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할 때, 혹은 그저 재미로 읽어나간다고 해도, 지도를 보고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 어느 지형에서 이러이러한 세계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입체적으로 이해를 해야 그게 올바른 지식으로 머리에 자리하는 듯합니다. 역사는 추상적인 수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호 뭉치의 암기, 텍스트 위주의 억지 스토리 추종은 독자에게 아무런 교훈이나 각성을 남기지 못합니다. 심지어 역사를 그저 글로만 배운 사람은 극단적으로 왜곡된 어떤 도그마만을 찌꺼기처럼 추출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리기까지 합니다. 역사에서 진실을 찾는 노력에 지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어떤 위험한 결과가 나올지 모릅니다.
서남아시아, 중동이라고 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만 떠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책 p24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듯한 땅 레반트에 대해 설명합니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아랍어의 마쉬리크라는 단어로 이곳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라틴어 레반트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전개되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는 사실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들입니다. 지도를 통해 이런 사정을 정확히 알지 않으면 왜 그토록 격렬한 갈등상이 벌어져야 하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란도 석유가 많이 나는 사막지대뿐 아니라 험준한 산악지형, 고원 지방이 큰 비중인데 책에서는 이란 영토에서 산악지형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까지 합니다. 한국도 사정이 비슷하죠(고원이나 사막은 거의 없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용맹한 전투종족이 이 지역의 패권을 일단 차지한 후에는 그 주변으로까지 패권을 확장할 수 있었겠습니다. 책에서는 "이란은 중동으로 함께 묶이지만 아랍으로는 엮이지 않음"을 가르치며 이 나라가 오랜 역사에 걸쳐 어떻게 독자적인 정체성을 다졌는지 독자에게 알려 줍니다. 이란이라는 국호 자체가 "아리아"에서 유래했으며 나치가 지어낸 아리아인의 고대 활동상의 실황이 어떠했는지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아리아인이라는 종족이 실재했던 것만은 사실이겠습니다. p51에서는 미국 컨텐츠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에 무관하게, 페르시아라는 문명권은 동시대 그리스보다 더 관대한 편이었다는 평가를 합니다.
발칸반도가 유럽의 화약고로 불린 건 꼭 1차 대전 직전 시기만의 사정은 아닙니다.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지역의 안정을 책임질 권위도 함께 실종되자 발칸 서부 일대는 세르비아 패권주의가 갑자기 부상하며 "인종 청소"라는 무서운 단어를 전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당시 NATO는 즉각 개입하여 반인도적 만행을 일단 중단시켰지만 "남슬라브인이라는 일체감보다는 종족 간의 적대감이 훨씬 강한(p88)" 정치적 대립상은 현재까지도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세르비아와 매번 붙어다니다가 최근에서야 갈라선 몬테네그로에 대해서도 책은 간단하면서도 핵심을 짚으며 그 정체성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p84의 간략한 지도는 직관적으로 발칸 각 지역의 정체성을 가르칩니다,
유럽은 원래 남부 지역이 역사 발전을 주도했고 더 풍요로우며 문명화한 삶을 누려 왔습니다. 그러던 게 중세 이후 서서히 북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는데 책에서는 "(그 이유를) 자연지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p102). 남유럽은 본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고, 다만 중동으로부터 더 빨리 선진문명을 전달 받을 수 있었던 이점에 기대었다고 합니다. "꼭 하나가 아니어도 좋은 이유"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유럽은 구태여 하나됨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강점을 지키며 발전해 왔습니다. 다만 대립이 너무 날카롭게 진행되면 이제는 모두가 생존이 힘들어지는 만큼 EU 같은 체제로 수렴점을 형성하는 거겠죠. p106의 지도들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지적처럼 "만성적 분열"과 "만성적 통일"을 전개시킨 두 지역의 개성이 지형에 맞게 발달해 온 이유를 통찰하게 돕습니다.
미국은 보통 축복받은 땅이라고 말합니다. 광대한 농업 지역, 유전(油田), 쾌적한 주거지, 사막, 산악 지형 등이 골고루 분포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수백 년 동안 살아오면서도 저 북미지역에서는 그닥 발달된 문명권을 일구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면서 전에 없던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많은 인구를 부양하는 지역으로 거듭나게 한 건 확실히 초기 유럽 이주민들, 그 중에서도 북부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원주민들의 고통과 19세기 이후 미국이 걷게 된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고찰합니다. p156의 지도는 현대 미국을 인문적으로 구분하여 독자로 하여금 개념을 잡게 해 줍니다. 델라웨어와 메릴랜드를 남부 대서양권에 묶어서 그 위의 중부대서양권, 뉴잉글랜드와 구별 지은 태도가 눈에 띕니다.
남미는 크게 포르투갈어권과 스페인어권으로 나뉘며, 후자 중에서도 여러 그룹으로 나뉘는데 여기에는 자연지리적 분단 요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p176의 심플한 지도가 그 이유를 큰 범위에서 알아 보게 돕습니다. p189의 지도는 식민지배를 벗어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남미 대륙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한눈에 알아 보게 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는 남미 식민지에서 수탈한 부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낭비했다는 말이 있는데(p190), 인플레만 고스란히 떠안고 재화와 자본은 유럽의 나머지 지역이 고스란히 챙긴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죠.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종족들입니다. p207의 지도는 아프리카 대륙이 얼마나 큰지 비교를 통해 독자에게 알려 줍니다. 아프리카에는 비슷한 모습의 흑인들만 사는 줄 알지만 사실 언어도 다르고 신체적 특징도 지역에 따라, 혹은 같은 지역 안에서도,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앞으로 한국이 아프리카에 본격 진출하여 현지인들과 공존공영을 도모하려면 이곳에 대한 지리적, 인문적 지식도 늘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