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꽃밭 그림, 소설을 읽다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고 최인호 작가님은 1970년대 내내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엄청난 다작을 한 분입니다. 대중성 면에서 가히 최고가 아니었나 싶은데 그렇다고 작품성이 아주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대체로는). 요즘 같으면 이런 작가가 나오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집에는 그의 여러 단편들이 수록되었는데 여기에 더해 눈길을 끄는 건 화가 김점선의 일러스트입니다. "기확자의 물음에 화가가 말한다"를 읽어 보면 그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겠습니다. 


"순례자의 꽃밭"이라는 제목을 정확히 가진 작품은 없고 그의 잘 알려진 단편 <순례자>가 있긴 합니다. 그의 명작들이 (더군다나 그림까지 곁들여) 이처럼 한데 모였으니 "앤솔로지"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한 "꽃다발"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제가 눈여겨 본 작품은 <천상의 계곡>입니다. 노년에 접어든 이들의 사랑, 집착, 회한 등을 다뤘는데 어찌보면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습니다. 최인호 작가가 이 작품을 썼을 때면 아직 한창 활동을 하던 장년기였는데 참 소재를 다양한 곳에서 찾았다 싶기도 합니다. 


두 노인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가 제재인데, 그나마 남 눈치를 보느라 감정을 나누기는커녕 제대로 데이트를물리적으로 진행도 못합니다. 자녀들이 일단 눈치를 주고, 동료(?) 노인들도 곱지 않은 시선을 주는 게 특이합니다. 노년에 접어든 이들은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고 건강도 좋지 못한데, 당시 사회가 그런 데에까지 배려를 하지 못한 탓이 크기도 하죠. 단 이건 21세기인 지금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며 작가가 딱히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서사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여성 노인에게는 1남 2녀가 있는데 아들이 그나마 어머니를 이해하는 편이고 막내딸이 가장 극성스럽게 반대합니다. "내 시댁에서 뭐라고 하겠어?" 근데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저 말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습니다. 사실 요즘이라고 자녀들이 이 문제를 흔쾌히 찬성하고 나서겠습니까. 당연히 극력 반대를 하겠고, 경우에 따라 이는 상당한 추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에 대해서는 당연히 강력한 형사 조치에 나서야 하겠고 말입니다. 


이 작품은 TV로도 극화되었는데 원작과 드라마는 설정 면에서 다른 점이 많습니다. 드라마는 시대가 1980년대라서 한국이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듯한 풍요로운 아파트촌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자녀들은 모두 변변한 사회적 기반을 다진 상태에서 이제 간신히 노년 로맨스에 시선을 줄 여유가 생긴 국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긍/부정은 다음 문제이며). 어머니 역의 여운계씨와 맏아들 김세윤 씨는 나이 차가 얼마 나지도 않으며 오히려 부인(며느리)인 김창숙 씨와 훨씬 차이가 날 정도입니다. 노인 남성 역엔 엄청난 피지컬을 자랑하는 김성겸씨가 나오는데 이분도 김세윤씨와 불과 한 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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