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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육 교사입니다 - 체육 선생님 14인이 전하는 감동 메시지 ㅣ 나는 교사입니다
김정섭 외 지음 / 성안당 / 2022년 4월
평점 :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만큼 세상 어려운 게 또 없을 듯합니다. 영어, 수학, 국어, 과학을 가르치는 일도 어렵지만, 어떻게 보면 체육 교사가 가장 어려운 직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 수학 등은 이론만 잘 알면 어느 정도까지는 교사의 본분이 커버가 되지만, 체육은 이론에도 빠삭해야 하고 실기도 잘해야 하기 때문이죠. 음악, 미술 선생님은 혹 몸이 아프거나 해도 본연의 기예를 발휘하는 게 체육교사처럼 불가능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체육 교사는 아예 수업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일반의 인식은, 체육교사의 직무는 왠지 타 과목보다 쉬운 노릇처럼 오해하기까지 하니 이중삼중고가 뒤따른다 하겠습니다. 이 책 p57에 나오는 대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유베날리스의 가르침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체육 교사분들이 아이들에게 심어 줄 수 있겠습니다. "법, 문학, 수학, 과학만 공부가 아니야. 체육도 공부야. 난 체육을 공부하는 체육 선생님인데 너희도 체육 공부 안 할래?(p104)"

책 제목은 "나는 체육교사입니다"이지만 모두 열 네 분의 현직 체육교사분들이 집필에 참여하셨으니 내용은 "우리는 체육교사들입니다"인 셈입니다. 물론 집필자 한 분 한 분의 당찬 선언, 깊은 고민의 산물이자 현장 체험의 기록이니만큼 단수 1인칭 "나"가 주어로 붙었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담당 과목에 무관하게 선생님들은 모두 일선에서 겪는 보람과 고민으로 가득한 분들이시지만, 그 중에서도 체육 선생님들만의 이런 애환이 있었구나 싶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마도 학창 시절, 남학생이면 각별히 체육 선생님과의 밀접한 소통이 있었을 만하고(제가 그랬습니다) 여학생이면 또 남달리 사모의 정을 느꼈던 젊은 체육 선생님 한 분 정도가 추억에 남았을 만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책 열 네 분의 저자 모두 남성 교사들이십니다.
"불타민". 이 별명의 뜻은 처음에 나옵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게 붙곤 하는 별명들은 독창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게 많은데 이런 별명은 흔하지도 않고 이렇게 별명이 붙으려면 책에 나오는 대로 "매사에 불타는 열정을 갖고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경기과학고가 각별히 자유분방한 분위기라는 건 책을 읽고 처음 알게도 되었습니다. 왠지 체육 시간도 줄여서 공부만 시킬 것 같은 선입견도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학교에서 김민철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끈 방식은 참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본인이 열정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기질이어야 가능했을 듯한... (선생님의 주 종목인) 필드 하키라는 종목 자체가, 지나친 규율과 방만한 창의성 그 중간지점을 잘 잡아야 하는 스포츠이니 가능했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 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깔쌈하다, 까리하다" 같은 말은 경상도 일대에서만 쓰는 말 같습니다. 뜻은 책 p43에 나오는 대로 "쿨하다, 멋있다" 정도지만 왠지 그 서술만으로는 설명이 다 안 되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 숨은 뜻은 이 책의 제2장을 읽고 "아 이런 사람을 두고 깔쌈, 까리하다고 하는 거였지" 라며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ㅋ그런데 깔쌈한 (경상도) 사람들은 타 지역과 달리 좀 집요한 면도 있습니다. 이 책에도 "게시판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열심히 공부했던" 저자분의 학창 시절 술회가 나옵니다. 이런 체험을 해 봐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중인 학생들을 진정성 있게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이 실력이 되는 세상입니다!(p73)"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저자 김성태 선생님의 (이 책 2장에 나오는) 학생들과의 그 밀도 높으면서도 감동적인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라면 느낌이 또 확 다릅니다. 이런 게 교사의 일이다, 이런 게 바로 선생님이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체육 교사로서 겪게 되는 고충, 어떤 모범적인 해답 같은 게 가장 눈에 잘 띄는 케이스가 김정섭 선생님 같았습니다. pp.88~89에 보면 "체육 교사로서 반드시 배워야 할 7가지"가 잘 정리되어 나오기도 하고, "인생은 무대이며 치열한 리허설이 아름답게 꽃피는 인생을 낳는다"는 구절이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생각나게도 해서였습니다. "키가 잘 크기 위해" 외에 농구를 (청소년기에) 꼭 해야 하는 이유 10가지(p99)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살면서 겪는 많은 체험을 이렇게 n가지로 교훈화하여 정리하는 일을 참 잘하시는 것 같네요.
"체육교사에게 필요한 능력은 특정한 분야만 엄청나게 잘하는 게 아니라 다방면으로 고르게 잘하는 것이다(p143)." 비단 체육교사뿐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께 두루 요구되는 덕목이겠지만 특히 체육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배우게 되는 모든 동작, 종목을 두루두루 다 잘 하셔야 아이들에게 흥미도 유발하고, 다양한 잠재력을 갖춘 아이들을 유효하게 자극해 줄 수 있겠으니 특히나 이런 자질(다방면 능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체육 교사는 절대 단무지(p140)가 아니며 단무지는커녕 유연한 팔방미인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박태규 선생님 말씀처럼, 어려운 걸 최대한 쉽게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능력, 또 거기서 큰 보람을 찾는 적성이 있어야만 할 듯합니다.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건 또다른 자질이겠으며 아이들 상대 자체가 즐거워야 이런 소통이 지속이 될 테니 말입니다.

입시 위주 교육만 만연하면 체육 과목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학부형, 학생들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체육은 당연히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며 백승필 선생님의 견해(p184)에 따르면 특히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체육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1) 자아존중감 2) 운동에 대한 관심 3) 수행평가에 대한 태도 개량 4) 신뢰와 유대, 즉 rapport의 형성에 기여 5) 활기찬 학교 생활 등이라고 하는데 하나하나가 공감가는 지적입니다. 운동 능력의 향상과 그 확인은 생각보다 큰 성취감을 주며 이를 통해 바르고 아름다운 체형에 가까워진다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요즘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싼 돈을 내고 PT까지 받는 세상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청소년기에 돈도 따로 안 내고 학교에서 가르쳐 준다는데 왜 하지 않겠습니까? p237에서 이동규 선생님은 체육을 통해 특히 함양되는 자존감에 대해 자세히 언급합니다.
"체육쌤 같은 느낌이 안 들어요!" 오히려 공부만 파고들 것 같은 인상의 이청용 선생님,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체육선생님이자 체육교사로 이룰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누려 본 백승필 선생님 등 이 책의 저자분들만 놓고 봐도 체육교사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졸업하신 학교, 전공도 천차만별이고 체육에 입문하게 된 동기도 제각각입니다. 그래도 체육교사 코스는 어느 정도 공통된 과정을 통해 양성, 배출된다고 여겼던 터라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된 선생님들의 다양한 사정과 배경이 한층 놀라웠습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 혹은 임원이라 해도, 입사 동기, 전공, 출신 학교, 집안, 성격 등이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들이 많듯, 성공한 체육 교사분들이라고 해도 이처럼이나 다채로운 사연을 품고 살아 오셨구나 싶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신 분이 두 분, 한체대를 나오신 분이 한 분, 그 밖에는 각각 모두 다른 학교 출신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이 내시는 목소리에 분명한 공통점이 실렸으니, 열정과 의지와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그것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쩌면 학생들이 이런 선생님들로부터 배울 첫째 덕목도, 이론이나 기능 외에 바로 이런 인격적인 진정성이겠습니다. 책은 컬러 사진이 많고 편집이 예뻐서 그 내용이 더욱 잘 다가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