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주사위 황순원 전집 10
황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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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작가는 물론 <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로 유명한 그분입니다. 제목이 "신들의 주사위"로 붙었는데 마치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 가의 테스>에서 "정의는 마침내 실현되었다. 불멸의 신들의 우두머리가 테스를 가지고 놀기를 끝낸 것이다."라는 유명한 마지막 문장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내용은 그런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한 집안의 가장(과거식)이 너무 고집스럽고 완강하다면 가족들 모두가 피곤해지고 때로는 그 운명이 꼬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분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의외로 모두를 배려하는 깊은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해도 말입니다. 물론 요즘은 이런 유형이 잘 없고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현대의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이해가 안 가는 면도 있습니다. 


배경은 어촌이며 주인공격인 노인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고 그로부터 두 손자를 보았습니다. 아들의 삶에도 일일이 지나치게 간섭하여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만들어 놓았다는 비판을 듣는데, 결정적인 문제는 두 손자에 대한 것입니다. 손자 중 첫째는 남달리 머리가 좋아서 나중에 크게될 인물이라고 주위의 기대가 대단한데 이상하게도 노인네는 이 손자에게는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둘째를 일찍부터 도회지로 보내어서 입신할 수 있게 많은 배려를 합니다. 그러니 첫째 손자는 피해의식에 가득할 수밖에 없고 이 촌구석에서 속절없이 나이만 먹습니다. 


첫째 손자는 자신도 자신이지만 조부에게 꼼짝도 못하고 쥐여 사는 자신의 아버지가 너무도 불쌍해서 어느날 큰 마음을 먹고 거액을 빌려 아버지가 분가한 후 그 시중을 들어 줄 후처 역할을 해 줄 여인까지 마련해 주는데(예전식) 돈을 빌리긴 했어도 갚을 방도가 없다는 걸 뻔히 아는 그의 여자친구는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한편 둘째 손자는 인물도 좋고(잘생긴 건 이 집안 내력이라 피붙이들이 다 볼만합니다) 그 장래성 하나를 보고(무슨 고시인지 1차를 벌써 젊은 나이에 합격했습니다) 도시에서 여자들이 붙는데 그 중에서도 제법 돈 많은 집안의 딸과 친한 사이입니다. 이렇게 잘나가는 동생을 본 첫째의 마음이 더 복잡할 수밖에 없죠. 


보통 그 부모가, 과거 자신이 못 해 본 바를 자녀에게 시켜 대리만족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거꾸로 그 아들이 아버지를 통해. 그것도 죽은 모친을 대신할 후처를 마련까지 해 준다는 건 처음 접해 봅니다. 이 의도는 효성의 발로라기보다 명백히 대리만족이며(분가, 결혼을 자신이 못 해 봄), 그를 넘어 조부에 대한 일종의 시위입니다. 자금은 기어이 변제가 못 되며, 이 소식은 그의 조부 귀에 들어가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동생이나 그 약혼녀에게 말만 했어도 얼마든지 상황 타개가 가능했겠으나 뭔 일인지 첫째 손자는 상황이 파멸로 굴러가게끔 방치합니다. 독자인 제 눈엔 그렇게 보입니다. 


첫째 손자는 기어이 자살을 선택하며, 이후 대체 무슨 까닭으로 어려서부터 수재로 소문났던 첫째에게, 돈은 썩어날 만큼 많았던 조부가 그처럼이나 투자를 아꼈는지 이유가 드러납니다(스포일러). 그렇다고는 해도 방법이 이처럼 잘못되어서야 그 선의를 타인에게 이해받기란 매우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소통이라는 게 이처럼 중요하며, 그저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노력만으로도 많은 큰 비극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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