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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미와 효심
김원 지음 / 아라(도서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기록에 나타난 어떤 인명을 보면 대체 무슨 뜻인지 감도 못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삼국 시대 궁예의 충신이었던 은부의 경우 은이라는 글자가 올 래(來) 변에 개 견 자를 쓰는, 개짖을 은 자를 쓰는데 사람 이름에 이런 글자가 쓰일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사관이, 그 평가에 부정이 깃들어 마땅하다고 여길 때 의도적으로 이런 글자를 쓰는 게 아닐까 싶고, 혹여 한글 발음이 비슷한 다른 성씨와 혼동할 우려를 거의 0으로 줄여 준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확실히 하나 있기는 합니다.
시대를 한참 밑으로 내려와 12~13세기 농민, 천민 반란이 전국을 휩쓸었을 무렵, 예컨대 운문(현재의 청도), 초전(울산- 작품에서는 배냇골로 표기됩니다) 등에서 반란을 일으킨 김사미, 효심 같은 인물은, 대체 왜 그런 이름을 쓰게 되었을까요? 김사미의 경우, 많은 학자들이 그가 사미승 출신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럼 울산의 효심은 효심이 지극한 게 작명의 유래일까요? 모를 일입니다. 정말로 주변 인물들이 그를 효심이라 불렀는지, 설령 그렇다 해도 사관은 반란을 일으킨 부정적 인물의 경우 좋은 한자를 써 주지 않는 게 보통인데도 말입니다.
이 소설은 고려 중후반을 휩쓸었던 신분 해방 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아무래도 실제 역사 기록이 미비할 때는 이처럼 작가의 상상이 개입하여 그 간극을 메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듯도 합니다만 역사와 문학은 준별할 필요가 있겠죠. 앞서 말했듯 후삼국 시대와,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농민 반란기(초기 무인 집권기)는 간격이 매우 큰데도 견훤이나 경순왕 등의 인물 설화를 대담하게 끼워 넣는 등 작가는 역사 전체를 통해 신분 해방과 민중 주도적 움직임을 관철시키려는 듯한 의도를 드러냅니다. 그런가 하면 "문수산의 불운한 선비" 화소도 삽입하여 마치 조선 시대 잔반 출신 최제우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까지 등장시킵니다.
고려 중기 상당한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지배 질서가 모순과 동요의 조짐이 보이자 이처럼 기층 민중이 거센 반항의 몸짓을 드러냈습니다. 반면 이후 왕조인 조선은 두 차례의 외침(外侵)을 겪었음에도, 양반층 내부의 대립 외에는 딱히 체제 전복의 움직임이 밑으로부터 일지 않다가 19세기 들어서야 뚜렷한 항쟁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죠. 달리 말하면 19세기 이전의 조선은 (적어도 고려에 비해) 신분 질서가 안정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객관적 관념론으로 무장한 조선의 유림이 향촌 질서를 더 효율적으로 잡아 나갔다는 뜻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