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중국의 위험한 관계 미디어워치 세계 자유·보수의 소리 총서 7
앙투안 이장바르 지음, 박효은 옮김 / 미디어워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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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프랑스 대선 개표 완료가 몇 시간 지난 시점에서 극우 스탠스의 마린 르펜이 거의 40%에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는 보도를 보면 놀라운 감이 있습니다. "우파"도 아니고 "극우" 단일 진영의 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미있는 건 오늘날 프랑스의 극우 진영은 중국이나 러시아 등 자유진영에 대립하는 독재 체제 국가들에 대해 오히려 연대감을 표방한다는 점입니다. 이와 관련, 이 책은 프랑스의 좌파가 아니라 오히려 우파 진영에 친중 정치인이 대거 포진해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제기합니다. 프랑스가 오랜 세월 동안 일정한 영향력을 지녀 온 아프리카에 중국이 공격적으로 진출함으로써 국익이 크게 침해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임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흥미로운 주장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마린 르펜 지지세를 "극우"로 분류하는 기준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고 보지만. 


중국 통신 기업 화웨이가 이익을 추구하는 순수 민간 기업이 아니라 중국 군부와 강하게 연계된 조직이라는 의혹은 여러 소스로부터 그간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특히 p39 이하에서, 화웨이가 프랑스 고위직이나 중요 기업인들을 타겟으로 삼아 효과적인 로비를 펼쳐 온 끝에, 어떻게 프랑스 대표 통신 기업 중 하나인 알카텔을 "넉다운"시켰는지에 대해 자세한 분석이 나옵니다. 책을 읽어 보면 프랑스처럼 기본이 튼튼한 나라도 타국으로부터의 로비라든가 스파이행위를 대처하는 방법이 허술하기 짝이 없으며, 이런 방식으로 핵심적인 국익을 침해당하거나 극비 정보를 넘겨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항공기 제조사 중 보잉은 북미를 대표하고, 에어버스는 유럽을 대표한다는 게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온 공식입니다. 중국이 언필칭 G2의 하나로 떠오른 지금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업 하나쯤은 중국 본토에 세워져 있을까요? 그렇기는커녕 이 부문 관련하여 중국이 뉴스에 오를 일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p56에 나오는 대로) 벌써 2013년 4만여명을 동원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한 유력한 주체가 바로 중국군 측이라는 보도입니다. 사이버 공격은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허세의 제스처가 아니라 "기술 탈취"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 전략적 생동이었습니다. 프랑스는 지난 20년 동안 몇 차례나 중국의 눈밖에 나서 공개적으로 무역 보복을 당하기도 했고, 이처럼 암암리에 재산권을 침해당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르몽드紙는 잘 아는 대로 프랑스 지성의 한 상징이자 진보진영의 오랜 정론지이기도 합니다. 이 오랜 언론의 PDF판을 위조해서 해커들은 재경부 공무원들로부터 정보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본문 중 소제목이 마치 르몽드가 중국에 부역이라도 한 듯 착시를 부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처럼 해킹을 손쉽게 당한다는 건 해당 공무원들의 방심과 무신경, 직무태만의 소지도 큽니다. 이런 문제점은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기강이 상대적으로 해이한 자유 민주 진영 공통의 문제입니다. 


미인계를 통해 요인들을 매수하여 중요 정보를 빼내는 건 역사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역사상 주류 문화에 가장 늦게 동화된 지역에 속하며, 따라서 주류로부터 따돌림,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온 편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미인계를 동원한 전대미문의 스파이 사건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에서 중심이 되었다는 리리황(Li Li Whuang)은 마치 몇 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또 이번 중국 남부 여객기 추락 사고의 희생자였다는 루머가 도는 팡팡(方方)과도 매우 닮은 패턴의 행적을 보입니다. 


p101 이하 챕터4부터가 이 책의 진짜 본론이 전개되는 부분입니다. 사르코지라는 단신의 전직 기업인이 당시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저때로부터 4여년 전 지금 코비드19와 비슷한 호흡기 전염병인 사스(Sars)가 대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책 전반부에서 자세히 기술된 대로) 프랑스는 가뜩이나 중국측으로부터 피해를 입어 가는 편이었고 전통적으로 중국 견제론이 팽배했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한국은 이 시기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 불명의 중국 대세론이 휩쓸며 근거 불비의 친중론이 횡횅했습니다. 반중 여론은 최근에서야 형성된 거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국방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자진해서 중국 측에 제공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이 책은 주장합니다. 이미 당시에도 이런 정보를 이용해서 중국 측이 생화학무기를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파 대세 전환의 원조 격이 된 자크 시라크 전 파리 시장,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과의 균열 조짐은 있었습니다. 아니 아득히 거슬러올라가자면 샤를 드골부터 따져야 하겠지만. 이라크 개전을 둘러싸고 미 네오콘 측과 시라크는 격렬히 대립했는데 어쩌면 이때부터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돌이킬 수 없는 대립의 골이 생겼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p122에 보면 로랑 파비위스 총리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21세기뿐 아니라 이미 1980년대에 미테랑 대통령 때에도 총리를 지낸 거물입니다. 누드 모델을 부업으로 삼는 젊은 정치인이 총리직에 올랐다고 해서 당시에도 크게 화제가 되었죠. 당시에는 대통령은 좌파 사회당인 미테랑, 총리는 우파 파비위스가 되었기에 이른바 "동거(코아비타숑)" 정부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르코지 행정부에서도 친중 일변의 움직임만 있었던 건 아니고 베르나르 바졸레(p150)처럼 중국을 적극적으로 경계하는 인사가 있기도 했습니다. 올랑드 좌파 정부를 거쳐 현 마크롱 대통령도 기본 노선은 우파에 가까우나 대중 노선은 내내 불명확했고 심지어 대통령 자신이 "나는 친중"이라고 공언하는 등 이분은 대체 기본 지향점이 뭔지가 의심스러운 편입니다. AUKUS 결성 당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호주 측의 계약 파기(?)를 지탄하는 등 누가 봐도 중국 측에 도움을 주는 입장입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면 중국 아니라 누구하고도 손을 못 잡겠습니까만 이미 기 소르망 같은 석학은 20년 전부터 중국과 프랑스 사이의 근본적 이해 상충을 경고한 적 있습니다.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대로 전통적 파트너십 관계였던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는 속속 밀려납니다. 19세기 식민지배의 끔찍한 역사가 있었다고는 하나 그 속죄(?)를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건 또 아니죠. 중국은 기본적으로 상대국에 호혜를 제공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이상한 복수심, 설욕의 마음가짐을 갖고 나중에 뒤통수를 크게 치려는 목적이 모든 행동의 뒷배에 깔려 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체 이견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 타국 입장에서는 더욱 위험합니다. 이란의 경우 공화당 정부에서는 좀 피곤해지지만 지금처럼 민주당 정권일 때는 우호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미국은 상대하기가 편한 겁니다. 하지만 중국에 야당이라는 게 어디 있습니까? 프랑스가 불과 6주만에 히틀러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에 1940년대 세계 평화가 근본에서 흔들렸고 같은 나라가 또다시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또다시 세계 정세를 파란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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