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이란, 어떤 시대를 초월해서, 문명사회의 성원들을 영원히 괴롭히는 딜레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소설에서 불륜의 중심은 전직 연극배우 A(男), 교수 부인 B(女)입니다. 이 둘은 물론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제주도의 모 호텔에서 객실 301호를 두고 충돌을 빚는 통에 본의 아니게 엮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제주도 이 호텔의 301호에 얽힌 사연이 있었으며, 특히 B는 교수인 남편과 함께 신혼여행을 왔을 때 301호에 묵었더랬습니다. 당시에는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으므로 거의 모든 신혼 부부에게는 제주도라는 고정된 행선지가 있었습니다. 


B에게는 남편 C가 있는데 이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공부한 끝에 교수 자리까지 따낸 대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수가 되어 신분 상승을 한 후 C는 부잣집에서 유복하게 자란 B와 결혼했는데 이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이 워낙 차이나다 보니 자주 부딪힙니다...라고는 하는데 주된 갈등은 남편 C가 아내 B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워커홀릭이라는 이유 말고는 딱히 뭐가 없습니다. 


"아무리 남편 앞이라곤 하지만 옷차림이 그게 뭐야? 난 연구 때문에 오늘밤을 새워야겠으니 그만."

"우리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을 이제는 풀고 가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이 소녀인가? 그런 유치한 감정은 스스로 달래고, 남편을 좀 그만 귀찮게 할 수 없어?"


항상 부부 사이의 갈등이란, 갈등 그 자체가 심각해서가 아니라 이런 사소한 문제를 조기에 진압하지 못해 아무것도 아니던 게 스노볼처럼 커지는 게 보통입니다. 한편 연극배우 A는 혜진이라는 또래 여인과 사랑에 빠졌으나, 고아 혜진을 입양하여 딸처럼 키워 오다 처가 죽은 후 후처로 들인(!) 어느 노인 때문에 강제로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착한 혜진이는 사랑 대신 은혜를 택한 거지."


물론 요즘 같으면 은혜고 뭐고 말도안되는 수작이며 사회적 지탄을 받을 성범죄적 스캔들에 불과하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억지로 달랜다고 방향이 바뀌겠습니까. 두 사람은 기어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고 이 호텔 301호에 묵지만 영감은 그 호텔까지 알아내어 둘을 추궁합니다. 감옥에도 보낼 수 있다고 협박합니다. 그게 가능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튼 C는 크게 후회하고 아내를 찾아 이곳 제주까지 옵니다. 하필이면 A와 B는 험한 파도가 치는 날 배를 빌려 위험한 항해를 하고 기어이 실종됩니다. 그러나 우여곡절끝에 A는 구조되고 B는 잠시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격분한 C는 B를 향해 주먹을 날립니다. 사실 C는 별 잘못도 없는 사람이죠. 


여기서 인상적인 건, 전직배우 A와 교수 C를 모두 아는 어떤 젊은 여성 D가, 갓 결혼한 젊은 남편 E와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저 모습들을 잘 봐둬야 할 것 같아. 미래의 우리와 닮았을 수도 있으니까." 몸의 병이건 마음의 아픔이건 역시 백신이라는 게 요긴합니다. 사랑은 과연 그게 무엇인지 보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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