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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성찰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281
에드먼드 버크 지음, 이태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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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식 실용주의는 어떤 극단에의 치달음을 거부하고 "커먼 센스"의 힘을 믿어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문에도 나오듯 저자 에드먼드 버크는 자유주의 노선에서 아메리카 식민지에의 가혹한 처우를 비판하고 미국식 민주주의의 자립을 전폭 지지하는데 이 정도만 해도 당시로서는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그는 미국 독립 전쟁 발발로부터 약 13년 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였는데 이 정도면 요즘 사람들한테 극우파 대접 받기에 충분할 겁니다. 상식의 길은 이처럼이나 오해 받기 쉽고 속된 말로 "가오"가 살지 않지만 건전한 사고의 소유자만이 빚어낼 수 있는 지혜의 길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후 "혼인"이라는 절차는 이른바 civil union이라 하여 교회와 성직자의 권한이 배제된 세속의 형식으로 위상이 재정립되었는데, 당시 갓 혁명에 성공한 부르주아들로서는 기층민중의 의식을 여전히 지배하던 종교적 메카니즘을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려 무진 애를 썼겠으며, 요즘은 놀랍게도 성소수자들의 결합 제도화에 이 논리가 확장 응용되는 경향까지 있습니다. 하긴 civil union이라고만 하면 그 당사자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혹은 숫자가 두 명이든 그 이상이든 이론적으로야 딱히 제한이 없을 듯도 합니다. 계약에 의해 당사자 의사들이 합치만 하면 그만이니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현민 유진오 박사가 헌법을 초안할 때 입법부인 국회를 "내셔널 어셈블리"라 명했는데 이 명칭은 영어지만 그 먼 기원은 프랑스의 assemblée nationale입니다. 로망스계 언어라서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위치하죠. 이것이 입법의회로 다시 개편되고, 이것이 붕괴된 후 국민공회로 개편되어 큰 혼란을 겪다가 총재정부가 들어서고 다시 통령 정부를 거쳐 나폴레옹의 제정이 들어섭니다. 만약 장군 나폴레옹의 "힘에 의한 결단"이 없었다면 과연 혁명의 과실이 제대로 맺어졌을지, 그저 십여년의 대혼란 끝에 더 전제적인 왕정이 복구되지나 않았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물론 다시 부르봉 왕실이 컴백했으나, 나폴레옹 시절에 큰 향수를 지닌 층이 다시 혁명을 원한 끝에 1830년, 1848년에 재차 체제를 뒤엎어 공화정으로 북귀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조카를 참칭한 선동 정치가였던 루이가 제정을 또 세웠다가 프로이센에게 박살이 나긴 했으나 이는 잠시의 작은 이탈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제3공화국" 시절을 그들의 황금기로 꼽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아침에 생필품 가격이 크게 올라 주부들이 울상이라는 뉴스가 나왔는데, 이런저런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시중에 돈이 풀렸으니 생산은 전보다 줄고 돈만 풍성해지면 물가가 오르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보편지원의 경우 시중에 화폐를 직접 풀지 않고 디지털 형식으로만 일단 유동성을 공급했다가 자영업자에게 최종적으로 지급하는 경로에서 그나마 부작용이 덜했으나 당시 프랑스에서는 어리석은 집권자들이 그저 지폐만 찍어내면 문제가 해결되겠거니 하는 생각에 아시냐를 발행했죠. 처음에는 "몰수한 교회 재산"이 담보였다고는 하나 이게 어차피 태환이 안 된다면 원나라의 교초, 이하응의 당백전만큼이나 부도수표의 남발일 수밖에 없습니다.
1970년대 미국이 금의 태환을 중단했지만 이 나라는 생산성이 여전히 높았고 연준이라는 기관이 분별력과 자제력을 발동하여 시중의 유동성을 과감하게 주기적으로 회수했기에 경제 체제 붕괴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시장 참여자들은 기민히 눈치를 살피며 달러가 조금의 약세라도 보일라치면 신흥국 통화로 갈아타는 등 고난도의 게임을 펼칩니다. 지난 11월부터 1월까지 한국의 원화가 계속 상승세였던 걸 보면 결국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한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거나, 한국 대기업들의 부가가치 생산이 그를 상회한다고 신뢰한 듯합니다. 그러나 "貨幣의 아시냐 化"는 어느 나라 정부의 무슨 통화에 있어서건 그리 먼 위험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