 태블릿 보도를 했고, 이 보도가 워낙 핵폭탄급이었기 때문에 개헌이고 뭐고 모든 게 묻히고 말았습니다. 독자인 제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워낙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갔고(재단 설림 과정에서 부당한 출연을 기업에 강요했다는 의혹이 터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개헌 논의 시작이라는 승부수를 들고 나온 것 아니었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의도와는 달리 이는 사실상 국정 책임 포기의 시그널로 받아들여져 태블릿 보도를 트리거 삼아 모든 게 무너져내렸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를 자초한 건 박 대통령 본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솔직한 생각입니다. 


"이 사건의 핵심 사안은 실사용자가 최서원이 맞는지, 방송사와 검찰이 태블릿을 조작한 건 없는지 여부였다.(p111)." 그런데 혹 정말로 최서원 아닌 다른 사람이 실사용자였다 해도, 방송사나 검찰이 과연 태블릿을 조작하기까지 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유시민 전 이사장이 조국 사건 때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존 행위"라는 주장을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었는데, 지금 저자의 이 주장은 그것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듭니다. 비판의 잣대는 진영 무관하게 양쪽에 동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독자인 저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태블릿에 관한 저자의 주장이 혹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과연 저 거대한 사건의 본질이나 결론이 바뀌겠는가 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뭐 알 수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태블릿과는 별개로 재단 설립이라는 목적 하에 기업들에게 출연이 강요된 건 엄연히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당시 경제수석 안종범 씨, 또 전경련 쪽 이승철 씨의 주도로 재단들이 설립되는 중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또 박 대통령은 물론 최서원씨도 전혀 몰랐다(p21)는 것이며 최서원의 관심사는 딸의 출산 문제였을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과연 그럴까 싶게, 쉽사리 독자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습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입장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서 범죄의 몸통 격으로 지목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은 김O수 당시 행정관입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김 행정관은 검찰에 모종의 약점이 잡혀 위증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p196 등). 저자는 박 전 대통령의 변호사인 유영하 씨에 대해서도 짙은 의심을 피력하는데 그 역시 금전 등 문제로 김O수에게 포섭되었을 수 있다(p197)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 개인적으로 가장 고개가 갸웃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혹 사실이라면 박 전 대통령은 그런 배은망덕한 자의 흉계를 모르고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무운(武運)을 빌어준 셈입니다. 김O수는 학연 등으로 어려서부터 홍O도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 책에는 흥미롭게도 여러 인사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고 아무개 검사(윤 대통령과 아주 가깝다는), 임태희  교육감 당선인, 강용석 변호사, 김세희 전 기자 등입니다. 이분들의 최근 행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 속에서의 그 각각의 역할을 보며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매우 논리적으로 쓰였으며, 재미있게 읽힙니다. 태블릿 사건에 대해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라도 어느새 사건의 큰 그림(저자가 주장하는 대로의)이 읽어 가며 바로 머리 속에 그려질 만큼 말입니다. 다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제가 느낀 바는, 한 가지의 의문을 바르게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의 진실이 무리하게 희생되는 면이 다분하다는 점입니다. 퍼즐 맞추기가 그래서 어렵습니다. 하나를 바르게 고치면 다른 게 어그러지기 십상인...


이 책의 제목 문구 일부는 "반격의 서막"입니다. 저자의 반격이기도 하고 최서원씨의 반격(준비 중인)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검찰 측 논고나 법원의 판결문 속에는 모순이 없지 않습니다. 이 모순들이 저자의 주장대로 해결될지, 아니면 제3의 진실이 따로 드러날지는 현재로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저자께서 그 주장하시는 바의 완결을 위해(아직은 "서막"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더 깊이 취재하시길 기대하며, 이를 통해 대중이 미심쩍어하는 부분마저 남김없이 해명되기를 희망합니다. 국지적이건 본질적이건 가리지 않고, 실체적 진실은 가급적이면 더 온전히 밝혀지는 게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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