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 이어령 산문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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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어령 선생의 작품들 중에는 유독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위대한 정신이 그 타고난 재능이라든가 지적인 학습 과정 같은 것 외에도, 그 잠재력을 온전히 꽃피우려면 이처럼 위대한 한 모성이 끊임없이(설령 모친이 돌아가신 후라고 해도) 자양분을 제공해 주고 영감을 선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출판이란, 영어의 publication이 뜻하는 대로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일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 ", "눈부신 이공간(異空間) 속으로 들어가는 내 작은 심장의 고동소리" 등 선생의 문장과 구절 속에는 벌써 독자의 몽매한 마음을 일깨우는 통찰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지성을 세상에 낳은 그 어머니야말로 진정 위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적 체험이면서도 보편적인 우주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 꼭 이 책이나 어머니에 대한 상념의 글이 아니라 해도 선생의 거의 모든 글과 이야기들은 과연 "보편적인 우주"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모두 네 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 첫째가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라는 제목인데,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 이 여섯 가지가 은유의 보조 관념 여섯입니다. 특히 넷째 금계랍에 대한 이야기가 놀라웠는데, 그 뜻은 책을 직접 읽어 보고 독자가 직접 깨치고 생각할 일이지 이런 독후감에 함부로 옮겨 적을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확실히 선생의 글은, 선생의 글을 익히 읽어 본 독자가 지레짐작으로 이 키워드에서 이런 내용이 풀려 나오겠거니 여기던 바의 아득한 지평마저 뛰어넘는 놀라운 통찰로 가득하며, 아무리 어리석은 독자에게라도 최소한 "의외, 놀라움"이란 느낌과 체험을 선사합니다. 그런 게 다 있었구나, 그런 게 다 있었구나. 뭐 이런. 


둘째 글은 "이마를 짚는 손"입니다. 신화의 도시에서 저자는 세 가지 언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프로메테우스, 둘째는 헤르메스, 마지막인 셋째는 오르페우스라고 합니다. "이미 오르페우스가 부는 피리 소리에는 모순도 대립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충하는 것을 화합시켜 하나로 융합게 하는 결합의 언어이다.(p63)" 이 세 가지 언어를 이미 어머니는 어린시절 선생에게 그 오의를 가르쳐 주셨다는 겁니다. 


"얘야 너무 놀랄 것 없다. 키가 크느라고 그렇단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키는 육신도 육신이지만 정신의 키도 포함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인이 된 후에도, 아니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끊임없이 악몽을 꿉니다. 이런 시련과 간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거의 전적으로 "엄마"에게서 받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려서 사랑을 많이 받은 인생이 진정 축복을 받은 것이고 돈이나 위신을 물려받은 게 중요치 않다는 거죠. 돈 같은 건 쥐고 있는 당사자가 변변치 못하면 한순간에 어느 사기꾼의 손으로 달아납니다. 시련을 이겨낼 의지와 위험을 내다볼 지혜는, 아마도 그 태반을 어머니가 그 자녀의 성장기에 물려주는 것이 아닐까요. 주변을 보면 과연 그렇습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상황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까. 다 그 모친이 사랑을 듬뿍 담아 당자를 길러낸 덕이 아닐지 말입니다. 모르긴 해도요. 


셋째 글은 "겨울에 잃어버린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마치 톨스토이 우화에서처럼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사실 저자께서 어린시절 직접 겪은 사연입니다. 어쩜 아직은 평범했었을 어린이의 한 성장기에 이런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졌을까 싶지만 아마 우리도 이 비슷한 사연이 하나쯤 있었을지 모릅니다. 선생이기에 그걸 다 기억하고 재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거겠고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p103의 한 구절을 "그는 저주의 아들이었다"라고 잘못 읽었습니다. "저주"가 아니라 "지주"였는데, 끝까지 읽고 보니 저주라 읽어도 딱히 오독은 아니었구나 싶어 기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기괴한 우화(?)를 읽고 느끼는 점은 독자마다 제각각이겠으나 확실히 이런 이야기는 이어령 선생의 책에서만 또 읽을 수 있는 귀한 소스다 싶었습니다. 


"진주는 돌이 아니다. 진주는 눈물이다(pp.150~151)." 마지막 글 "나의 문학적 자서전"은 모친, 부친에 대한 회고가 고루 담깁니다. 선생은 대개 명징하게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들려 주는 편이고 글 아니라 TV, 라디오, 기타 미디어에 담긴 육성으로도 그렇습니다. 타고난 좋은 목소리에 마치 전문 구연자처럼 정확한 발성에 온갖 느낌을 다 담아 말씀을 하는 편이죠. 하지만 때로 독자는 "이건 무슨 뜻일까" 하고 나쁜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그 의도를 곰곰 살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독자라면, 이 책에 실린 넷째 글에서 어쩌면 많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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