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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 - 딸에게, 남도에서
김상렬 지음 / 늘푸른소나무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소설가 김상렬의 다섯 단편, 중편 들이 실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님의 작품을 평소에 읽지 않아 본 터라 작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네요.
책에 실린 다섯 편 중 제가 특히 눈여겨 본 작품은 <객사>입니다. 말그대로 객지에서 죽은 어느 사내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평범하고 통속적이라면 다분히 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작가님의 독특하고도 강렬한 입담에 기대어 비범한 아우라를 풍기는, 매우 흥미로운 사연으로 탈바꿈한 저력이 빛난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사장님, 아마도 건축업,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는 분 같습니다만, 이분이 하루는 전보를 받습니다. 전보가 본래 그렇듯 내용은 간단한 한 줄입니다만 사장의 낯빛은 크게 바뀝니다. "형님이..."라고 하는 걸로 보아 아마도 피붙이인 듯 싶지만, 어떤 애틋한 감정은 엿보기 힘듭니다. 사망을 알리는 비보(悲報)이긴 한데 병명은 행려병입니다. 사실 행려병이란 말도 없거니와 이것을 병명의 일종으로 볼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떠돌아다니다 병을 얻어 눕게 된 이를 행려병자라고는 합니다만 "행려병"을 그 어휘에서 떼어 독립적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사장에게는 돈이 많은 부친이 따로 있는 듯 보입니다. 요즘 사업이 어렵게 되자 회사 간부가 "어르신한테 도움을 받는 게 어떻습니까?"라며 조언하지만 사장은 답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전보가 날아온 강원도 모처로 가서 사정을 파악하기로 합니다. 현지에는, 아마도 정식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고인과 동거해 온 듯한 어느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그녀는 사장에게 유골을 내밉니다. 이때만 해도 죽은 이를 화장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었으며 고인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고인의 생전 뜻"이라고만 합니다.
온전한 유해를 수습해 오지 못한 사장은 부친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습니다만 사정을 듣고 보니 더이상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부친은 자신이 직접 강원도 모처를 찾아 여인을 만나고, 여인에게는 재혼할 기반이 될 돈을 약간 쥐어주고 자신에게는 손자가 될 그 어린이를 서울로 데리고 오려 합니다만 여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힙니다.
이어 마치 서사시와도 같은 이 집안의 사정이 펼쳐집니다. 그 자세한 사정은 이 리뷰에서는 생략하겠으며, 마지막에 노인이 마음을 바꿔 결단하는 장면은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한 단면과 함께, 가부장적 사회 체제가 낳았다고나 할 이런저런 개인적 비극들이 많은 상념을 자아내며, 돈(노인은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기라도 한지 엄청난 재력을 과시합니다)은 결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난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어떤 오래된 진리도 다시 떠오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