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선 - 한승원 중단편전집 1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한승원 작가님은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맨부커 수상자 한강의 부친이고 한국 문단의 원로로 존경받는 소설가입니다. 중편 <해변의 길손>으로 1988년 이상문학상도 수상했는데 이때 저항의 시국을 짙게 반영했던 단편 <붉은 방>(임철우 작)과 공동수상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소년이었습니다. 부친이 있기는 했는데 그 역시 내내 떠돌이였으며 아마도 모친은 일찍 죽었든지, 혹은 생활고를 못 이겨 가출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부친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어느 집에 아들을 맡겼으며, 생전 무척 친했기에 머슴이나 일꾼으로보다는 자신의 아들처럼 주인공을 극진히 돌봐 줍니다. 이 점이 소년에게는 무척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집안에는 딸이 한 명 있었으며, 소년과 이 딸은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냅니다. 배경은 전남의 어느 어촌이며, 해산물을 부지런히 걷어올려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이런 어촌에도 빈부의 차이가 없지 않아서, 어떤 이는 배를 세 내어 그를 밑천삼아 살아가며,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배를 빌려 주기도 하여 그 세를 받아 조금이라도 더 여유로운 삶을 유지합니다.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입니다만.


주인공 소년은 타고난 인물이 좋았는지 그래도 주변으로부터 호의를 얻는 편이며, 특히 그 주인집 딸과 마음으로부터 뭔가 절절한 감정을 주고받는 듯합니다. 그러나 가진것 하나 없는 이 소년에게 딸을 주기는 뭔가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지, 주인집에서는 딸을 다른 혼처에 보냅니다. 아들처럼 아끼고 돌봐 주는 것과, 사위로 아주 맞아들이는 건 또다른 문제라고 여긴 듯합니다. 물론 소년도, 아니 이제는 청년이 되었지만, 일정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처녀가 시집을 간 날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을 술집 작부 하나를 구제해 준 후(그때까지 모은 돈을 모두 털어 몸값을 치러 줍니다) 신부로 데려오는데 심지어 그 술집에서도 더 좋른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며 말렸건만 기어이 강행합니다. 


이 다음 사정은 우리가 익히 또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부는 끝까지 그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는데,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주인공은 상간남을 죽기 직전까지 구타합니다. 파출소로 끌려간 주인공은 훈계방면되는데(!) 당시에는 사법 당국의 처사가 이처럼 후한 면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건 아니고 주인공의 유일한 살림 밑천이었던 목선을 그 작부가 훔쳐 통정남과 달아나고 맙니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주인공도 역시 마을을 떠납니다. 자신의 손으로 자기 집을 다 때려 부순 후에. 


사실 소설의 진짜 재미난 부분은 지금부터입니다. 주인집 딸은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과부가 됩니다. 남편이 남긴 재산도 좀 있어서 생계에는 여전히 여유가 있는데, 마침 주인공도 방황 끝에 다시 이 어촌에 돌아와서 첫사랑이었던 이 과부댁에서 더부살이를 하는데 그야말로 그 부친의 인생 유전이라 하겠습니다. 과부댁의 일을 봐 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목선 하나를 얻기로 계약을 먲습니다. 


과부댁이 인물이 좋기에 비록 아이 하나가 딸렸건만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에게는 라이벌 아닌 라이벌이 동네에 여럿 있는 셈인데, 주인공은 어느날 같이 고기잡이를 나선 차에 과부에게 무모한 대시를 하지만 상대는 거의 죽을 각오를 하고 거부합니다. 방법이 잘못되어서 여인이 그리 반응을 보였다는 건 모르고서 주인공은 아 이 여인은 나한테 마음이 없었구나 짐작하며 완전히 단념을 합니다. 여기서부터 주인공과 여인, 그리고 제3의 사나이 사이에 미묘한 심리전이 전개되며 소설의 진짜 묘미를 독자들이 맛볼 수 있습니다. (세부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어촌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과 애욕, 타락, 오해 등이 절묘히 교차하는 그 묘사가 일품입니다. 한승원 문학의 어떤 경지를 이 작품 하나로 능히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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