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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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읽던 이 작품의 역자 서문 같은 데에는 거의 항상 "몸(=모옴. Maugham)의 작품은 그의 시대에 통속 문학이라고 비판을 받았으나..." 같은 평가가 끼어 있었습니다. 세계 명작 고전이라고 즐비하게 늘어선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계산된 재미와 다소 작위적인 감동은 있을지 모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어렸을 시절이라 그런 가치 평가를 주관적으로 해 내거나 소화하기는 힘들었고 그저 정보로서 머리에 간직했을 뿐이었으며, 같이 서 있는 다른 걸작들과 비슷한 무게로 받아들이곤 했습니다. 설령 통속 문학이라 쳐도, 몸의 문장은 매우 문법적으로 정확하고 표현이 명징하기 때문에 영어 공부용으로 매우 좋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그간 소중히 여겨 오던 가치와 경력을 한순간에 버리고 은둔하며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판검사, 의사 등의 직분을 갖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본연의 적성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지 공부 잘하는 적성과 능력을 살려 (그의 부모님, 선생님 등이 성원했던) 사회적 지위를 선택했고, 진정한 적성을 기회비용으로 날렸을 뿐이죠. 제가 몇 주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에서는 바로 그랬다는 이유로 주인공이 호된 심판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른바 달란트의 비유에서 이를 죄 비슷하게 단정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가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어떤 사람이 책임감도 없고, 능력도 부족하고, (정말로 최악인 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회성조차도 결핍되어 있습니다. 물론 실속도 못 챙기면서 그저 무분별하게 엉겨 붙는 특성을 두고 사회성이라 미화할 수는 없고요. 사회성이든 뭐든 관계라는 건 그로부터 얻는 소득이 뭐라도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런 사람은 결국 벌이는 장사, 사업마다 일일이 말아먹을 수밖에 없죠. 손에 쥔 것도 없이 "그래도 나는 사회성이 좋아"라고 위안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심지어 사회성까지 결핍된 사람이, 사실은 주변으로부터 강제로 소외된 건데 마치 이 소설의 스트릭랜드처럼 "재능의 추구를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에서 퇴장"한 듯 미화한다면 그 얼마나 꼴사나운 일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위해 루신은 <아Q정전>을 창작한 거겠죠. 무능해도 좋고 왕따여도 좋은데 거짓말쟁이, 나아가 정신병자가 되어선 곤란하죠.


소설의 모델이 된 고갱은 결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고, 캐릭터 스트릭랜드 역시 퇴사, "퇴장" 직전까지 그가 속한 직장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던 인재였습니다. 고갱은 타히티에 은거할 시절에조차 그의 그림의 가치를 평가해 줄 인맥을 확보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비즈니스맨이었다고 불러도 됩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었)다고도 하지만, 고갱이든 스트릭랜드건 간에 일단 뭐 포기할 건덕지라도 있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해 가짜(그들의 관점에서) 행복을 포기할 가치가 있느냐는 겁니다. 사람이 그의 영혼을 잃어선 안 된다고도 하지만, 정말로 끝까지 지켜야 할 건 자신의 재능(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입니다. 재능이란 잔혹한 주인이어서, 가진다고 그게 꼭 축복은 아닙니다. 재능은 그 잠재력이 터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트릭랜드의 재능(과 그의 선택)이 이해 안 되는 사람은, 혹시 야구를 좋아한다면 해마다 얼마나 많은 젊은 루키들이 끝내 자신의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쓸쓸이 방출되는지 살펴 보면 됩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혹독한 스승도 없고, 주변의 유혹도 많습니다. 한창 때의 혈기에다 (건장한 체격 등의 팩터가 유발하는) 이성의 접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걸 다 참고 운동에만 전념해도 잘 안 되는 게 재능의 꽃피움이죠. 


재능은 대체 무엇 때문에 꽃피워야 하나요? 막대한 경제적 수입? 스트릭랜드는 이미 이를 젊은 시절에 손에 넣은 사람입니다. 주변으로부터의 평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이유가 없고, 그 재능의 실현과 완성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적이기 때문이죠. 그 사람에게는 자신보다 훨씬 못한 동시대 대중의 평가 따위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신(그런 게 있다면)과 자신이 정직하게 내리는 판단이 그에게는 전부입니다. 그는 이미 그 순간, 득도를 이룬 붓다가 부럽지 않습니다. 그가 곧 부처이며 예수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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